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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없는 대화, 수어
우수현 기자  |  000@da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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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4.02  11:4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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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기사제목 옆 그림의 손 모양을 오른손과 왼손을 번갈아 바꿔가며 따라해 보자. 무언가를 주고받는 듯한 이 손동작은 '대화'를 뜻하는 수어이다.

 

 비청각장애인은 일상생활에서 많은 소리를 접할 수 있다. 부슬부슬 비가 오는 소리, 자동차 경적소리, 사람들의 말소리,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 등 여러 소리를 들으며 살아간다. 비가 오는 소리를 듣고 우산을 챙겨 밖으로 나간다거나, 자동차 경적 소리를 듣고 보도의 안쪽으로 몸을 피하는 등 비청각장애인들은 소리를 듣고 그 소리에 반응한다. 하지만 청각장애인들은 소리를 들을 수도 없고 그에 반응할 수도 없다. 그럼 청각장애인들은 어떻게 세상과 소통할까?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을 맞아 청각장애인들이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인 수어에 대해 알아보려 한다.

손이 하는 말
 수어는 손의 움직임과 비수지 신호(nonmanual signals, 얼굴표정과 몸짓)를 사용하여 표현하는 시각언어로 농인들의 일차 언어이다. '수화'라는 단어로 통용되고 있지만, 2016년 8월 수화언어법이 제정되면서 '수어'가 공용어로 채택됐다. 동시에 문화관광부는 농인이 한국수어로 자유롭게 소통하고, 청각장애인의 한국수어에 대한 인식 수준과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지난해 9월 '제1차 한국수어발전기본계획(2018~2022)'을 발표했다. 청각장애인들의 한국수어 능력향상을 위해 한국수어교재를 개발하고, 수어교사를 양성한다는 계획이 포함돼있다. 또한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국어 수어 검증시험을 실시하고, 수어 연구소를 설립하는 등의 지원책도 내놓았다.

 수어에는 여러 가지 신기한 특징이 있다. 첫째로 수어는 손동작을 이용하는 언어이기 때문에 특정 단어의 손동작을 거꾸로 할 경우 반대의 뜻이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밝다'는 양손바닥을 밖으로 향하게 하여 살짝 겹친 후, 좌우로 크게 벌린다. 반대로 손바닥을 밖으로 향하게 하여 좌우로 벌린 상태에서 손등을 겹치게 안으로 모아주면 '어둡다'의 의미가 된다.

 손동작의 방향에 따라서는 시제를 표현할 수 있다. 얼굴 옆쪽에서 뒤로 검지를 두 번 찌르는 동작은 '어제'를, 앞쪽의 허공을 향해 검지를 두 번 찌르는 동작은 '내일'을 의미한다. 이외에도 손동작의 높이로 이용계급이나 순서를 나타낼 수도 있다.

 수어로 단어를 표현할 때는 단어에 따라 지정된 손 모양을 활용한다. 이때 수어 단어는 특정 고유명사에 해당하는 실물의 모습을 본 따 만든 것이다. 동아시아권에서는 한자를 본떠 만들기도 한다.

 비장애인들은 말의 어조나 목소리의 높낮이로 감정을 표현하기도 하는데, 농인들은 소리 대신 얼굴표정을 이용해 감정을 표현한다. 이를 '비수지신호'라고 하는데, 수어의 수형이나 동작이 모두 같아도 비수지신호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기도 한다.

 많은 사람이 수어에 대해 오해하는 것 중 하나는 한 가지의 수어가 전 세계에서 통용된다는 것이다. 실제로는 각국마다 다른 수어체계를 사용한다. 하지만 나라마다 중복되는 표현도 많다. 우리나라 수어는 같은 아시아권인 일본, 중국의 것과 많이 유사하다.

   
▲ '짜장면'을 뜻하는 표준수어. 하지만 대구에서는 '라면'을 뜻한다.<일러스트레이션=최윤지 기자>

 

   
▲ '라면'을 뜻하는 표준수어 <일러스트레이션=최윤지 기자>

또 한 가지 재밌는 사실은 수어에도 구어(口語)처럼 사투리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서울에서는 짜장면으로 통하는 수어가 대구에서는 라면으로 통한다는 것이 그 예다. 표준 수어가 등록될 당시에는 라면이 닭의 육수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닭의 모습을 본 딴 수어가 만들어졌다. 손을 이마에 올리고 닭벼슬 모양을 만든 후, 양손을 이용해 라면을 먹는 흉내를 내는 것이 '라면'의 표준 수어법이다. 하지만 대구에서는 닭을 표현하지 않고 손가락으로 꾸불꾸불한 라면 모양을 그린다. 이는 표준 수어에서는 짜장면을 의미한다.

