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가씨>(감독 박찬욱, 2016)의 주인공 히데코(김민희 분)는 하루하루가 비슷한 단조로운 일상을 산다. 모든 것이 갖춰진 넓은 저택에서 그림을 그리고, 산책하고,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히데코의 새로운 하녀 숙희(김태리 분)의 등장과 함께 히데코의 삶은 송두리째 변한다. 히데코는 저택을 등지고 숙희와 함께 넓은 들을 가로질러 뛰어가며 이렇게 말한다.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나의 타마코, 나의 숙희."
히데코에게 숙희의 등장은 아마 단조롭다 못해 우울하게 느껴지는 일상을 탈피했다는 해방감과 새로운 세상을 마주할 두려움이 섞여 있었을 것이다. 이 복합적인 감정을 표현한 문장을 필자는 인상 깊게 받아들였다. 히데코에게 숙희가 '인생을 망치러 온 구원자'가 됐듯이, 필자에겐 학보사가 그런 존재였다.
학보사에 입사하기 전, 필자는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스무 살 새내기였다. 성인으로서 얻게 된 자유가 버거웠던 시절이었다. 청춘이 버거운 그 스무살 새내기는 학보사 기자 모집 공고를 보게 된다. 글쓰기에 나름의 자부심이 있어 콧대가 높았고, 학생 기자가 적성에 적합할 것이라 단정 지었다.
그 콧대가 무너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필자가 써낸 글은 빨간 펜의 흔적이 가득해져서 돌아왔고, 국·부장의 손을 거쳐 간신히 마감을 한 기사는 더는 내 글이 아니었다.
괜한 오기에 열과 성을 쏟으며 학생 기자 생활에 목숨을 걸었다. 휴학계를 내면서까지 학생 기자의 자리를 지켰다. 그만큼 필자에게 학보사는 '애증'이었다. 여기서 버티지 못하면 아무 데서도 버티지 못한다는 일념 하나가 필자를 채찍질했다.
지난호 신문이 가득 남은 배부대에서 신문을 치우고, 새로운 신문을 올려놓으며 느끼는 씁쓸함을 지우고자 공 들여 기사를 작성했다. 학생들이 관심 가질만한 주제를 기사 아이템으로 선정했고, 흔한 주제라도 재미있게 풀어낼 방법을 고안했다. 그렇게 치열하게 한 호를 찍어내면 한 달이 지나갔다. 그 한 달 한 달이 모여 한 학기가 되고, 한 학기가 모여 모두 6학기가 됐다.
그렇게 새내기였던 필자는 눈 깜짝할 새에 졸업을 바라보는 헌내기, 이른바 '화석'이 됐다. 사진 설명 한 줄 쓰기도 어려워하던 인턴 기자는 마감 전날에 데스크 칼럼을 쓰는 편집국장으로 진화했다. 청춘을 갖다 바친 대신 어디서도 얻을 수 없는 배짱과 깜냥을 얻은 것이다.
이런 추억들을 뒤로하고 필자는 이번호를 마지막으로 학보사를 퇴사한다. 그간 필자에게 '학생 기자'라는 신분은 족쇄이자 동시에 영광이었다. 내 대학 생활과 청춘을 순삭(순간 삭제) 시켰지만, 나를 성장할 수 있게 해준 학보사에게 이젠 안녕을 고한다.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나의 학보사, 나의 동아대학보,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