당신의 일상표현이 누군가에겐 '혐오 표현'
당신의 일상표현이 누군가에겐 '혐오 표현'
  • 안다현 기자
  • 승인 2017.09.04 11: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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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다른 인간들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교류하며 살아간다. 의사소통의 방법은 말·글·수화·몸짓 등 다양하다. 하지만 그중 우리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이 아마 '말'일 것이다. 말은 고정된 의미의 단어와 술어를 상대방에게 직접 전달하기 때문에 글이나 수화, 몸짓보다 훨씬 직접적이다. 따라서 말의 파급효과는 다른 의사소통 방법에 비해 훨씬 신속하게 발생한다. 이 때문에 '말 한마디에 천 냥 빚도 갚는' 일이 생기고 반대로 '세 치 혀가 사람 잡는' 일도 생긴다.

 우리는 주변에서 흔히 친구에게 '병신 같다', '장애인 같다'고 하고, 또 여성스러운 남성에게는 '게이 같다'고 말하는 사람을 볼 수 있다. 이는 어느새 하나의 관용어처럼 쓰여 나도 모르게 한두 번 이런 표현을 사용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표현이 사회적 소수자에게는 혐오 표현으로 다가온다는 점을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 <일러스트레이션 = 신예진 기자>

일상 속에 뿌리박힌 혐오 표현

 '옆 벤치 남자 하나가 김지영 씨를 흘끔 보더니 일행에게 뭔가 말했다. …나도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커피나 마시면서 돌아다니고 싶다. 맘충 팔자가 상팔자야. 한국 여자랑은 결혼 안 하려고…. 김지영 씨는 뜨거운 커피를 손등에 왈칵 쏟으며 급히 공원을 빠져나왔다.'

 위는 소설 『82년생 김지영』 (조남주, 민음사, 2016)의 일부다. 이 책은 '김지영'이라는 인물을 통해 평범한 30대 한국 여성이 겪는 여성 혐오적 일화를 담담히 풀어내고 있다.

 인용한 내용에 나오는 '맘충'은 엄마를 뜻하는 '맘(mom)'이라는 단어 뒤에 '벌레 충(蟲)'을 붙여 엄마라는 이유로 과도한 권리를 주장하는 여성을 비꼴 때 사용하는 신조어다. '맘충'과 비슷한 혐오 표현으로는 '급식충'과 '틀딱충'이 있다. '급식충'은 급식을 먹는 중·고등학생을 상징하는 말 '급식'에 '벌레 충(蟲)'자를 붙여 중·고등학생을 비난할 때 사용된다. '틀딱충'은 틀니를 사용하는 사람이 많은 노인층을 비하하는 단어다. 이처럼 특정 집단이나 연령층에 대한 혐오 표현은 계속해서 생겨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혐오 표현을 자주 접하고 사용하게 되면 개인의 행동 양식과는 무관하게 해당 집단이나 연령층에 대한 무분별한 거부감이나 편견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 대학 박현정(철학·윤리문화학 3) 학생은 "만약 공공장소에서 시민으로서 배려가 너무 부족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개개인에게 비판을 가해야 하는 것"이라며 "특정한 연령층이나 성별에 국한해 일반화해서 욕할 수는 없다"라고 전했다. 이에 대해 권명아(한국어문학) 교수는 "(사회적 소수자를) 비하하는 것은 차별이고, 그 표현을 널리 퍼트리는 행위 자체가 차별 선동 행위이기에 혐오 발언 자체가 폭력적"이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페이스북 스타 선여정 씨가 '여정을 떠난 여정'이라는 콘텐츠의 한 에피소드를 공개한 후 그녀가 장애인을 비하한 게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논란의 영상에는 선여정 씨가 억지로 얼굴을 구기며 화장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논란이 커지자 선여정 씨는 해당 영상을 삭제했고, 그에 대한 피드백이 담긴 영상을 게시했다. 선여정 씨는 "장애인 혐오의 의도를 담아 영상을 제작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나의 잘못이 없다고 생각했었지만, 구독자들이 보낸 개인적인 메시지를 받고 무엇이 잘못됐는지 깨달았다"라고 밝혔다. 덧붙여 "해당 영상이나 글은 모두 삭제한 상태고, 나의 행동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었을 생각을 하니 매우 죄송스럽다"며 "내 영상으로 불쾌했던 사람들이 있다면 진심으로 사과하겠다"라고 전했다.

 이처럼 일부 비장애인은 지체 및 지적장애인의 특징인 얼굴 구기기, 몸 꼬기, 말 더듬기 등을 웃음 코드로 사용하곤 한다. 또한,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하거나 말을 어눌하게 하는 친구에게 '병신' 혹은 '장애인'이라는 차별적 표현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러한 행동은 모두 혐오 표현에 해당한다. 학부생 시절 장애학생 도우미를 한 적 있다는 오정민(문예창작학과 석사과정 2학기) 학생은 "(평소에) 아무렇지 않게 '병신 같다'는 말을 쓰곤 했는데 가까이하는 사람 중에 몸이 불편한 사람이 생기다 보니 그 사람 입장에서 생각하게 됐다"며 "워낙 많이 쓰이는 표현이다 보니 나서서 따지고 들 수도 없는 상황이 안타까웠다"라고 밝혔다.