 지역별 억양에 따라 손동작이 달라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어디 가세요?"의 경우 서울에서는 마지막 손동작이 억양에 따라 올라간다. 그러나 문장의 끝 음을 높여 사용하지 않는 지방에서는 손을 위로 올리는 동작을 하지 않고 중간쯤에서 멈춘다.

그들만의 작은 화면
 한국 농아인협회는 농아인에게 △교육 △문화 △사회 △의료 등 전반에 걸친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단 법인체이다. TV 수화통역과 한글자막방송은 1999년 2월 한국 농아인협회가 꾸준히 요구한 끝에 MBC 문화방송을 시작으로 제공되기 시작했다. 이후 한국영화에도 한글자막이 제공되기 시작했다. 한국영화 역사상 최초로 높은 흥행성적을 거뒀던 영화 <쉬리>(감독 강제규, 1998)는 필름에 한글자막을 삽입해 상영했다.

 지난 2012년 11월 공중파 TV 3사에서 문재인·안철수 대선후보 토론회를 중계했을 당시 KBS와 MBC는 자막방송을, SBS는 수어통역방송만을 제공했다. 자막방송과 수어통역방송을 동시에 제공한 방송사는 한 곳도 없었다. 이를 문제 삼은 장애인정보문화누리는 당월 23일 기자회견을 열어 공중파 TV 3사가 선거방송과 선거광고에 수화와 자막을 동시 서비스하도록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중앙선관위) 차원에서 대책을 마련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공중파 TV 3사는 이후 수화와 자막 서비스를 동시에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지난해에도 19대 대선후보 토론회가 열렸을 당시 수어화면 제공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당시 대선후보 토론회에 참석한 후보는 5명이었으나, 통역사는 단 한 명이었다. 토론회를 시청한 농인들은 통역사가 통역하는 말이 화면에 나타난 두 명의 후보 중 누가 한 말인지 알 수 없어 답답함과 불만을 토로했다. 다음 회차에서는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했으나 3차 토론회에서도 변화는 없었다. 이에 분노한 농인들은 대선후보 토론회를 중계하는 방송사와 중앙선관위가 농인들의 참정권을 침해했다는 내용으로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올해 평창에서 열렸던 동계올림픽 개막식 현장 전광판에도 수어 통역은 제공되지 않았다. MBC, SBS는 수어 통역을 일절 제공하지 않았고, KBS는 IOC 위원장 연설 등 일부분만을 수어로 통역했다. 이에 장애계단체인 '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은 "시·청각장애인의 시청권을 보장하지 않았다"며 올해 2월 13일 인권위에 진정서를 냈다. 인권위는 이를 받아들여 평창올림픽 조직위원회에 수어 통역을 제공할 것을 권고했다. 그러나 평창올림픽 조직위원회는 "IOC와의 협의를 통해 결정해야 할 사항이기 때문에 폐막식 현장 전광판에 수어 통역은 제공할 수 없다"며 폐막식에서도 수어 통역을 제공하지 않았다. 단, 패럴림픽 개·폐막식에는 수어 통역을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인권위의 이와 같은 결정에 KBS와 MBC도 폐막식과 패럴림픽 방송 시 수어 통역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반면 SBS는 자막을 가린다는 이유로 수어 통역을 제공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전했다.

 2016년 8월, '수어'가 대한민국 공용어로 인정됐다. 그에 따라 '수화 사전 홈페이지'도 '수어 사전 홈페이지'로 바뀌었다. 홈페이지에서는 다른 홈페이지들과는 다른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수어 사전 홈페이지의 검색창 우측에는 '한글로 찾기'와 '수형으로 찾기'의 두 가지 서비스가 있다. '한글로 찾기'는 말 그대로 검색창에 한글 타자를 쳐서 검색하는 방식이고, '수형으로 찾기'는 손의 모양을 클릭해 관련 단어를 검색하는 방식이다. 홈페이지 좌측에는 △문화정보 △일상생활 △전문용어 등의 항목을 분류해 관련 수어를 찾기 쉽게 했고, △더 보기 △알려두기 △자세히 찾기 △전체삭제 등 홈페이지의 주요 메뉴 위에 마우스 커서를 올리면 그 단어를 뜻하는 수어를 영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한국수어사전 홈페이지를 이용해본 최정빈(화학공학 2) 학생은 "처음 홈페이지를 들어갔을 때 사이트의 모든 메뉴와 단어에 수어 영상이 떠서 놀랐다"며 "홈페이지를 사용하는 분들에게 전혀 불편함이 없을 것 같다. 일상생활에서도 청각장애인 분들이 불편해 하는 요소들이 많이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밝혔다.

