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는 게 값, 거부할 수 없는 암표의 유혹
부르는 게 값, 거부할 수 없는 암표의 유혹
  • 손혜선 기자
  • 승인 2017.10.10 10: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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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야구 한국 시리즈 같은 큰 경기가 열리면 매표소 근처에서 은밀하게 이뤄지는 암표거래를 흔히 볼 수 있다. 최근에는 오프라인뿐만 아니라 온라인상의 암표 매매도 급증하고 있다. 특히 콜드플레이, 스팅, 브리트니 스피어스, 아리아나 그란데, 에드 시런 등의 내한 콘서트에서 암표 문제가 더욱 불거졌다.

 국내에서는 Mnet의 '프로듀스 101 시즌2'를 통해 선발된 그룹 '워너원'의 데뷔 콘서트 티켓팅 과정에서 암표 문제의 심각성이 다시 한 번 대두됐다. 선예매 종료 후 10분 만에 온라인 티켓 거래 사이트에 암표가 속속 등록됐다. 3만 3,000원짜리 티켓의 가격은 40만 원에서 250만 원까지 치솟았다. 암표의 가격이 너무 터무니없이 뛰자 팬들 사이에서는 '암표 불매운동'이 벌어졌다. '플미충(프리미엄 가격을 붙여 되파는 이들을 가리키는 말)', '되팔렘(물건을 되팔아 이득을 취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인터넷 속어)' 등의 암표상들에게 철퇴를 가하자는 목적이었다. 팬들은 암표를 사고 팔지 않거나 암표 매매로 의심되는 글은 즉시 신고하는 등 적극적으로 불매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여전한 암표 시장, 제재할 방법 강구해야…

 온라인상의 암표 거래 방식은 간단하다. 먼저 암표상은 여러 사람의 개인정보를 사들여 여러 개의 아이디를 만든다. 그다음 불법 매크로 등 특정 프로그램을 이용해 좋은 좌석을 선점한다. 중고거래 사이트에 양도 가능한 입장권의 좌석번호와 가격 등을 올려놓으면 구매자가 돈을 입금한다. 그런 다음 구매자에게 티켓 일련번호를 휴대폰 문자 메세지로 발송하면 거래가 종료된다. 암표상들은 이를 통해 수십, 수백 배의 차액을 얻는다.

▲ 온라인 상에서 불법 암표 매매를 하고 있는 암표상

 온라인 암표 매매에 대해 우리 대학교 황성주(스포츠지도학 4) 학생은 "최신 영화 시사회 티켓을 구하기 위해 중고 거래 사이트를 찾은 적이 있다"며 "인기 외국 배우들의 내한 무대 인사를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것 때문에 경쟁률이 치열했다. 장당 만 원짜리 티켓이 50만 원까지 거래되는 경우도 봤다"고 말했다. 이런 암표 거래는 명백히 불법이지만 실질적인 단속이나 제재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기존의 정보통신망법을 적용할 때 매크로 프로그램은 불법이 아닐뿐더러 경범죄처벌법상 현장 암표 판매가 아닌 인터넷을 통한 온라인 판매는 처벌받지 않는다.

 매크로 프로그램이란 사람이 해야 하는 반복 작업을 프로그램이 대신 해주어 작업 효율을 높이는 자동화 프로그램을 말한다. 즉, 매크로 프로그램의 본래 목적은 '효율성'에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불법 매크로 프로그램을 사용해 티켓을 싹쓸이하고 이를 암표로 판매하는 등 부정한 목적으로 악용되는 사례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매크로팅(매크로+티켓팅)은 공연, 운동경기 외에도 인터넷 투표, 게임, 기차표예매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목에서 악용되고 있다. 일부 대학에서도 수강신청 기간이 되면 매크로 프로그램 사용이 기승을 부린다. 학생들은 주로 인기가 높은 강의나 학점을 받기 쉬운 수업을 듣기 위해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한다. 수도권 모 대학의 수강 신청 기간에 해당 대학의 커뮤니티 사이트를 살펴보면 강의 교환이나 매매를 의미하는 글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해당 커뮤니티 사이트에는 매크로 프로그램을 사용해 수강신청에 성공했다는 후기가 올라오기도 했다. 우리 대학 임준현(교육학 2) 학생은 "매크로를 사용해 원하는 과목 신청에 성공하는 것은 불공평하다고 생각한다"며 "문제가 반복되는 해당 대학교 측은 매크로 프로그램 수강신청에 대한 처벌 규정이나 학칙 마련이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매크로 프로그램은 악성 프로그램으로 구분되지 않아 처벌이 어렵다. 악성 프로그램은 사용자의 의사와 관계없이 설치되는 것을 본질적인 요소로 하는데, 매크로 프로그램의 경우에는 사용자가 원해서 설치하기 때문이다. 다만 매크로 프로그램의 개발 목적 자체가 부정한 경우, 매크로 프로그램 내에 악성코드가 함께 심어져있는 경우나 매크로 프로그램을 설치한 사용자의 사용목적과 다르게 프로그램이 실행되는 경우 등은 정보통신망법 제48조 제2항에 의거해 악성프로그램으로 분류할 수 있다.

