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자유와 자치에서 미래를 찾다
[학술] 자유와 자치에서 미래를 찾다
  • 윤가람 기자
  • 승인 2013.04.02 11: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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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머 레인의 교육사상
▲ 호머 레인(1876~1925)

과도한 경쟁, 입시위주의 주입식 교육은 현재 우리나라 교육이 안고 있는 고질적 문제다. 대안학교는 현재의 교육문제를 타개하고자 15년 전 우리나라에 도입된 새로운 학교 공동체다. 이후 대안학교와 공교육을 접목시킨 혁신학교가 나타나면서 우리나라 교육환경은 또 한 번 달라졌다. 교육과정 운영의 자율권이 일정부분 보장되고, 학생들의 창의성과 비판적 사고를 중시하는 혁신학교는 시행 3년 만에 경기도에서만 123개 학교로 늘어나 대안학교의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다.

이러한 대안학교의 개념은 영국의 교육가인 알렉산더 닐을 통해 우리나라에 알려졌다. 그러나 이런 닐의 사상에 영향을 끼친 인물이 '호머 레인'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닐은 "호머 레인은 내가 알았던 모든 사람들 중 나에게 가장 큰 영감을 준 사람이었다"고 시사한 바 있다. 호머 레인은 아직 우리나라에서 생소한 이름이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닐에 대한 연구는 활발했던 것에 반해 호머 레인에 관한 연구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 대학 교육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한 배수희(엄궁초) 교사는 지난달 23일 우리 대학교 교육연구소의 제4회 정기 학술발표회에서 '호머 레인의 교육사상'을 주제로 발표했다. 배 교사는 "호머 레인의 사상은 아직 많이 연구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사상의 핵심 가치인 '자유와 자치'가 공동체의 의미를 새롭게 해 교사-학생-학부모 간의 관계형성에 도움이 될 것이라 보고 주제를 잡게 됐다"고 밝혔다.

교육실천가 호머 레인

호머 레인은 인간의 가장 큰 특징을 '자유'로 본 진보적 교육자다. 레인은 이론을 먼저 제시한 후 실제에 적용하지 않고 교육활동을 통해 사상을 확립했다. 이 때문에 레인은 교육사상가보다는 오히려 교육실천가에 더 가깝다고 평가받는다.

호머 레인은 보스턴에서 수공교육(Manual Education)으로 전문화된 슬로이드 교육대학(Sloyd Training College)을 다녔다. 슬로이드는 '기술(Skill)'을 의미하는 핀란드어로서 19세기에서 20세기로의 세기 전환기에 일어난 진보적 운동을 지칭하며, 성격발달을 육체노동에 대한 존중과 연결한 것이다. 슬로이드 방법(Sloyd Method)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강제성이 없다는 점인데, 이는 아동들이 강제적 방법으로 일하거나 학습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슬로이드 교육과정을 마친 레인은 1902년 디트로이트 공립학교들의 수공훈련 교사로서 근무했으며, 도시 운동장의 감독관직도 겸했다. 레인은 감독관직을 수행하며 '운동장에 있는 아동들에게 자유를 허용했을 때 아동들의 기본적인 선(Basic Goodness)과 같은 긍정적인 자질들이 표출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레인은 이 관찰경험을 통해 청소년들이 비행을 저지르는 원인이 그들을 억압하는 강제에 있다고 보고 이를 이론화했다. 그러나 이러한 레인의 지도방법은 교사의 권위를 빌어 훈육하던 전통적 방법과 많은 차이를 보여 1906년 감독관에서 물러나야하는 부분적인 이유가 되었다. 그 후 레인은 디트로이트 공립학교 및 도시운동장 감독관직의 경험을 바탕으로 아동발달과 교육에 대한 강연을 시작했는데, 이때의 강연노트를 묶어 편집해 출판한 책이 '부모와 교사들을 위한 아동교육론(Talks to Parents and Teachers)'이다.
이후 레인은 코먼웰스의 첫 번째 원장으로 임명되어 그의 교육사상을 펼쳤다. 코먼웰스는 공동체의 성격부터 특수성을 지닌다. 문제행동을 지닌 비행 청소년들을 모아 놓은 감화의 장소이면서 동시에 스스로 시민공동체를 구성하여 집단적, 개인적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공간인 것이다. 이는 학교나 보호소 같은 기관들이 지니고 있는 성격과는 매우 다르다. 관찰하고 감시하며 보호하고 제한하는 역할들을 힘에 근거해 어른이나 권위 있는 자에게 맡기는 것이 아니라 가족으로서, 시민으로서 역할을 하는 구성원들의 역량에 맡긴 것이다.

