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함진재에서 고려를 읽다
[학술] 함진재에서 고려를 읽다
  • 김지은 기자
  • 승인 2013.03.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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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진재 소장 강화경판 인경본과 사간판 인경변상도
▲ 함진재가 소장하고 있는 '예수시왕칠생경(預修十王七生經) 변상도'.

지난달 16일 우리 대학교 석당학술원 한국학연구소가 동아시아문물연구학술재단에서 '함진재 소장 고문서자료 연구'라는 주제로 학술대회를 열었다. 딱딱할 것 같던 학술대회는 우리나라 자료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분야의 학문에 대한 연구 발표로 이어져 흥미를 더했다.

발표는 정용수(국어국문학) 교수의 '국색천향의 통속적 성격과 조선유입의 의미'로 시작해 △이길원(국제학부) 교수의 '아메노모리 호슈의 언어관과 국제교류' △최영호(고고미술사학) 교수의 '동아대 소장 강화경판 『고려대장경』의 사료적 가치' △박은경(고고미술사학) 교수의 '함진재 소장 해인사 사간판 인경변상도의 현황과 특징'으로 이어졌다.

특히 세 번째와 네 번째 발표는 우리에게 낯익은 『고려대장경』을 주제로 하고 있어 관심을 끌었다. 대장경이란 경(經)·율(律)·논(論) 등 불교 삼장의 집대성으로, 해인사의 고려대장경판은 현재까지 보존되고 있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이다. 제작에만 16년이 걸린 고려대장경판은 경판의 수가 8만여 판에 달하며, 온갖 번뇌를 해소할 수 있는 8만4,000여 구절의 경전 말씀이 실려 있어 '팔만대장경'이라고도 부른다. 또한 몽골의 고려 침략으로 수도(京)를 강화도로 옮긴 시기에, 강화도에 임시적으로 설치된 국가담당기구인 대장도감 등지에서 조성되었다고 하여 '강화경판 『고려대장경』'이라고도 부른다. 고려대장경과, 고려대장경을 보존하고 있는 해인사 장경판전(殿)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및 세계문화유산으로 각각 지정돼 그 가치를 널리 인정받고 있다.

고려대장경 자료 모두 소장

해인사 장경판전이 소장하고 있는 경판은 대장과 외장으로 나뉜다. 대장은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대장목록』과 그 목록에 포함된 경판이다. 외장은 고려~조선시대에 만들어진 보유판과, 사간판 자료를 통틀어 말한다. 조선 고종 때 장웅스님은 대장에서 누락된 경판을 모아 목록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보유목록이며 이 경판을 보유판이라고 한다. 사간판은 누가, 언제, 왜 경판을 만들었는지 등의 기록 및 경위를 담은 발원문(지·발문)과, 사찰이나 지방관청에서 만들어진 경판 등을 총칭한다. 국내의 몇 대학에서 대장과 보유판만 사진으로 복사하여 출판한 것과 달리, 우리 대학의 '함진재'는 최근 사간판 자료를 추가로 확보해 해인사 소장 고려대장경 자료를 모두 소장하게 됐다.

대장경판의 탄생은 먼저, 몽골의 고려 침략을 극복하기 위한 모든 고려 사람들의 염원과 맞물려 있다. 동아시아의 패권을 장악한 몽골이 고려를 침략하면서 부인사에 소장된 초조대장경이 소실되자, 고려 조정은 대장도감과 분사도감이라는 임시기구를 설치하고 16년에 걸쳐 고려대장경을 조성했다. 부처의 힘으로 몽골을 물리치고자 했던 만큼 각수들은 한 글자를 새길 때마다 절을 세 번씩 할 정도로 심혈을 기울였다. 그래서 수천만의 글자가 하나같이 그 새김이 고르고 일정하다. 그렇게 탄생된 대장경판은 강화경(京) 도성 서문 밖 대장경판당에 봉안돼 있다가 고려 우왕~조선 태조 이전에 해인사로 옮겨져 현재까지 보존되고 있다.

개인 문집이나 조선왕조실록 등에 의하면 해인사 대장경판을 인경한 횟수는 최소 16회다. 함진재에 소장돼 있는 대장경판 인경본(이하 함진재본)은 1963년부터 5년간 공식적으로 인출한 13질 중 하나다. 함진재와 해인사에는 사간판을 포함한 외장자료가 거의 모두 담겨 있으며, 그 자료에는 변계선 안팎에 인경 당시의 각수 자료가 원형대로 새겨져 있다. 이러한 함진재본의 연구는 새로운 이해의 틀을 제시하고 당대의 역사·문화적 현상을 밝혀내는 등 다방면으로 활용되고 있다.