 누구나 쉽게 매크로 프로그램을 만들고 구매할 수 있다는 점도 문제다. 각종 포털 사이트에 매크로를 검색하면 관련 정보가 줄지어 나온다. 간단한 대학 수강신청 매크로나 티켓예약 매크로 등의 구체적인 제작 방법을 설명하거나 프로그램 판매를 광고하는 블로그도 쉽게 볼 수 있다. 이렇듯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어 매크로의 악용 사례는 늘고 있지만 명확한 제재 규정은 아직 없다. 때문에 매크로 프로그램의 악용을 규제하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해외 암표 문화 사례

 해외에서도 온라인 암표는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 일본도 인기 공연이나 행사의 암표 가격이 정가의 수십 배 가격에 판매되는 사례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이에 주최기관인 KOTRA(대한무역진흥공사) 측은 관객들을 대상으로 얼굴인식 기능을 이용한 입장 시스템을 도입했다. 입장 게이트에서 카메라를 응시하면 QR코드 리더기가 회원증의 사진과 얼굴을 대조해 인식한 후 티켓이 발권되는 방식이다. 입장 대기시간을 단축시키는 효과와 동시에 암표거래를 방지할 수 있어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아직 한국에서는 얼굴인식 기술이 도입된 사례가 없지만, 일본에서 이 시스템이 잘 안착된다면 국내 보급도 기대해볼만 하다.

 미국은 지난해 '온라인티켓판매법'(Better Online Ticket Sales Act of 2016)을 제정했다.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한 티켓구매, 구매 티켓의 재판매 등의 행위를 엄격히 금지하는 법이다. 온라인을 통한 비정상적인 티켓 거래는 연방거래위원회(FTC)의 제재의 대상이 된다. 주정부별로 암표 거래 규제 강도도 다른데, 뉴욕 주의 경우 매크로 프로그램 등을 사용하는 암표상에게 500~1,500달러의 벌금을 부과한다. 또한 이를 통해 얻은 수익을 몰수하도록 규정했다.

한국 사회에서 암표 매매의 실태와 전망

▲ 프로야구경기 좌석별 암표 <출처=서울신문>

 한국 사회에서 암표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부정적이다. 주로 사이버공간상에서 발생하는 암표 매매의 경우 사실상 단속 등의 적절한 관리·감독을 받지 않는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과거에는 열차티켓, 경기장티켓 등 일부분야에서의 암표매매가 주를 이루었다면 최근에는 다양한 분야의 수많은 종목으로 암표매매가 점차 확산되고 있다.

 올해 황금 연휴라 불렸던 추석연휴를 앞두고는 온라인상의 추석 기차 암표 판매가 기승을 부렸다. 구매자들은 고향을 방문하고 휴가를 즐기기 위해 비싼 값을 주고서라도 암표를 사야 했다. 우리대학 조한민(경제학 3)학생은 "인터넷 거래사기 피해의 위험이 있지만 기차표 예매에 실패했을 경우 각종 중고 거래 사이트를 찾아본다"며 "표를 구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정상가보다 몇 배나 비싼 암표 거래가 최선이다. 요즘은 메시지 몇 통의 익명거래로 매매해서 쉽게 거래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사이버공간에서 온라인암표매매 관리·감독의 헌법적 의미와 입법방안에 관한 연구'(장인호, 2016)에서는 암표매매행위의 실효적인 통제를 위해서는 이를 적절하게 관리·감독할 수 있는 법률적인 근거가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암표매매를 근절할 적절한 교육과 홍보 책자가 마련되고 그에 대한 처벌기준 또한 강화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먼저 우리나라에서 행해지는 암표매매행위를 규제할지 아니면 비범죄화할지에 대한 여부를 결정하고, 암표매매 행위에 규제를 할 경우에는 온라인과 오프라인 모두 처벌하는 등으로 통일된 입법방안을 도입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손혜선 기자
line_is@dong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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