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소문의 그 책ㅣ기억과 현실의 불협화음
ㅣ소문의 그 책ㅣ기억과 현실의 불협화음
  • 허현주
  • 승인 2017.10.10 10: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거짓기억증후군'이라는 증상이 있다. 실제로 겪은 적 없는 일을 마치 있었던 일처럼 기억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이 증상을 겪는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기억하는 것이 진실이라고 믿는다. 심리학자이자 인간 기억 전문가인 엘리자베스 로프터스 교수는 이런 심리를 반증하기 위해 '가짜기억 이식실험'을 실시했다.

 교수는 일련의 피실험자들에게 빨간불이 켜진 신호등을 보여줬다. 이후 그녀는 "좀 전에 본 교통신호등이 노란색이 아니었나요?"라고 물었다. 질문을 통해 신호등이 노란색일 것이라는 기억의 왜곡을 유도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사람들은 빨간색 신호등을 봤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노란색이었다고 대답했다. 로프터스 교수는 "현실과 상상을 구분하는 것은 아주 얇은 막 하나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과연 우리가 기억하는 모든 것이 '진짜' 기억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 『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문학동네, 2013)

 『살인자의 기억법』(김영하, 문학동네, 2013)은 치매에 걸린 연쇄살인범 병수에 관한 이야기다. 주인공 '병수'는 그의 마지막 범행 후 피해자의 딸 '은희'를 데려와 입양해 함께 살게 된다. 은희와 함께 조용한 일상을 영위하던 병수. 어느 날 그의 주변에서 새로운 연쇄 살인이 일어나고 병수는 촉각을 곤두세운다.

 그러던 중 병수는 우연히 '박주태'라는 인물과 차량 접촉사고를 겪게 된다. 박주태의 차 트렁크에서 흐르는 피와 그의 차갑고 냉정한 눈을 본 병수는 그가 최근 일어난 연쇄살인의 범인임을 확신한다. 하지만 우연이었을까 의도된 만남이었을까. 박주태와의 만남을 잊고 있던 병수에게 딸 은희는 그를 결혼 상대로 소개한다. 병수는 은희에게 박주태가 연쇄살인범이라고 말하지만 그녀는 이를 믿지 못한다. 결국 주인공은 딸을 위해 박주태를 없앨 결심을 하고 마지막 살인을 계획한다.

 이 책은 사건의 흐름에 따라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지 않다. 알츠하이머에 걸린 주인공의 단편적 기억만이 군데군데 흩뿌려져 있다. 몇 문장 혹은 몇 장으로 표현되는 단상은 오로지 주인공의 기억에만 의존해있다. 때문에 독자는 이야기의 진위나 맥락을 짚어내기 어렵다. 불안한 기억을 보완하려 모든 일을 녹음하고 기록하는 병수를 보며 독자는 병수가 알츠하이머를 극복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갖는다. 하지만 빠른 속도로 책을 읽어내던 독자는 소설의 끝에 다다를수록 혼란을 느낀다. 주인공의 기억이 어디서부터인가 어긋나있음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옆집 개가 자꾸 우리 집을 들락거린다. ……퇴근한 은희가 그 개는 우리 개라고 한다. 거짓말이다. 은희가 왜 내게 거짓말을 할까 (43p)

 "그래, 개가 없어졌다. 개가 없어졌어."
 "아빠, 우리 집에 개가 어디 있어요?"
이상하다. 분명히 개가 있었던 것 같은데.(85p)

 주인공의 상황에 몰입했던 만큼 독자들이 느끼는 반전의 충격은 크다. '개의 존재 여부'를 떠나 이 작은 기억조각의 부재는 주인공의 기억 전체에 대한 의심으로 이어진다. 점점 주인공의 기억과 타인의 진술은 어긋나고 이는 주인공의 기억 체계가 완전히 무너져 내렸음을 보여준다. '모든 것은 허상에 불과했다'라는 반전이 결말에 다다라서야 독자는 철저히 계산된 작가의 의도임을 알아차리게 된다.

▲ 영화 <메멘토>의 한 장면 <출처=네이버 영화 스틸컷>

 로프터스 교수의 실험 결과로 알 수 있듯 인간의 기억은 생각보다 정확하지 않다. 영화 <메멘토>(감독 크리스토퍼 놀란, 2001) 역시 기억의 불확실성에 대해 다룬 영화다. <메멘토>에는 단기기억상실증을 앓고 있는 주인공 레너드가 등장한다. 그는 자신의 아내를 살해한 범인을 추적하고 있는데, 기억을 잃지 않기 위해 살인범에 대한 정보를 몸 곳곳에 타투로 새긴다. 하지만 레너드 역시 『살인자의 기억법』 속 병수처럼 자신이 진짜라고 믿는 기억과 현실의 불일치에 혼란을 겪다 결국 파국적 결말을 맞는다.

 『살인자의 기억법』 속 병수와 영화 <메멘토> 속 레너드가 보여주듯 기억은 결코 완전하지 않다. 우리 또한 완전하지 못한 기억 속에서 살아간다. 유독 기억에 관련된 글, 영화가 많은 것은 그만큼 기억이란 왜곡되기 쉬우며 이를 인정하기는 어렵고 또 그로부터 오는 배신감은 크기 때문이 아닐까. 오늘 하루 당신의 기억을 천천히 되짚어보라. 과연 당신의 기억은 '진짜'인가?

허현주 기자
1611289@donga.ac.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부산광역시 사하구 낙동대로550번길 37 (하단동) 동아대학교 교수회관 지하 1층
  • 대표전화 : 051)200-6230~1
  • 팩스 : 051)200-6235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대중
  • 명칭 : 동아대학교 다우미디어센터
  • 제호 : 동아대학교 다우미디어센터
  • 등록번호 : 대전 가 00000
  • 등록일 : 2017-04-05
  • 발행일 : 2017-05-01
  • 발행인 : 한석정
  • 편집인 : 김대중
  • 동아대학교 다우미디어센터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18 동아대학교 다우미디어센터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