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소문의 그 책ㅣ당신의 아몬드는 따듯한가
ㅣ소문의 그 책ㅣ당신의 아몬드는 따듯한가
  • 손혜선 기자
  • 승인 2017.12.04 13: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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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매일같이 각종 범죄 소식, 지구 어딘가에서 일어난 분쟁에 관한 뉴스, 불우이웃 성금을 모으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접한다. 어느새 타인의 불행은 늘 일어나는 사회의 한 풍경이 됐다. 늘어나는 사건·사고 속에서 사람들은 쉽고 간편한 방법을 이용해 타인의 불행에 공감하고 소통하고 있다고 말한다. 기사의 제목만 보고 누른 '좋아요' 버튼, 전화 한 통으로 전한 불우이웃돕기 성금 등은 진정한 공감과 값싼 동정 중 어느 쪽에 더 가까울까. 우리는 과연 그들의 불행과 고통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공감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크기와 생김새가 아몬드나 복숭아씨를 닮은 편도체는 외부 자극에 반응해 감정을 느끼게 하는 뇌 기관이다. 소설 『아몬드』(손원평, 창비, 2017)의 주인공 '윤재'는 선천적으로 머릿속의 아몬드, 즉 편도체가 작아 기쁨도 슬픔도 느끼지 못하는 '감정 표현 불능증'을 앓고 있다. 할머니와 엄마가 유일한 가족인 윤재는 사회에서 튀지 않기 위해 주입식 감정 교육을 받는다. 분노나 공포 등 모든 감정의 의미와 상황에 맞는 반응까지 함께 짝지어 외워야 했다. 엄마는 아몬드를 먹이면 윤재의 머릿속 아몬드도 커질 거라 생각하며 삼시세끼 윤재에게 아몬드를 먹인다.

 그러던 중 크리스마스 이브이자 윤재의 생일날, 외식하러 나갔던 시내에서 윤재의 가족은 불운한 사고를 겪는다. 묻지마 살인범이 휘두른 망치에 할머니는 목숨을 잃고, 엄마는 식물인간이 된다. 하지만 감정을 느끼는 못하는 윤재는 다른 구경꾼들처럼 엄마와 할머니가 죽어가는 걸 지켜만 본다. 주입식 교육으로 배운 감정표현은 윤재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 윤재는 느끼지만 행동하지 않고, 공감해도 쉽게 잊는 사람들을 탓하면서 생각한다.

 "멀면 먼 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외면하고, 가까우면 가까운 대로 공포와 두려움이 너무 크다며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이 느껴도 행동하지 않았고 공감한다면서 쉽게 잊었다. 내가 이해하는 한, 그건 진짜가 아니었다."

 윤재는 사건 이후 엄마의 중고 서점을 운영하며 평소 같은 일상을 이어나간다. 이에 친구들은 윤재를 사이코패스, 혹은 괴물 같은 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외톨이이던 윤재에게도 새로운 인연이 다가온다. 다정하게 말을 걸어주고 도움을 주는 '심박사'와 어릴 적 미아가 돼 분노로 가득 차있는 문제아 '곤'을 만나 윤재는 우정을 배운다. 곤과 윤재는 정반대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감정을 느끼지 못해 어떤 일에도 잘 반응하지 않는 윤재와 달리 감정이 넘치는 곤은 누군가를 때리거나 욕하고 나비를 찢는 등의 과격한 방식으로 윤재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을 표현한다. 그들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서로의 아픔에 공감하고 우정을 쌓는다. 윤재는 주입식 교육으로부터가 아니라 타인과 부딪치고 소통하며 진짜 감정을 배운다.

 손원평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4개월 된 아기를 보며 '이 아기가 어떤 모습이든 변함없이 사랑을 줄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스스로에게 가졌다고 말한다. 그 의문으로부터 '과연 나라면 그들을 사랑할 수 있었을까?'하고 의심할 만한 두 주인공 윤재와 곤이 탄생했다. 윤재는 선천적 원인으로 인해 사이코패스가 될 수도 있었지만 엄마와 할머니로부터 관심과 사랑, 즉 물과 햇빛을 제공받아 '보통의 인간'에 가깝게 성장한다. 곤 역시 보육원에서는 사랑받지 못해 문제아로 낙인 찍혔지만, 윤재를 만난 이후 소통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작가는 우리가 어느 정도 보통의 인간으로 자랐다면 일정한 물과 햇빛을 받은 거라고 말한다. 결국 한 인간을 완성하는 두 가지 요소는 타고난 기질과 주변 환경이며 사랑은 인간이 성장하는데 원초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나에겐 아몬드가 있다. 당신에게도 있다. 당신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거나 가장 저주하는 누군가도 그것을 가졌다. 아무도 그것을 느낄 수는 없다. 그저 그것이 있음을 알고 있을 뿐이다."

 

▲ 표시된 부분이 아몬드의 위치 <출처=위키미디아>

 우린 종종 상대방이 내 감정에 공감하지 못할 때 이들의 모습에 '불편함'을 느끼곤 한다. 상대를 이상한 사람이라 치부하고 멋대로 판단해 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나와 똑같은 감정을 느끼는 사람을 찾기란 거의 드물며 우리 역시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지 못한 적이 분명 있을 것이다. 누구나 윤재를 만나거나 윤재가 될 수 있다. 비난 받아야 할 것은 윤재의 진짜 감정이 아니라 손쉽게 소모되는 값싼 동정과 가짜 감정이 아닐까. 우리 역시 가짜 감정보다는 진심으로 타인과 부딪히고 소통할 때 우리의 아몬드를 따듯하게 데울 수 있다. 우리는 오늘도 주변 사람들의 진심 어린 관심과 사랑 덕분에 다양한 표정을 짓는다.

손혜선 기자
line_is@dong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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