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한 친절 대신 조용한 배려를
과도한 친절 대신 조용한 배려를
  • 허현주
  • 승인 2017.11.13 13: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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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장품 가게나 옷 가게에서 물건을 사기 위해 혼자 고심하고 있으면 매장 직원이 다가와 친절하게 말을 건네곤 한다. 하지만 소비자들에게는 이러한 점원의 친절이 부담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때로는 점원의 친절이 물품에 대한 강매행위로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소비자들이 이런 부담을 더는 방법은 없을까?

편리한 침묵, '침묵서비스'

 제품을 고를 때 점원이 말을 걸어오는 것을 불편해하는 소비자들을 위해 시행된 서비스가 있다. 일명 '침묵서비스'다. 고객이 도움을 청하지 않는 이상 점원이 먼저 말을 걸지 않는 것을 전제로 하며 일본에서 시작돼 우리나라에도 전파됐다.

 우리나라의 경우 화장품 업계에서 활발히 도입하고 있다. 지난 8월에는 화장품 브랜드의 하나인 '이니스프리'에서 침묵서비스를 도입했다. 일부 매장 입구에 '혼자 볼게요'와 '도움이 필요해요'라는 팻말이 걸린 두 가지 종류의 바구니를 설치해 고객이 원하는 서비스를 바구니로 표현하게 했다. 이러한 서비스는 '소비자가 제품을 구매하기 전에 이를 테스트해보는 시간을 방해하지 않겠다'라는 취지로 도입됐다. 이니스프리의 일부 매장에서 운영 중인 해당 서비스는 고객들의 호응에 힘입어 점차 확산되고 있는 중이다. 침묵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는 이니스프리 서면점에 방문했던 김다원(경제학 2) 학생은 "침묵서비스가 도입되는 것에 대해 긍정적"이라며 "이전에 방문했던 매장에서 점원이 말을 걸고 물건을 권해 불편한 적이 있었는데 여기(서면점)서는 '혼자 볼게요' 가방을 들면 말을 걸지 않아서 편했다"고 말했다.

 또한 이니스프리에서는 침묵서비스의 일종으로 '미니숍(mini shop)'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미니숍은 점원의 도움 없이 제품을 선택·결제할 수 있는 이른바 화장품자판기다. 지난 1월 여의도점에 처음 등장한 미니숍은 9월부터 CGV 왕십리점에서도 활용하고 있다.

 이니스프리의 주 고객층은 20~30대의 젊은 연령층이다. 20~30대가 SNS에 익숙한 세대인 만큼 디지털 기계에 익숙하고 점원의 밀착 응대에 불편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화장품자판기가 효과적으로 운영될 것이라는 게 이니스프리 측의 예측이다.

낯선 사람이 불편해요, 다양한 비대면 접촉

 침묵서비스가 주목받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사회기술 발전으로 인한 개인 영역 중시와 SNS 발달로 인한 관계에 대한 높은 피로도가 그것이다. 우리 대학 최이숙(사회학) 교수는 "스마트폰 사용으로 사람들은 점점 개인화되기 시작하고 소통에서도 개인의 영역을 중시하기 시작했다"며 "원하는 것을 필요한 순간에 받아들이는 것에 익숙해지면서 굳이 원하지 않고 관심 없는 사람들과의 대화에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말했다. 또 "소통의 영역에 있어서 개인을 중시하게 된 면모와는 달리 SNS를 통해 24시간 타인과 연결된 사람들이 있다"며 "이런 사람들은 관계에 대한 피로감이 매우 크다. 따라서 굳이 관계없는 사람들에게까지 관계망을 넓히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들이 늘었고, 그에 따라 침묵 서비스가 유행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직접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할 필요성이 줄어들면서 비대면성을 특징으로 내세우는 서비스가 발달하고 있다. 모바일 뱅킹, 소개팅 어플, 배달 어플 등 다양한 어플의 등장 역시 비대면성을 선호하는 사람들의 심리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소개팅 어플은 본인의 사진과 나이, 관심사 등을 올려 실시간으로 이성을 매칭해주는 어플이다. 지난 4월 결혼정보업체 '가연'에서는 미혼남녀 480명을 대상으로 소개팅 어플을 이용하는 이유에 대해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그중 '처음 보는 이성에게 말을 거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아서'라는 이유가 7%로 4위를 차지했다.

 어플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이색 자판기들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 바나나, 피자 등 음식부터 시작해 꽃다발 자판기, 빈 캔을 넣으면 반환금을 내어주는 재활용 자판기, 심리상담가의 글·그림 등이 담겨있는 고민 상담 자판기 등 그 종류도 다양하다. 전문가들은 이색자판기가 확산되는 이유로 불필요한 대면접촉 없이 간편하게 결제할 수 있다는 점과 시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구매할 수 있다는 점을 뽑았다. 이색자판기와 더불어 울산 중구에는 자판기가 모여 있는 무인 편의점 또한 생겨났다. 무인 편의점에는 기존의 편의점과 같이 전자레인지, 테이블 등이 마련돼 있다.