일제강점기 식민주의 학자들이 최 씨 무인집권자인 최이·최항 부자와 최이의 처남인 정안이 대장경판 조성사업을 주도했다고 해석한 것이 해방 이후에도 그대로 수용됐다. 이 과정에서 대장도감의 소재지나 제작 참여자 정보 등은 최 씨 정권이나 정안과 연결된 특정 종파나 사원세력으로 제한돼 파악됐다. 따라서 일부 전문백과사전에는 강화경판 제작 목적을 최이 부자의 개인적 수복기원과, 불교를 통해 백성의 단합을 꾀하려는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하지만 함진재본의 각수와 외장의 발원문 자료 연구를 통해 이 사업이 국가적 차원에서 이뤄졌다는 사실을 밝혔다. 최영호 교수는 "함진재본, 고려사의 최충헌 부 최항열전 등에 관한 연구 결과 강화경판의 제작 목적은 몽고 침략 격퇴와 함께 왕실과 왕권의 안녕, 국가태평, 불법 보급, 극락왕생의 기원 등에 있다"고 전했다.

외장의 발원문 자료에는 고려 사람들의 대외 인식관 역시 드러난다. 중국 연호를 생략하고 간지만 표기했으며, 국왕의 명령을 받드는 일을 봉칙(황제의 명을 받듦)이라고 표현한 것에서 고려 사람들이 자국을 중국과 대등한 황제국으로 인식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자주적 대외 인식관은 『고려사』에는 반영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신과 함께> 모티브 되기도

장경판전에는 강화경판 외에도 여러 사찰에서 제작한 '사간판 인경변상도'가 있다. 사간판의 경판 중에는 경구로 이뤄진 강화경판뿐만 아니라 60화엄경 변상, 80화엄경 변상 등 화엄경을 그림으로 표현한 변상판도 있다. 당시 사찰에서는 사람들에게 불경을 쉽게 가르치기 위해 변상판을 제작했는데, 이를 종이로 찍어낸 것이 인경변상도다. 사간판 변상판화는 외장자료이다 보니 대장인 고려대장경에 비해 눈길을 받지 못했다. 또 보관처가 드물고 열람이 쉽지 않아 연구가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함진재가 최근 확보한 인경변상도를 통해 기존의 연구에서 구체적으로 다루지 못했던 사례들을 주제별로 다룰 수 있게 됐다.

발표 가운데서는 '예수시왕칠생경(預修十王七生經)'이 눈길을 끌었다. 이 그림은 망자가 49일간 저승에서 이승의 삶을 심판 받는 모습이 형상화된 것으로, 2010년 인기를 끌었던 웹툰 <신과 함께>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망자의 삶을 심판하는 것은 바로 10왕이다. 그중 염라대왕은 업경을 통해 죄를 살펴보고 심판한다. 예수시왕칠생경은 10왕을 만나기 전, 즉 죽기 전에 죄를 뉘우치고 공덕을 쌓으며 살라는 교훈을 함의하고 있다.

효심을 표현하고 있는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에는 세계의 중심에 있다는 상상의 산인 수미산이 등장한다. 불교에서 세상은 아홉 산과 여덟 바다가 겹쳐 존재하는데, 가장 바깥쪽 바다 남쪽에 있는 섬에 인간이 살고 있다. 이 변상도에서 재미있는 것은 절벽에 그려진 여러 개의 짧은 선이다. 선들은 절벽의 굴곡을 목판에서 표현한 것이다. 이러한 입체적인 표현은 변상도의 높은 연구 가치를 보여준다. 또 아래에는 망자가 양쪽 어깨에 부모를 업고 산을 오르는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이는 부모를 업고 산을 올라도 효를 다 갚을 수 없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 한 폭의 그림에 미술사적 가치와 교훈이 동시에 담겨 있는 것이다.

정용수 교수는 "함진재에는 전국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중요한 자료가 많다. 하지만 많은 학내 구성원들이 그 중요성을 모르고 있어 학술대회를 열게 됐다"며 "앞으로 동아인들이 함진재 자료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연구원들이 계속해서 생겨났으면 한다"고 전했다. 학술대회의 내용에 대해서는 "중국자료와 일본자료, 인도에서 중국 등지를 거쳐온 불경을 주제로 하여 국내학자뿐만 아니라 외국 학자들도 관심을 가질만한 내용이었다"며 "함진재 연구가 우리 대학 위상을 제고하는 데 한 몫 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동아대학보 제110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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