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ㅣ소문의 그 책ㅣ폭력에도 꺼지지 않는 나무불꽃
장민석  |  000@da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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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9.04  13:4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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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백개의, 커다랗고 시뻘건 고깃덩어리들이 기다란 대막대들에 매달려 있는걸. 어떤 덩어리에선 아직 마르지 않은 붉은 피가 떨어져 내리고 있었어" "그 헛간에서, 나는 떨어진 고깃덩어리를 주워 먹었거든. 내 잇몸과 입천장에 물컹한 날고기를 문질러 붉은 피를 발랐거든. 헛간 바닥, 피웅덩이에 비친 내 눈이 번쩍였어."

 

   
▲ 『채식주의자』(한강, 창비, 2007)

 2016년 한국인 최초로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한 한강의 『채식주의자』(한강, 창비, 2007)는 끔찍한 꿈을 꾸고 난 후 돌연 채식주의자가 되기를 선언하는 주인공 영혜의 이야기를 그렸다. 2010년에 영화화되기도 했지만 영화는 원작이 담고 있는 심오한 메시지를 충분히 보여주지 못했다는 평을 받았다. 하지만 책은 그런 영혜를 이해하지 못하는 남편과 아버지의 폭력으로 인해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마는 주인공이 선택하는 삶의 모습을 담고 있다.

 3부작으로 구성된 이 소설은 탄탄한 구성과 억압, 폭력, 생명에 대한 높은 미적 경지를 보여준다는 평을 받았다. 특히 각 부마다 붙여진 제목이 눈길을 끄는데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 불꽃'이 그것이다. 각각의 부제목은 서로 연관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순수한 생명의 원천으로 회귀하고자 하는 영혜의 변화 과정을 담고 있다.

 평소 육식을 즐기곤 했던 영혜는 어느 날 꿈속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 고깃덩어리를 무자비하게 먹어치우는 한 마리의 짐승 같은 자신을 발견한다. 이후 그의 무의식 속에 잠들어 있던 생명에 대한 존재론적 회의가 발현되고 그는 채식을 시작한다. 하지만 이는 곧 단순한 채식을 넘어 자신이 식물 그 자체가 되고자 하는 지경에 이른다. 그는 고기가 들어간 음식이라면 육수 한 방울도 먹지 않고 이후에는 아예 음식을 입에 대지 않는 식물의 삶을 꿈꾼다.

 그런 영혜의 의지는 그가 가지고 있던 몽고반점의 의미와도 상통하는데, 보통 열세 살이 지나면 사라진다는 몽고반점은 여전히 그의 엉덩짝에 선명히 남아있다. 영혜의 몸 은밀한 곳, 엉덩이 사이에 자리한 푸른 몽고반점은 어떠한 억압 속에서도 줄기를 뻗고 꽃을 피워내는 씨앗을 상징한다. 자신을 이해해주지 않는 가족들로부터 본인이 지키고자 하는 가치를 움켜쥔 채, 영혜는 점점 완전한 식물, 나무가 되어 초록빛의 불꽃처럼 활활 타오르기를 바란다.


 "꿈에 말이야, 내가 물구나무서 있었는데…… 내 몸에서 잎사귀가 자라고, 내 손에서 뿌리가 돋아서…… 땅속으로 파고들었어. 끝없이, 끝없이……" "나, 몸에 물을 맞아야 하는데. 언니, 나 이런 음식 필요 없어. 물이 필요한데."


 이 소설에서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는 메시지는 바로 나와 다른 생명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다.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다르다'라고 생각되는 생명에 억압을 가한다. 영혜에게 억지로 고기를 먹이려는 그의 아버지와 그것을 방관하는 가족들의 모습은 한 생명의 '다름'에 가해지는 직접적·간접적 폭력을 모두 보여준다. 영혜의 가족들은 영혜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그를 옥죄기만 한다. 그 결과 영혜는 자신을 억압하는 외부로부터 완전히 마음을 닫고, 자신이 깨달은 가치의 실현만을 위해 질주한다. 만약 영혜의 남편이나 가족 중에서 단 한 사람이라도 영혜가 느낀 가치를 이해하고 존중해주었다면 과연 영혜는 그렇게까지 극단적으로 채식주의자가 되고자 했을까. 책은 '나와 같음'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것이 어떻게 한 생명을 벼랑 끝으로 내몰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 고기를 먹지 않는 주인공을 향해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는 가족들 <출처=네이버 영화 스틸컷>

 슈바이처 박사는 말을 남겼다. "나는 살려고 하는 여러 생명 중의 하나로 이 세상에 살고 있다. 생명에 관해 생각할 때, 어떤 생명체도 나와 똑같이 살려고 하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 다른 모든 생명도 나의 생명과 같으며, 신비한 가치를 가졌고, 따라서 존중하는 의무를 느낀다."

 다르다고 해서 그들을 해하거나 억압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그들은 모두 자신만의 가치를 가지고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한 생명일 뿐이다. 이처럼 각자의 가치를 지킴과 동시에 남의 가치를 존중하며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모든 생명체가 공존할 수 있는 자세라고 소설은 말하고 있는 게 아닐까.

 책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영혜의 복잡한 심리 상태를 그려내며 독자에게 혼란을 준다. 하지만 폭력의 아지랑이 속에서 정신을 놓고 헤매던 중 내뱉는 영혜의 독백은 어렴풋이나마 그가 좇던 가치의 의미를 드러낸다.


 "내가 믿는 건 내 가슴뿐이야. 난 내 젖가슴이 좋아. 젖가슴으론 아무것도 죽일 수 없으니까."


 폭력과 배척으로부터 날카로워졌던 자신의 모습을 버리고 아무도 해할 수 없는 한 그루의 나무가 되고자 하는 영혜. 다름을 이해하고 그 어떠한 폭력도 가하지 않는 것. 그것이야말로 영혜가 목숨을 저버리면서까지 지키고자 했던 단 하나의 참된 가치가 아니었을까.

장민석 기자
jjangstone@dong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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