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ㅣ옴부즈맨 칼럼ㅣ반려(伴侶)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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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1.13  13: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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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기현 독자위원(문예창작학 석사과정 3학기)

 동물을 좋아한다. 보는 것과 만지는 것을 좋아하고, 직접 기르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곤 한다. 지극히 '나'의 입장에선 그렇다. 그러나 좋아하는 마음, 그것이 반려의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것은 아니다.

 의지만으로 연애를 지속할 수 없듯이, 동거 또한 그렇다. 나는 흡연자이고, 홀로 자취를 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학교에서 보낸다. 지저분하고 좁은 곳에서 외롭게 나를 기다릴 생명을 생각해보면, 입양은 도저히 할 짓이 못 된다. 현실적으로 나는 반려동물을 기를만한 자격이 없는 것이다.

 반대로, 현실적인 조건만을 충족한다고 덜컥 동물을 들이는 사람들도 종종 보인다. 이들은 대부분 동물의 귀여운 외형이나, 개인의 외로움, 유행 등 나름의 이유로 동거를 결정한다. 그러나 사전 지식 없이도 인간이 함께 살 수 있을 만큼 호락호락한 종(種)은 없다.

 반려동물의 입장에서 보자면 일방적인 동거 결정도 부당할진대, 준비조차 되지 않은 존재가 자신을 돌보려 한다는 것은 폭력에 가깝다. 적어도 강아지에게 '손'을 가르치기 이전에 강아지의 의사표현 방식 정도는 배우라는 소리다. 무턱대고 데려와 이름을 지어주기 전에, 견종과 특징 정도는 알아야 한다.

 부가적인 비용 또한 만만치 않다. 사료와 간식, 배변과 놀이 용품들, 예방접종 및 각종 의료비용까지 생각하면 거의 육아에 맞먹는 지식과 경제력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이러한 조건들에 대해 한국 사회는 따로 심사하지 않는다.

 이곳에서의 반려동물의 입양, 혹은 분양 결정은 자격이 필요 없는 권리이다. 예비 반려인 개인의 양심과 지식에 동물들의 목숨을 쉽게 맡긴다.

 반려인 스스로가 각성하여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 프랑스의 철학자 레비나스는 "한 인간을 만난다는 것은 하나의 수수께끼에 의해 깨어 있게 되는 것"이라 말했다. 자아가 있는 동물 역시 다르지 않다. 함께 산다는 것은 서로에 대해 끊임없이 배우고, 알아간다는 것이다.

 반려는 긴밀한 사회면서 동시에, 거래에 가까운 사랑이다. 상호 간의 배려와 이해가 필요한 영역이다. 그 모든 과정이 행복할 수는 없다는 것을 충분히 인지해야 한다. 아주 가까운 거리의 대화는 상대의 뜨거운 숨까지도 참아야 하는 법이다. 그 필연적인 불편함을 기꺼이 받아들일 때, 건강한 반려가 이루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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