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소문의 그 책ㅣ'병'이 살아가는 방식을 그리다
ㅣ소문의 그 책ㅣ'병'이 살아가는 방식을 그리다
  • 안다현 기자
  • 승인 2017.11.13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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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 『우리 사우나는 JTBC 안 봐요』(박생강, 나무옆의자, 2017)는 독특한 제목과 현실적인 내용으로 독자들의 이목을 끌며 항간에 화제가 된 작품이다. 올해 제13회 세계문학상을 받기도 했다. 이 책의 제목을 본 독자들은 의문을 품게 된다. 이 책에서 말하는 '우리 사우나'는 대체 어떤 사우나이길래 모든 사람이 발가벗은 채로 동등한 인간적 면모를 내보이는 사우나에서조차 특정 채널을 보지 않는다는 것일까.

 주인공 손태권은 소설가다. 그는 한 일간지에 신춘문예로 등단했지만, 주변의 반대로 전업 작가의 길을 포기하고 논술학원 강사로 일한다. 그러나 그는 논술학원이 망하자 신도시 부촌에 위치한 피트니스 센터 사우나인 '헬라홀'의 사우나 매니저로 일하게 된다. 헬라홀은 일반적인 사우나와는 다른 곳이다. 회원제로 운영되는 헬라홀의 회원들은 '대한민국 1퍼센트'라 불리는 사람들이다. 이곳에서는 마치 대학생이 사용하지 않는 전공 책을 산 것을 후회하듯 '쓸어버릴 수도 없는 대학'을 괜히 샀다고 한탄하는 대화가 아무렇지도 않게 오간다.

 태권의 아버지는 인간의 게으를 권리를 누리지 않고 바삐 살아온 사람이다. 그런 아버지 밑에서 자란 태권이가 게으를 권리를 맘껏 누리고 있는 헬라홀 노인들의 시중을 들고 있다. 그는 이런 상황을 역설적이라고 느낀다. 그래서 사우나에서 돈을 벌고 있다는 사실을 아버지에게 쉽게 전하지 못한다.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신춘문예에 등단한 그지만, 현재는 사우나 매니저라는 사실을 본인조차도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것이다.

 헬라홀은 꼭 사회의 축소판 같다. 소위 말하는 세상의 '갑'들이 사우나 밖에서 고급 외제 차와 비싼 옷으로 권력을 과시했다면 헬라홀 안에서는 벗은 몸이 권위의 표현으로 통한다. 발가벗은 몸은 손님인 갑의 상징이요, 태권이 입은 매니저 유니폼은 '병'의 상징이다. 갑의 세계에서 을도 아닌 '병'쯤 되는 태권은 갑이 손 안 대고 코 풀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대한민국 1퍼센트'라 불리는 남성들은 사우나를 이용하다 불편한 점이 있으면 직접 해결하지 않고 사우나 매니저인 태권에게 토로한다. 태권은 개인 사물함 열쇠를 가져오지 않은 회원을 위해 하루에 네댓 번씩 마스터키로 사물함을 열어준다. 때문에 태권은 회원들에게 '락카'로 불린다.

 책은 병의 생존방식을 주된 내용으로 다루고 있다. 병이나 을이 갑에게 복수해서 '사이다'를 선사하는 화끈한 전개 따위는 나오지 않는다. 태권은 헬라홀 회원들의 갑질에 대해 대꾸하거나 반박하지 않는다. 그저 조용히 일할 뿐이다. 코 골며 자는 회원에게 '너무 오래 주무시는 것 같아 걱정돼 깨웠다'며 너스레를 떠는 그의 모습에서 다시금 병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그의 이러한 행동은 현실적이어서 독자들은 더욱 소설에 몰입하게 된다.

 생존뿐만 아니라 태권의 연애방식 또한 현실적이기 그지없다. 태권은 연인 공과 사이가 멀어져 결국 갈라서게 된다. 서로에게 야속해지는 과정에서도 둘은 드라마에서처럼 눈물 콧물 쏟으며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와 같은 말은 하지 않는다. "내가 결혼하자고 했다면 우리가 헤어지지 않았을까"라고 말하는 태권에게 공은 너무도 덤덤히 이렇게 말한다.

 "(결혼했다면) 아마 우린 불행한 삶을 살았을 거야. 다행히 우린 함께 인생을 걸고 모험을 할 만큼 어리석지 않았어. 그래서 그 타이밍을 넘긴 거 같아. 우리 때문인지, 아니면 우리의 환경 때문인지 그건 확실하게 모르겠어." p.233

 

▲ 작가 박생강의 모습이다. <출처=채널예스>

 많은 독자가 독특한 제목에 대한 호기심에 책을 읽기 시작하지만 정작 제목에 언급된 JTBC가 소설에 등장하는 대목은 많지 않다. 이 소설의 원제는 <살기 좋은 나라?>였다. 출판사 측에서 좀 더 눈에 잘 들어오는 제목을 원해서 지금의 제목이 완성됐다. 이 소설은 저자인 박생강 작가가 1년간 사우나에서 일했던 경험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신춘문예에 등단한 지 10년째였지만 박 작가의 삶 역시 경제적으로 꽤 어려웠다. 그러던 중 소설에 등장하는 헬라홀, 즉 회원제 사우나가 본인이 원하는 조건과 딱 들어맞아 일을 시작하게 됐다. 박 작가는 실제로 사우나에서 일할 당시 회원들이 JTBC를 시청하는 광경을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소설의 제목인 <우리 사우나는 JTBC 안 봐요>는 대한민국 상류 1퍼센트 중년 남자들이 어떤 사상을 갖고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를 대변하는 셈이다.

 사우나 일이 손에 익기 시작하면서 회원들의 대화가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직접 엿들은 상류층의 생생한 대화 내용이나 통화 내용, 사우나 매니저로 일했던 자신의 경험을 소설로 옮기고 싶은 욕구가 책을 펼 수 있게 했다고 박 작가는 말했다. 작가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라 그럴까. '병'이 살아가는 현실을 생생하게 그려낸 이 작품은 곱씹을수록 쓰리게 느껴진다.

안다현 기자
1600353@dong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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