 꽃 자판기를 이용해본 권준석(경영학 3) 학생은 "꽃다발 같은 경우엔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눈으로 보고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면 되기 때문에 접근성이 좋고 편한 자판기를 이용하게 됐다"고 말했다. 또 침묵 서비스에 대해 "화장품 같은 제품은 잘 모르는 부분이 많아 (직원의) 도움을 받는다. 하지만 옷가게에서는 평소에도 혼자 구경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며 "불필요한 물건을 추천하는 등 원치 않는 과도한 친절이 불편하다. 점원들이 손님이 필요한 것을 물을 때 도와주는 것이 가장 좋은 것 같다"고 답했다.

배려인가 소통의 단절인가

 일본에서 운영 중인 '침묵택시'는 목적지를 물을 때와 계산할 때, 응급 상황을 제외하고는 기사가 손님에게 먼저 말을 걸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도 침묵택시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 8월 서울신문은 승객과 택시기사 212명에게 침묵택시 도입에 대한 찬반 의견을 물었다. 이에 일반 승객 110명 중 79.1%(87명)가 찬성이라고 답한 반면 택시기사 102명 중 67.6%(69명)가 반대했다. 응답자들은 '민감한 사생활이나 의견이 다른 문제에 대해 억지로 대화를 이어나갈 필요가 없다는 점', '기사가 승객의 비위를 맞출 필요가 없다는 점' 등을 찬성 이유로 꼽았다. 반대 이유로는 '한국의 정서와 맞지 않고 관계가 삭막해진다는 점', '침묵택시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 택시가 부정적인 이미지를 줄 수 있다는 점'을 꼽았다.

▲ <일러스트레이션=심연우 기자>

 실제로 익명의 한 택시기사는 "(침묵택시라는) 용어는 처음 들었다. 꼭 시행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며 "대화를 좋아하는 사람도, 싫어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에 손님이 먼저 말을 걸지 않는 이상 (기사가) 말을 걸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이미 기사 대부분이 그렇게 해오고 있기 때문에 이를 시행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서로 간의 자유에 맡기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또한 일각에서는 침묵서비스가 소통의 단절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존재한다. 단적인 예시로 '콜 포비아(call phobia·통화 공포증)'가 있다. 스마트폰을 이용해 메신저로 대화를 주고받는 것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전화통화로 대화를 나누는 것에 부담을 느끼며 생긴 신조어다. 전화통화뿐만 아니라 면대면 접촉에서도 부담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실제로 만나 대화를 하는 것에 어색함을 느끼거나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할 때 부담을 느끼는 경우가 그예다. 이와 관련해 최이숙 교수는 "확실히 비대면접촉의 증가는 소통의 단절을 불러올 가능성이 있다"며 "사람들이 관계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한편, 완전히 관계에서 벗어나기보단 얕은 관계를 넓게 유지하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이전의 깊고 진정성 있는 관계가 줄어들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에 한편에서는 '온라인 인맥 다이어트' 바람이 불고 있다. SNS상에서는 클릭 한 번이면 친구 맺기가 가능하다. 온라인 인맥 다이어트는 실제 인맥이나 업무상 필요한 인맥을 제외한 온라인 친구 관계를 정리하는 것을 의미한다. 스마트 폰을 켜면 쏟아져 나오는 불필요한 온라인 인맥들의 소식에 피로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늘면서 유행을 타고 있다. 얕고 넓은 관계를 정리하고 깊이 있는 관계를 중시하자는 의도다.

 이와 더불어 소통의 단절을 줄이는 방법으로는 '디지털 디톡스'가 있다. 디지털 디톡스는 디지털(digital)이라는 단어에 '독을 해소하다'라는 뜻의 디톡스(detox)가 결합한 말로, 디지털 기기에서 벗어나 명상, 독서 등 다양한 방법으로 심신을 치유하는 것을 가리킨다. 구글의 에릭 슈미트 회장은 보스턴대 졸업식 축사에서 "인생은 모니터 속에서 이뤄질 수 없다. 하루 한 시간 만이라도 휴대폰과 컴퓨터를 끄고 사랑하는 이의 눈을 보며 대화하라"며 디지털 디톡스의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국내에서는 대구·경북지역 대학교수 모임인 다행복사회 네트워크에서 '스마트폰 하루 끄기' 운동을 펼치며 디지털 디톡스를 실현하고 있다.

허현주 기자
1611289@dong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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