"수어도 하나의 언어입니다."

   
▲ 가수 비투비가 청각장애인 팬과 함께 수어를 사용하며 노래하고 있다. <출처=딩고뮤직>

 수어가 공용어로 인정되면서 이를 널리 알리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7인조 가수 비투비는 지난해 10월 16일 '그리워하다'라는 노래로 컴백했다. 비투비가 무대에서 선보였던 안무는 수화를 응용한 것으로 일부 청각장애인들과 팬들에게 감동을 줬다. 같은해 11월에는 비투비가 '그리워하다' 노래를 한 청각장애인 팬과 함께 수화로 노래하는 영상이 공개돼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 '1일 1수화'의 모델 코가이가 '사탕'을 수어로 말하고 있다. <출처=설리번>

 소셜벤처 '설리번'은 '1일 1수화'라는 페이스북 페이지를 개설해 하루에 하나씩 수어를 알려주는 동명의 영상콘텐츠를 연재하고 있다. 커뮤니케이션 장애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만들었다. 커뮤니케이션 장애란 시각, 청각, 언어 장애를 모두 포함한다. 원종권 설리번 관계자는 "사실 수어라는 표현이 맞다. 하지만 우리 콘텐츠는 수어라는 말 자체를 모르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 '수화'라는 단어를 사용 하고 있다. 향후 '1일 1수어'라는 이름으로 변경할 예정"이라며 콘텐츠 이름에 대해 설명했다. 또한 콘텐츠를 연재하며 가장 보람 있었던 순간이 언제였느냐는 질문에는 "시작하는 것 자체가 큰 보람이었다"며 "최근엔 '1일 1수화' 페이스북 페이지로 수어에 대한 문의가 들어오곤 한다. 우리 콘텐츠가 수어에 대해 궁금증을 묻는 창구와 최신 수어영상 매체의 역할을 하는 것 같아 뿌듯하다"고 답했다. 이어 "수어는 하나의 언어다. 수어를 배움으로써 소통할 수 있는 사람들의 폭이 넓어져 여러 사람들을 만날 수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또 다른 언어인 수어를 배웠으면 한다"고 사람들의 수어에 대한 인식이 바뀌기를 소망했다.

   
▲ 숙명여대 장애학생동아리 '이루다안'이 '천천히 카페' 캠페인을 하는 모습 <출처=숙대신보>

 숙명여대 장애학생동아리 이루다안(安)은 '우리 안에서 모두가 편안하고, 우리가 원하는 것을 이루어낸다'는 의미로 창설됐다. 이루다안은 장애학생과 비장애학생의 소통을 지향점으로 삼고 △장애 인식 개선 캠페인 △강연 △천천히 카페 등 다양한 활동을 기획한다. 그중 '천천히 카페'는 이전에 진행한 활동 중 가장 특별한 활동이라고 소개했다. 이루다안 이다혜 부회장은 "자주 가는 카페를 떠올려보면 입구부터 계단, 문, 메뉴판 그리고 주문까지 비장애인에게'만' 편리한 시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불편함을 비장애인이 직접 경험해볼 수 있게 일일카페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카페에는 "수화로 받는 주문, 인공와우(인공 달팽이관) 건전지 판매 포스터, 의자 없는 좌석과 같은 요소들을 배치했다"며 "활동이 끝나고 한 번 더 운영해줬으면 한다는 학생들의 말을 들었을 때 큰 보람을 느꼈다"고 '천천히 카페' 활동의 소감을 밝혔다. 장애인식 개선활동에 대해서는 "특별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지 않는 것이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장애에 대해 사회문화적으로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사람들이 조금 더 효과적으로 문제를 인식할 수 있는 활동을 연구하는 것이 이루다안의 최종과제라고 생각한다"며 "우리 모두 무엇이 장애를 만드는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현재 우리 사회는 많은 요소가 비장애인들에게 맞춰져있다. 바깥에서 음식을 주문할 때, 교통수단을 이용할 때, 보행을 할 때 등 아주 기본적인 활동을 할 때조차 그렇다. 우리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누군가에겐 큰 장애물이 된다. 아주 잠깐이라도 장애인들의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본다면 금방 그들의 불편함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수어를 배우지는 못하더라도 기본적인 인사나 간단한 문장 정도는 수어로 외워보자.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고맙습니다"라는 간단한 손짓 하나가 그들에게는 말 열 마디보다도 진정성 있게 느껴질 수 있다. 아주 작은 배려가 그들에겐 반가운 '소리'가 된다.

우수현 기자
1700185@dong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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