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조선'에서 살아남기
'헬조선'에서 살아남기
  • 강주희 기자
  • 승인 2018.03.05 14: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유형편>

▲ <일러스트레이션=최윤지 기자>

헬조선 [명사] 지옥을 뜻하는 영어 단어 'hell'과 대한민국을 지칭하는 '조선'의 합성어. 자산이나 소득의 수준에 따라 삶이 결정되고 신분으로까지 고착화되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지옥과 조선시대에 빗댄 말.

<용례> "한 달 뼈 빠지게 일해서 월세로 다 갖다 바치고… 여기 정말 헬조선 맞구나"
- 드라마 최강 배달꾼 中 -
"경희대 아이돌, 면접 없이 대학원 최종 합격? 헬조선 따로 없다?" - 누리꾼 -
<유사어> 지옥불반도
<반의어> 헤븐조선

 본지 1123호는 헬조선의 정의와 그 단어가 나타내는 청년들의 절규와 통탄의 삶에 대해 다뤘다. 2015년에 만들어져 유행처럼 번진 단어 '헬조선'. 그 후로 3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은 어떨까? 이제는 '헬조선'이라는 딱지를 떼고 '헤븐조선'으로 거듭나고 있는가? 살기 좋은 세상, 열심히 하면 꿈을 이룰 수 있는 세상은 왔나?

 아니다. 여기는 여전히 헬조선이다. 취업, 결혼, 내 집 마련, 출산 등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은 게 우리의 현실이다. 2018년 현재, 오히려 헬조선이라는 단어는 공중파 방송에서 쓰일 정도로 흔한 말이 됐다. 처음에는 농담조로 '헬조선'이란 말을 사용하곤 했지만, 이제는 더 이상 우스갯소리로는 들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한국이 헬조선으로 불리기 전에는 사는 게 쉬웠던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우리는 구석기 시대부터 치열하게 생존의 생존을 거듭해왔다. 구석기 시대든 헬조선이든 시대와 불리는 이름만 다를 뿐, 이 좁은 땅덩이에서 살아남기란 늘 어려운 숙제였다. 자, 그럼 이제 이 시대의 청년들은 어떻게 '헬조선'에서 생존해나가고 있는지 알아보자.

 

마이웨이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는 유형 

 - 너멍굴 식구들 -

 '만약'을 가정해보자. 당신은 취업난에 지쳐있다. 곧 취업이 되리라는 희망을 품은 채 계속 취업 준비를 할 것인가 아니면 무작정 시골 마을로 내려와 누가 보러 올지 의문인 영화제를 만들 것인가. 너멍굴 식구들의 선택은 후자였다. 선택의 이유는 단순했다. "재밌을 거 같아 보여서".

 윤지은(30, 너멍굴 집행위원장) 씨는 오랜 취준생 생활에 지쳐있었다. 세상의 빡빡함을 뒤로 한 채 자신만의 길을 가고 싶었다. 그래서 2017년 겨울, 대학 동기 진남현(30, 너멍굴 조직위원장) 씨가 터를 잡은 청정구역 완주로 귀촌을 선언했다. 처음에 윤지은 씨와 진남현 씨는 재미난 축제를 열자고 모의했다. 영화감독 지망생인 허건 씨가 독립영화제를 제안했고 본격적인 기획에 들어갔다. 전라북도 완주 고산면 외율마을. '저쪽, 산 너머에 있다'고 하여 마을 사람들은 그곳을 '너멍굴'이라고 불렀다. 장소 자체가 신선한 충격이었다. 너멍굴을 본 사람들은 '여기서 영화제가 가능하겠냐'고 말했다. 하지만 그들은 '어느 것 하나 완벽한 게 없는 영화제'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세웠다. 그 불편함 속에서 관객들이 나름의 의미를 만들어낼 것으로 생각했다. 곧 완주로 귀농·귀촌 한 12명의 청년들이 자원봉사자로 참여했고, 그들은 스스로를 '너멍꾼'이라 이름 붙였다. 너멍꾼은 이제 막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청년, 진로를 고민하는 대학생, 귀농·귀촌 청년 등 다양한 사람들의 집합체였다.  

 그들은 보수는커녕 자본과 일손도 부족한 상태에서 각자의 주머니를 털어 영화제를 준비했다. 논을 영화제 용지로 만들기 위해서 삽질도 했다. 열두 너멍꾼 모두의 자발적인 재능기부와 노동력이 동반됐고, 그렇게 서로 의지하며 노력한 끝에 지난해 9월 2일, 제1회 너멍굴 영화제가 열렸다. 홍보수단이라고는 SNS가 다였기 때문에 그들은 '10명은 올까?'하고 걱정했다. 그런데 웬걸. 영화제에는 100여 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너멍꾼들과 감독, 관객들은 텐트를 치고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밤을 지새웠다. 관객들은 "오랜만에 인위적이지 않은, 진정한 휴식을 취하고 간다"는 말을 남겼다. 너멍꾼들은 "(너멍굴) 영화제를 통해 이곳에 청년들을 위한 오아시스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윤지은 씨는 "경쟁 사회에 치여 잊고 지냈던 즐겁다는 감정을 배우고 있다"며 너멍굴 식구들처럼 다양한 삶의 형태가 있다는 것을 보고 청년들이 자신만의 길을 걸을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올해로 2회차를 맞이한 너멍굴 영화제는 9월 1일, 너멍굴에서 열릴 예정이다. 