코먼웰스에 거주하는 아이들은 '시민'으로 불렸는데 이는 실제 시민으로서의 역할과 책임을 요구하는 단어다. 레인은 코먼웰스를 하나의 갱생 기관으로 바라보지 않았다. 그는 코먼웰스를 가족의 성격을 지닌 단위공동체로 만들기 바랐다. 공동체 안에서의 우정이 동료시민의 우정으로 남기보다는 가족 사이에서 나누는 우정에 근거하기를 바란 것이다. 이는 건강한 가족 내에서 발견되는 서로에 대한 비판의식과 솔직함을 포함한다. 친절과 좋은 말로만 구성된 것이 아니라 일종의 어려움도 수반하는 우정으로 좀 더 현실에 근거한 행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코먼웰스가 다른 기관과 차별되는 또 다른 점은 코먼웰스의 규칙은 시민들, 즉 아이들이 직접 만든다는 사실에 있다. 이곳에서는 14살이 되면 누구나 직접 법을 만드는 데 참여할 수 있다. 레인은 어른들이 흔히 행하는 '잘못된 권위'를 경계했다. 그가 보기에 아이들의 본성 속에는 신임과 신뢰를 따르는 어떤 기질이 있고, 이는 잘못된 거짓권위 아래에서는 결코 발휘될 수 없는 능력이라 여겼다. 그가 코먼웰스에서 아이들에게 스스로 규칙을 만들고 그 규칙을 통해 스스로를 통제하도록 한 것은 어른으로부터 나오는 권위의 부재를 의미한 것이다. 이는 아이들의 자유를 인정하는 것이며 자유로운 아이들은 본래의 선한 본성을 드러낸다고 레인은 생각한 것이다.

어른들의 권위에 익숙한 아이들은 처음에는 권위에 대항하여 자신들을 보호하는 수준인 원시적 형태의 협력만을 보였다. 하지만 코먼웰스에서의 생활이 계속되면서 사회와 규범에 대한 반감과 잘못된 관념들을 해소한 아이들은 좀 더 생산적인 일에 관심을 가지고 자발적으로 협동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이들 스스로 질서를 위해 규칙의 필요성을 느끼고 입법기구와 사법기구를 만들게 된 것이다. 코먼웰스의 이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시민법정'은 레인의 교육 사상이 핵심적으로 드러난 부분이다. 시민으로 대표되는 모든 구성원인 아동들이 법을 만드는 것부터 시작해 집행하고 판결을 내리는 것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을 실질적으로 운영함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속에서 우리는 그들이 속해있는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스스로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하는 과정을 무엇보다 중요시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자율공동체 코먼웰스

호머 레인이 코먼웰스 안에서 자유를 주고 자치를 실현하도록 한 것은 그가 자유를 인간의 가장 큰 특징이자 존재이유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대니얼 부어스틴은 "자유는 외적인 속박으로부터의 해방과 내적인 법칙에 대한 복종"이라고 말하며 자유의 특징을 정의했다. 즉, 인간의 본성은 본래 선하지만 주변의 부적절한 압력에 의해 다른 형태로 변질되었으며, 그 원인인 부적절한 압력을 제거하면 다시 본래의 선한 본성을 되찾는다고 보는 것이다.

그의 교육사상에서 자유와 자치는 어느 것이 우선이고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의 문제가 아니다. 억압이 해소된 내적인 힘을 지닌 자유는 외적, 사회적으로 자치의 형태로 확대되어야 하며 건강한 소통을 통한 관계로 맺어진 자치활동은 자아의 내적 발전을 도모하여 아이들을 자유롭게 한다.
레인이 코먼웰스의 운영을 통해 보여준 자유와 자치 중심의 교육활동은 '자유'와 '자치'가 책속의 글로 남아있을 때가 아니라 밖으로 튀어나와 실제로 아이들의 삶에 묻어날 때 진정으로 교육적 가치가 있음을 의미한다. 레인은 "자유는 주어질 수 없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요점이다. 자유는 아이가 스스로 누리는 것이므로 누군가 일방적으로 주거나 가르쳐줄 수 없기 때문에 어떠한 제도 속에서도 구체화될 수 없는 것이다. 즉, 자유는 책 속의 글로는 영원히 그 언저리에도 다가가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자유는 실천되었을 때에만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쳐 아이들이 스스로 자유를 누릴 수 있다면 감정이 자유로워진 아이들의 지적능력 역시 자연스레 함양돼 여러 가지 면에서 아이들의 발달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 레인의 생각이다.

자치 역시 공동체 안의 실제적 상황에서 그 의미가 분명해진다. 자치가 이루어지는 상황은 무엇보다도 그 선택이 실제 아이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그로 인해 자신의 선택과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하는 실제의 상황이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만 레인이 교육에서 중요시한 아이들의 자유 실현을 위한 교육적 의미의 자치활동이 가능하다.

레인이 코먼웰스에서 보여주었던 '권위 없는' 공동체의 의미는 힘에 근거한 거짓된 권위가 존재하지 않는, 사랑에 근거한 참된 권위가 존재하는 공동체를 의미한다. 또한 가족공동체와 같은 성격을 지니도록 해야 한다. 레인은 구성원에 대한 호의와 사랑을 기초로 하는 가족공동체의 성격을 지닐 때 자유와 자치의 교육적인 의미가 확대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즉, 레인이 교육적으로 보여준 자치활동은 사회생활에서 질서의 구성과 유지가 그 방식을 아는 일부 사람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 사회를 구성하는 당사자 모두에 의해 조절되고 유지되는 생활경험의 준비라 볼 수 있다. 코먼웰스에서 추구한 자치활동은 민주적인 태도와 방법, 과정을 내면화시켜 바람직한 민주시민이 되는 기반을 형성한다.

코먼웰스를 통해 살펴본 레인의 교육활동은 글이나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실천적 활동들이다. 그의 교육사상이 이론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실제 경험에서 비롯된 것처럼, 그의 사상을 이해하고 교육적 의미를 찾는 활동 역시 실천으로 다가서야 할 것이다. 

 

동아대학보 제110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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