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사설ㅣ천천히 가기, 한걸음씩 가기, 복수의 삶을 살며 모든 사람처럼 있기
ㅣ사설ㅣ천천히 가기, 한걸음씩 가기, 복수의 삶을 살며 모든 사람처럼 있기
  • 동아대학교 다우미디어센터
  • 승인 2017.12.04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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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한 학생이 찾아와 던진 이제 별로 새롭지 않은 화두. "나중에 어떤 직장에 들어가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할지 감이 안 옵니다." 그에게 스펙을 더 쌓으라고, 공무원 시험 준비에 매진하라고, 어쨌든 더 노력하면 된다고 얘기할 수 있는 것인가. 이 고민은 한편 지금 그가 대학에 있는 시간을 무엇으로 볼 것인가로도 환원시켜볼 수 있지 않을까. 상실한 자들이 삶의 출구를 찾아가는 주제를 그려내는 장 마크발레 감독의 '와일드(Wild)'. 실화인 이 작품에서 어머니를 잃고 상처와 방종으로 얼룩진 삶의 기억도 그대로인 주인공 셰릴 스트레이드는 미국 캘리포니아, 오레곤, 와싱턴주를 잇는 PCT(Pacific Crest Trail) 도보코스 4,285km를 배낭 하나 메고 무작정 걸어나간다. 거친 등산로, 눈 덮인 고산 지대, 아홉 개의 산맥과 사막, 광활한 평원과 화산지대로 PCT는 평균 152일이 걸리는 극한의 도보여행 코스로 연간 약 125명만이 겨우 성공하는 극한의 여정이다. 사람의 흔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PCT는 육체적인 피로는 물론 수시로 찾아오는 외로움과도 맞서 싸워야만 하는 절대 고독의 공간. 94일간의 사투 끝에 모든 것을 이겨낸 셰릴은 마지막 장면에서 잃어버린 자신을 상징하는 듯한 사막여우를 다시 만난다. "94일 동안 PCT를 걷는 것은 육체적으로 엄청나게 힘든 일이었지만 그에 못지않게 영적인 여정이기도 하다. 많은 이들이 힘들 때 자연에 기대는 것처럼 나도 그 길에 기댔고, 갈 곳을 잃고 절망하고 있을 때 그 길은 나에게 문자 그대로 한걸음 한걸음 내딛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이 여정을 기록한 자서전 와일드는 독일,프랑스 등 세계 21개국에서 출간되고 영화로 만들어지며 아카데미 3개 부문을 수상한다. 구체적 계산 없이 내디디는 존재감 충만한 오늘 이 한걸음이 이전에는 생각지도 못한 길을 그녀에게 열어 준 것이다. 소설 '조립식 보리수 나무'의 작가 조하형의 '장래희망'이라는 에세이. 어렸을 때, 지겹도록 듣게 되는 질문들 중 이런 게 있다: 커서 뭐가 될래? 몇 가지 목표를 정하고, 그것을 향해 정진하는 삶은 멋지다. 분명히, 멋지다. 그러나 다양한 것들을 향해 열린 채로 헤매다보니 뭔가가 되어 있는 삶, 그런 것도 나쁘지는 않다. 지금의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므로 그냥 가기. 그냥 살기. 다만, 긍정적인 의미에서 균열된 채로 그대로, 복수의 삶을, 다양한 삶을 살아내기. 항상, 이미, 몸을 가로지르고 초과해서 넘쳐흐르는 삶의 흐름들에 감응하기. 마주치는 우연/운명들을 긍정하며 변신하기. 그래서 싸울 때가 있고 죽은 체하면서 무위도식할 때가 있으며 노가다를 할 때도 있고 글을 쓸 때도 있는 법. 그리고 거기에서 더 나아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 감응과 변용의 극한으로 간다면, 갈 수 있다면 아마도 "세상 모든 사람처럼 존재"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무슨 일을 하든, 어디에 있든 세상 모든 것과 연결, 접속 가능한 '하이퍼텍스트-몸'에 도달하기. 그래서 "세상 모든 사람처럼 있기"― <천(개)의 고원>에 나오는 기묘한 화두. 영화의 끝 무렵에서 문득, 삶의 막막함에 지친 이들에게 지금 끌리는 길을 그냥 가보라고, 정해지지 않은 길로 정해지지 않은 답을 얻기 위해 그냥 한걸음씩만 내딛어 보라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대학을 취업과 진로의 도구를 제공하는 유용하고 실용적인 장으로 보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대학에서의 시간에 다양하고 열려있는 경험을 하는 것 또한 하나의 중요한 한걸음이 아닐까. 이 시간을 긍정적인 의미에서의 PCT 도보트래킹의 시간으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지금은 이렇게 노력하면 저렇게 되더라의 닫힌 정답이 있는 시대가 아닌 산업혁명 4.0 시대의 초입 아니던가. 그러니 그냥 천천히, 너무 서두르지 말고 걸어나아가 볼 것, 목표가 없는 목표, 걷는 것 자체가 걷는 것의 목표인 오늘을 지내볼 것. 주위를 돌아보며 서성거리기도 하고, 다시 또 다른 목표를 정하기도 하면서. 그리고 셰릴이 만났던 좋거나 나쁜 모든 하이커들이 그녀를 버티고 성장하게 해준 것처럼 타인들과 나누는 어떤 경험이든 긍정하면서 그냥 그저 지금 이 순간 부딪치는 모든 것을 100프로 살아내며 걸어가다보면 자신만의 사막여우를 언젠가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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