 

탈출

'세상은 넓고 갈 곳은 많다' 한국을 떠나 타지에서 살아남은 유형 

 - 국제무역학 '17 졸 황지원 - 

 그녀는 미국으로 건너온 후 처음 햄버거 가게에서 치즈버거를 주문하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치즈버거 플리즈"라고 말하자 점원은 못 알아듣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치.즈.버.거"라고 또박또박 말해도 알아듣지 못했다. "취이이즈으으 벌걸". 한껏 혀를 굴리자 그제야 점원은 "오케이"를 외쳤다. 미국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버터가 필요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버터를 한껏 바른 혀가.

 황지원 동문은 현재 미국 B2B 업체에 소속돼 회사 내 물류와 배송, 창고 관리를 담당하고 있다. 그녀가 미국에 가고자 했던 이유는 실생활에서 영어를 자유롭게 써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부산시에서 진행하는 해외 취업 지원 사업인 '버킷챌린저'에 지원해 선발됐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미국으로 떠나기 전, 학내 KSS프로그램 등 외국인과 만날 수 있는 다양한 활동들을 꾸준히 했다. 덕분에 미국생활에 금방 적응 할 수 있었다. 특히 캘리포니아 사람들은 수다도 많고 다들 친근해서 많은 친구를 사귈 수 있었다고 한다. 

 직장에서는 공동책임을 지거나 남을 도울 일이 적어 자신의 일만 처리하면 된다. 수당 없는 주말 출근을 비롯해 야근도 없다. 정시퇴근이 원칙이고 초과근무를 하게 되면 시간당 추가수당을 받는다. 한국 회사에서는 퇴근 후 전체 및 부서 회식이 일상다반사다. 그러나 미국에는 회식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 가끔 동료의 집에 초대받아 며칠씩 머무르며 놀다 오기도 한다. 한국의 직장동료 사이에서는 흔치 않은 문화라 처음에는 낯설게 느꼈는데, 막상 가보니 가족같이 편하게 대해줘 좋은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평일에는 퇴근 후 거의 집에서 쉰다. 하지만 덜 피곤한 날에는 외식을 하거나 줌바 클래스에 참여, 야경이나 바다를 보러 가는 등 다양한 여가 생활을 즐길 수 있다. 주말에는 비행기를 타고 다른 도시로 여행을 가거나 함께 사는 하우스 메이트들과 차로 여행을 다니기도 한다.

 꿈같은 미국 생활에도 불편한 점은 있다. 차가 없으면 발이 없는 것과 같고, 치안도 나쁜 편이다. 또한, 한국처럼 아프다고 해서 바로 병원에 달려갈 수도 없다. 얼마 전 위장염을 앓은 그녀는 미국의 악명 높은 의료시스템을 경험하고는 몸서리를 쳤다고 말했다. 한국이었으면 일주일 만에 나았을 거라며 그 당시 한국이 정말 그리웠다고 토로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캘리포니아에 사는 지금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정시퇴근, 불필요한 회식 없음, 추가 업무 없음 등 우리가 직장에 바라는 최소한의 요구 사항을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WE CAN DO

'티끌 모아 태산' 한 사람 한 사람의 의지를 모아 변화를 시도하는 유형 

 - 청년정치크루 - 

 대한민국 청년이라면 열에 아홉은 겪어봤을 만한 '갑질'. 당신 또한 갑질을 경험한 적이 있을 거다. 그러면서도 당연한 듯 을의 처지를 묵묵히 감내해왔을 것이다. 그러나 청년정치크루의 회원들은 달랐다. "불공정한 룰을 바꿔보자." 그렇게 7명의 청년이 모였고 청년정치크루가 탄생했다. 

 그동안 정치권에서는 많은 청년 정책을 쏟아냈지만, 현실성이 떨어지는 일자리 양산 위주의 정책이었다. 이들은 청년들의 고민과 일상은 청년 본인이 가장 잘 아는 만큼 본인들이 직접 정책 입안 과정에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청년 정책을 연구했고 직접 만든 정책을 정당과 정치인들에게 제안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처음 이들이 모이게 된 결정적인 원인은 위메프 사태였다. 수습사원들에게 2주간 영업을 시키고는 채용 과정을 빌미로 전원 불합격 처리해 문제가 됐다. 청년정치크루의 회원들은 이를 처벌할 별다른 법조항이 없다는 것에 분노를 느꼈다. 그리하여 <취업준비생보호법>을 만들어 국회에 발의했다. 이는 '채용 과정을 빌미로 한 영업 이윤 편취 금지', '채용 공고 시 초봉 공개', '불합격자에 대한 통보 의무화'의 내용을 담고 있다. 해당 법안은 현재 국회의 검토 과정을 거치고 있다.

