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돌아온 동아인터뷰ㅣ느림의 미학, 영화에 "사람"을 담다
ㅣ돌아온 동아인터뷰ㅣ느림의 미학, 영화에 "사람"을 담다
  • 박현주 기자
  • 승인 2017.10.10 10: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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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다시 태어나도 우리>의 한 장면 <출처=네이버 영화>

 갈색 베레모에 가죽 재킷, 주머니가 많은 바지까지. 카페로 들어오는 문창용(무역학 '99 졸) 감독의 모습은 다큐멘터리 감독에 대한 기자의 상상과 꼭 맞아떨어졌다. "요즘엔 내가 뭘 하는지도 모를 정도로 바쁘다"는 그는 지난달 27일 국내에서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다시 태어나도 우리(Becoming Who I Was)>(감독 문창용·전진, 2016)의 감독이다. 해당 영화는 올해 열린 제67회 베를린영화제에서 제너레이션 K플러스 부문 그랑프리를, 시애틀 국제영화제에서는 다큐멘터리 부문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다.

 문 감독이 8년 동안 제작한 이 영화는 인도 북부 라다크의 삭티라는 작은 마을에 사는 소년 앙뚜와 노스승 우르갼의 이야기다. 앙뚜는 전생의 업을 이어가기 위해 환생한 티베트 불가의 고스승, '린포체'다. 어린 앙뚜는 전생에 살던 곳인 티베트 캄 사원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린포체 검증을 받기 위해서는 전생에 그를 모시던 제자들이 찾아와야 한다. 앙뚜는 제자들을 기다리지만 그들은 찾아오지 않는다. 결국 앙뚜는 '가짜 린포체'라 손가락질받으며 삭티의 사원에서 쫓겨나고 만다. 노스승 우르갼은 그런 앙뚜를 곁에서 지키며 그가 전생에 미처 이루지 못했던 고승의 정신을 계승할 수 있도록 돕는다.

 정말 전생이 있다고 생각하냐고 묻자, 문 감독은 "주인공이 정말 환생을 했는지 안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답했다. 이어 "주인공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린포체라는 환경에 놓인 거다. 그리고 그 문화는 라다크에서 1,400년을 이어져 왔다"며 "우리가 이를 증명하고 판단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그냥 사람을 찍는 거다. 린포체는 배경일 뿐"이라고 말했다.

▲ 지난달 21일, 서울 대한극장 시사회를 마친 인터뷰 중인 문창용 감독

 어떻게 8년이나 한 작품을 찍을 수 있냐는 질문에 그는 "오래 보면 다르게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다른 게 보일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어 "사실 이렇게 오래 찍게 될 줄은 몰랐다"며 푸스스 웃음을 뱉었다. 누군가를 오래 지켜보는 다큐멘터리 감독이 쉬운 직업은 아니지 않냐고 묻자 생뚱맞게도 그는 "사실 목수가 되고 싶다"고 답했다. "오래된 걸 좋아하는 편이다. 낡은 것이 아니라 오래돼 사람의 손때가 묻고 나이테에 따라 홈이 생긴. 그 나무에는 또 하나의 작은 역사이자 이야기가 담겨 있는 거니까. 그래서 나무가 좋고 목수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문 감독은 대학 생활 내내 학보사 기자로 활동했고, 편집국장만 2년을 했다. 그래서 처음엔 기자가 되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다 언론사 성향에 따라 기사의 방향을 바꿔야 할지도 모르는 기자라는 직업보다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편이 더 낫겠다고 판단했고, 막연히 서울로 올라가 다큐멘터리를 배웠다. 그는 "대학 때는 정치·사회적으로 독설을 많이 썼다. 하지만 남들이 바라보지 않는 작은 것에서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 내 역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다큐멘터리 감독이라는 직업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10년 넘게 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 한 사람을 짧게 관찰하고 단편적인 이야기를 만드는 반복적인 작업에 지쳤다. 당시 그는 KBS의 'VJ특공대'팀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자갈치시장 '먹장어 골목'의 노부부를 찍게 됐다. 방송이 나간 후 한 취업준비생이 댓글을 달았는데 그게 그에게 큰 위로가 됐다. '살아 꿈틀거리는 먹장어를 보면서 취업준비에 지쳐 있는 내가 너무 무력해 보였다. 나도 꿈틀거려봐야겠다. 잘 봤습니다'라는 댓글이었다. 그는 "(내 작품을) 받아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이 내가 계속해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고 말했다.

 2년 전부터 문 감독은 인도네시아의 쓰레기 마을에 사는 한 소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많이 가진 사람이 적게 가진 사람보다 행복하지는 않다"는 그는 항상 작은 소재에 마음이 끌린다고 했다. 그는 "거창한 것보다 작은 것에 훨씬 더 큰 울림이 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 삶에 버팀목이 되고 위로로 다가온다"고 말했다.

 영화 <다시 태어나도 우리>의 시사회 상영관에는 웃음과 눈물이 가득했고 관객들의 탄식이 빚어내는 약간의 소음은 영화와 호흡을 같이했다. 크레딧이 올라간 후에도 사람들은 눈이 벌게진 채 쉽게 자리를 뜨지 못했다. 문 감독은 "어린 앙뚜의 곁을 떠나지 않고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노스승 우르갼을 보며 그간 잊고 있었던 소중한 사람에 대해 돌이켜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빨리 가야만 멀리, 높이 갈 수 있는 건 아니다"라며 "가장 의미 있는 곳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속도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한 작품에 과감히 8년의 세월을 투자한 그의 끈기는 "조금 천천히 가도 되더라"는 본인의 말을 입증한다.

 어쩌면 우리는 현실에 치여 많은 것들을 잊고 사는지도 모른다. 쉼표는 찍되 마침표는 찍지 말자. 오래된 나무에 새겨진 세월의 흔적처럼, 어린 앙뚜를 지키는 우르갼의 우정처럼 작은 것에 대한 오랜 기다림이 언젠가 빛을 발할지도 모르니 말이다.

박현주 기자
hyunju009@dong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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