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일주일 동안 비건 채식에 도전했다. 결론부터 말하겠다. 기자는 살이 조금 빠졌고 동시에 주머니 사정이 가벼워졌으며 조금 슬픈 한 주를 보냈다.
우선 몰라서 먹을 수 없는 경우가 허다했다. 식당에서는 메뉴 성분을 표시해두지 않았고, 식품의 겉 포장에 성분표시가 돼 있더라도 그것이 고기함유성분인지 알기 어려웠다. 과자나 젤리에도 고기 분말과 젤라틴이 함유돼있다고 하니 그 무엇도 함부로 먹을 수 없었다. 그래서 처음 이틀 동안은 거의 굶다시피 했다.
식당에서는 "채식주의자라 고기를 먹을 수 없다. 고기가 들어가지 않은 음식이 맞냐"고 물었음에도 고기 육수가 담긴 그릇을 내놓았다. 아마 채식주의자임을 밝히는 손님이 흔치 않아 생긴 실수였을 것이다.
무턱대고 배를 곯던 채식 삼 일째, 어쩔 수 없이 부산에 있는 비건 식당을 모조리 찾아다녔다. 채식 라면과 콩 고기 스테이크, 비건버거는 채식에 대한 기자의 선입견을 송두리째 무너뜨렸다. 평소 생각하던 맛없고 단조로운 채식이 아니었다. 식물성 재료로도 충분히 고기의 맛과 식감을 낼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문제는 다른 사람과의 약속이 있을 때였다. 기자 때문에 일일이 식당을 골라 다녀야 했고, 고기는 물론 같이 먹는 찌개류, 탕류 음식도 쉽게 시킬 수 없었다. 채식을 하고 있어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양해를 구하는 과정에는 항상 "왜?"라는 물음과 찡그린 눈썹이 함께 돌아왔다. 그 함의는 모두 달랐겠지만, 그럴 때면 꼭 기자가 잘못이라도 저지른 사람인 양 느껴졌다.
일주일하고도 나흘이 지난 지금도 기자는 채식을 하고 있다. 기사를 쓰며 숱하게 보았던 공장식 축산업의 잔인함이 목에 걸려, 고기를 먹을 때면 종종 체했기 때문이다. 친구들에게는 "이제 난 고기를 먹을 수 없는 몸이 됐다"며 농담도 건넨다.
최근 달걀, 소시지 파동이 번지면서 채식에 대한 공감대가 점점 늘어가고 있지만 여전히 채식인들은 식탁 위의 소수자에 불과하다. 기자가 만난 한 채식인은 "우리에게 관심을 가져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기사를 쓰면서 '내가 이들의 소수자성을 기사 소재로만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고 수백 번 고민했다. 기자가 이어가고 있는 채식 또한 그 고민의 일환이다.
먹을 권리는 누구에게나 주어져야 한다. 그러나 지금 채식인들에겐 식권(食權)이 없다. 눈치 보지 않고 먹을 수 있는 권리, 그들에게는 절실하다.
박현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