 그들은 말했다. "공정한 사회를 만들고 싶다." 가정환경과 부모, 지인의 힘에 따라 개인의 인생이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능력과 노력에 따라 삶이 결정되는 사회를 만드는 것. 이것은 꼭 청년 정치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정책 수립 단계에서 고려해야 하는 필수요소라고 그들은 강조했다. 청년정치크루의 이동수 대표는 "정책이라는 게 결국은 우리의 일상을 규정하는 규칙이다. 따라서 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인 정치에 관심이 없다면 그만큼의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우리가 더욱 나은 삶을 원한다면 뉴스에 나오는 정치인들의 싸움이 아닌 정책 자체에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들은 청년의 목소리가 반영된 정책을 통해 헬조선을 조금씩 바꿔나갈 수 있다는 믿음을 보였다.

 이동수 대표는 더불어 보수와 진보를 칼로 자르듯 구분하는 구시대적 정치 진영 논리를 깨고 싶은 욕심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세대만큼은 이념 논쟁을 떠나 열린 자세로 토론하고 합리적인 대안을 찾을 수 있으면 한다. 그런 정치 문화가 자리 잡힐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청년정치크루는 정치 단체이기 때문에 정치적 상황에 따라 운영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정치권과 함께 행사나 토론회 등을 준비하다가도 정계상황에 따라 취소, 변경되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다. 그래서 정치권에 의존하지 않고 자체의 브랜드를 키워야겠다고 결심했다. 현재는 크루의 인지도를 높일 수 있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그 중 하나로 그간의 크루 행보를 담은 책을 집필 중이며 3월 출간 예정이다.

 

<번외편>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피할 수 없다면 일단 하자! 근데 될까?…' 

 - 경성대 영여영문학 김지윤 - 

 나는 올해로 3학년이 됐다. "취업 준비는 4학년 때부터 해도 늦지 않아"란 말은 이제 옛말이다. 요즘은 1, 2학년들도 취업 걱정을 한다. 곧 발등에 취업 불똥이 떨어질 것으로 생각하니 가슴 한편이 답답하다. 상경계열 학과를 복수전공하기로 했다. 사람들에게 멀티플레이어가 되라고 말하는 이 시대에 학사학위 2개 정도는 기본, 자격증은 필수다. 이번 방학에는 기필코 자격증 두 개를 따겠다고 다짐하며 컴퓨터와 중국어 학원에 등록했다. 친구들을 보니 토익이며 한국사며 이것저것 공부하던데 나는 언제 다 준비할지 막막하다. 사실 휴학을 하고 싶었다. 잠시 쉬어가고 싶었다. 요새는 쉬고 싶어 휴학하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 휴학은 자격증이나 시험 준비를 위한 거라며 주변에서 만류했다. 그 '요새'라는 게 실감이 안 난다. 얼마나 심각하길래 다들 '요새는 그러면 안 된다'는 소리를 입에 달고 사는 걸까?

 졸업 전에 유럽여행도 한 번 가보고 싶었는데 올해도 못 가면 졸업 전에는 글렀다. 공부랑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정신없이 지내면 또 일 년이 훌쩍 지나갈 테고 그때는 진짜 '취준생'이 된다. 1학년 때는 스펙 쌓기에 혈안이 된 선배들을 보면서 내가 그러리라곤 상상도 못 했다. 그땐 그냥 어떻게든 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저절로 이루어지는 일은 하나도 없었다. 이제 내가 해내야 할 것들만 남았다. 

바늘구멍 같은 취직구멍에 골인할 수 있을까?

 청년실업, 경제적 불평등, 기득권층만을 위한 사회… 이런 상황 속에서도 청년들은 살아간다. 아니, 생존(survive)해낸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일지도. 

 어린 왕자가 말했다. "사막이 아름다운 이유는 보이지 않는 어딘가에 우물을 숨겨두었기 때문이야." 

 사막에 떨어졌다 해서 꼭 굶어 죽으란 법은 없다. 열심히 찾아 헤매다 보면 당신도 언젠가는 우물을 만나게 될 것이다. 오늘도 우리는 헬조선이라는 사막에서 각자의 우물을 찾기 위한 여정을 떠난다. 여기서 소개한 청년들처럼 우물을 찾는 방법은 다양할 것이다. 중요한 건 어딘가에 반드시 나의 우물이 있다는 믿음이 아닐까. 당신이 있는 그곳이 사막일지라도 나아가자. 그리고 보란 듯이 우리의 우물을 찾아내자.

 강주희 기자

 1714242@donga.ac.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부산광역시 사하구 낙동대로550번길 37 (하단동) 동아대학교 교수회관 지하 1층
  • 대표전화 : 051)200-6230~1
  • 팩스 : 051)200-6235
  • 청소년보호책임자 : 하승태
  • 명칭 : 동아대학교 다우미디어센터
  • 제호 : 동아대학교 다우미디어센터
  • 등록번호 : 대전 가 00000
  • 등록일 : 2017-04-05
  • 발행일 : 2017-05-01
  • 발행인 : 한석정
  • 편집인 : 하승태
  • 동아대학교 다우미디어센터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18 동아대학교 다우미디어센터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