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기행 모티] 매축지에 가면 부산이 있다
[부산기행 모티] 매축지에 가면 부산이 있다
  • 김강민 기자
  • 승인 2013.04.02 14: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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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티 : '모퉁이'의 경상도 사투리. 잘못된 일이나 엉뚱한 장소라는 의미로도 쓰임 

모티가 두 번째로 찾아간 곳은 동구 좌천동 '매축지마을'이다. 매축지(埋築地)란 둑을 쌓아 물을 막고 흙으로 메운 곳을 말한다. 일제강점기, 군마를 보관할 장소가 마땅치 않았던 일제는 부산앞바다를 메워 마구간을 건설했다. 광복 이후 이곳에 자리를 잡은 사람들은 바로 한국전쟁 피난민들이었다. 갈 곳이 마땅치 않았던 이들은 공터가 돼버린 매축지에 자연스레 정착하게 됐는데, 이때부터 사람들은 이곳을 매축지마을이라 불렀다.

▲ 매축지 마을 입구.

1970년대, 부산항이 현대화되면서 마을은 최대 호황을 맞이했다. 항구 및 공장 노동자의 거처가 됐기 때문이다. 경제호황이 절정에 접어든 부산은 늘어난 물류와 인구를 감당하기 위해 매축지마을 남쪽에 부산항 접속도로라는 큰 길을 내 버렸고, 동쪽으로는 범일동과 문현동을 잇는 고가도로를 건설했다. 이미 마을 북쪽과 서쪽에는 철길이 깔려 있던 터라 마을은 고립되기 시작했고 사람들의 기억에서 멀리 잊혀졌다. 개발이 마을을 '도시의 섬'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매축지는 이대로 잊혀선 안 될 곳이다. 부산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하는 마을이기 때문이다. 매축지는 부산이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까지의 모든 흔적을 품고 있다. 한국전쟁 이후 인구가 크게 늘었고, 부산항 발전의 영향을 받아 성장했지만 80년대 이후 성장이 정체된 것도 일치한다. 최근 들어 영화를 통해 주목 받고 있는 매축지는 그야말로 부산의 축소판이다.

매축지마을을 찬찬히 둘러보려면 성남이길를 따라 걸으면 된다. 성남이길은 마을을 가로지르는 좁은 길로, 우리가 흔히 자성대라 부르는 부산진지성 남쪽을 지나는 두 번째 길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이 길은 부산 진시장에서 시작돼 매축지마을을 가로질러 흐르다가 철길에 가로막혀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는 짧은 길이다.

진시장에서 매축지마을을 가려면 부산시민들이 '오바브릿지'라 부르는 고가도로 방면으로 가야한다. 시장 골목을 지나 찬찬히 걷다보면 오바브릿지 아래를 관통하는 굴다리를 볼 수 있다. 어두운 굴다리를 통과하면 잊혔던 그 마을과 마주하게 된다.

마을에 접어들면 성인 한 명 지나가기도 버거운 좁은 골목길이 이어진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몰려들었으면 이리도 촘촘하게 집을 지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조금 더 걷다보면 촘촘히 들어선 집 사이로 화장실이 눈에 들어온다. 바로 마을 사람들이 함께 사용하는 공동화장실이다. 매축지마을에는 화장실 딸린 집이 드물다. 공동화장실을 바라보던 기자에게 한 할머니가 "와? 신기하나"하며 설명했다. "매축지 여는 마구간에 고마 비 피할라꼬 들어와 산 기 시작 아이가. 전쟁 피해 몸만 내리왔으니 고마 살았고, 난주는 돈 벌기 바빠가 못 고치고, 인자 늙어가 못 고치니 이리 오래 됐다 아이가. 똥깐 갈 때마다 불편해 죽겄다." 할머니의 말처럼 동란을 피해 부산으로 몰려든 피난민들에게 집이란 비와 바람을 피해 몸 누일 곳이면 족했을 것이다. 그래서 마구간을 개조하거나, 벽과 지붕만 올려 세운 집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공동화장실을 지나면 영화 <친구>의 동수(장동건 분)가 벽 속에서 반항적인 눈빛으로 오가는 사람들을 노려보고 있다. 또 다른 곳엔 영화 <아저씨>의 한 장면이 벽화로 남아있다. 오래된 마을에 웬 영화그림일까. 궁금하다면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자. 그럼 낯익은 백색 4층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눈썰미 좋은 사람이라면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다. 바로 영화 <아저씨>의 '원빈전당포'다. 바로 옆 좁은 골목길은 소미(김새론 분)가 울면서 뛰어 들어간 그 골목이다. 또 영화 <친구>에 등장하는 네 명의 친구들이 달리던 그 골목도 여기다.

부산이 영화산업의 중심지로 성장하고 있듯 매축지마을도 영화 촬영장으로 각광받고 있다. 마을이 영화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찾아드는 관광객들 덕에 인적이 드물었던 마을에는 변화가 찾아왔다. 사람이 찾자 마을엔 재생사업이 시작됐다. 마을 곳곳에 벽화가 그려졌고, 무너져 내리던 빈 집은 헐어버리고 공원으로 거듭났다. 마을공동체도 부활해 카페와 갤러리를 열어 찾아오는 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원빈전당포를 오른쪽으로 끼고 돌아 좌천동 방면으로 걷다보면 거대한 담벼락을 만난다. 마을을 도시와 단절시킨 장본인, 철길이다. 철길을 따라가면 매축지와 도심을 잇는 육교가 나타난다. 이 육교만 건너면 매축지마을과 작별이다. 마을과 작별하기 전 육교 위로 올라 마을을 잠시 내려다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부산이 흘러온 과정을 그대로를 담고 매축지마을을 흐르는 성남이길 어딘가에 우리 미래 모습도 숨겨져 있을지 모르니까.

 

동아대학보 제110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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