단순한 언어폭력을 넘어선 혐오 표현

 '혐오 표현'에서 혐오는 누군가를 싫어한다는 협소한 의미가 아니다.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는 혐오 표현을 '어떤 개인·집단에 대해 그들이 사회적 소수자로서의 속성을 가졌다는 이유로 차별·혐오하거나 차별·적의·폭력을 선동하는 표현'이라고 정의했다. 인권위에서 시행한 혐오 표현 실태조사에 따르면, 온라인 혐오 표현 경험률은 성소수자가 94.6%로 가장 높았다. 이어 여성 83.7%, 장애인 79.5%, 이주민 42.1%가 온라인에서 혐오 표현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오프라인 혐오 표현 경험률도 성소수자가 87.5%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했다.

 혐오 표현을 접한 사회적 소수자가 정신적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있다. 인권위의 설문에 응한 장애인 중 58.8%, 이주민 56.0%, 성소수자 49.3%가 '혐오 표현을 접한 후 스트레스나 우울증 등 정신적 어려움을 겪었다'에 '그렇다'고 대답했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혐오 표현을 쉽게 접하고 사용하지만, 이러한 혐오 표현 사용에 대한 자각은 없는 경우가 많다. 이찬희(토목공학 1) 학생은 "친구가 웃긴 행동을 했을 때 '병신 같다'라는 말을 자주 하지만 이 표현이 혐오 표현일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그냥 사용한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권명아 교수는 "차별적 혐오 표현을 사용하면 안 되는 이유는 사회적 소수자가 차별 표현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차별 표현 자체가 인류의 기본 윤리에 반하는 폭력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덧붙여 "(예를 들어) 남성에 대한 차별 표현은 거의 없지만, 여성에 대한 차별 표현이 많은 이유는 (대한민국의) 권력적 위계의 소산이다"라며 "(사회적 소수자를 향해) 혐오발화를 하면 발화자는 폭력의 실행자가 된다"라고 전했다.

 혐오 표현은 단순한 언어폭력을 넘어 실제 범죄로 이어지기도 한다. 지난달 10일 한 남성 유튜버 '김윤태'는 여성 혐오를 미러링(상대방의 잘못된 행동을 따라 함으로써 무엇이 잘못됐는지 상대방이 깨닫도록 하는 행동)하는 유튜버 '갓건배'를 살해하겠다며 '갓건배'의 거주지로 추정되는 주소로 이동하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중계했다. 유튜버 '김윤태'는 경범죄처벌법상 '불안감 조성' 행위로 범칙금 5만 원을 통고받았다. 또한, 작년의 강남역 살인사건과 올해 벌어진 왁싱샵 살인사건은 여성에 대한 분노와 경시로 인해 발생해 여성 혐오 범죄가 아니냐는 공분을 산 바 있다. 인권위에 따르면, 설문에 응답한 여성의 87.1%가 자신의 정체성(성소수자·여성·장애인·이주민)으로 인한 증오범죄 피해가 우려된다고 밝혔다. 특히 응답한 여성의 과반인 51%가 '매우 그렇다'고 답해 여성 혐오 범죄에 대한 여성들의 우려가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일러스트레이션 = 신예진 기자>

혐오 표현에 대한 조치

 독일과 영국은 혐오 표현에 대해 법적으로 강하게 처벌한다. 독일의 경우, 유대인을 학살한 홀로코스트의 역사를 부정하거나 인종차별 발언을 하는 경우 3개월 이상, 5년 이하의 징역형을 받는다. 또 최근에는 SNS 업체가 신고를 받은 지 24시간 이내에 혐오 표현물을 삭제하지 않으면 최대 5,000유로(약 650만 원)의 벌금을 물리는 법안도 통과된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영국은 인종·출신 국가·피부색에 대한 혐오 발언을 한 사람에게 2년 이하의 징역을 부과한다.

 일본은 지난해 6월부터 헤이트 스피치 방지법을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위법 시 처벌 규정은 따로 없어 시민들이 다 같이 모여 '헤이트 스피치를 멈춰라'라는 구호를 외치는 방법으로 이를 저지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혐오 표현을 규제하려는 시도는 있었다. 그러나 '성적 지향'을 문제 삼은 종교단체의 반발과 혐오 표현의 명확한 규정을 세우지 못하는 어려움 등의 이유로 인해 입법화하지 못했다.

 현재 우리 사회는 혐오 표현에 대한 인지 없이 이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혐오 표현에 대한 법적 규제와 함께 시민의식 개선을 위한 교육과 캠페인의 필요성이 크다. 이에 대해 박경우(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 교수는 "혐오 표현은 지탄 받아 마땅한 행위이고, 그것이 현실 속에서 실제 폭력으로 이어지는 일도 많다는 점에서 법으로 금지해야한다는 의견이 많지만, 혐오 표현에 대한 법적 제재는 표현의 자유와 상충할 수 있는 문제가 있다"라고 전했다. "역사적으로 법을 빙자하여 표현의 자유를 탄압·억압하는 사건이 일어났듯, (혐오 표현에 대한) 법적 제재는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할 문제"라고 밝혔다. 덧붙여 "혐오 표현 관련 법안을 제정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문제"라며 "궁극적으로는 혐오에 관한 사회적 논의의 장, 공론장을 활성화하여 시민 의식을 기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라고 전했다.

안다현 기자
1600353@dong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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