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청년, 뉴-트로에 빠지다
21세기 청년, 뉴-트로에 빠지다
  • 동아대학교 다우미디어센터
  • 승인 2019.06.03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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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엄청 핫한 아이템이다!"
인기 예능 프로그램인 MBC <나 혼자 산다>(2013)의 지난해 9월 방영분에서는 동묘시장에서 사 온 빈티지룩을 입어보는 배우 정려원의 모습을 보며 패널들이 '핫한 아이템'이라는 말을 꺼냈다. 시대를 역행한 듯 투박한 모습의 물건들이 '핫한 아이템'이라는 말을 듣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통이 넓고 헐렁한 바지와 어딘가 촌스러워 보이는 체크남방, 품이 넉넉한 재킷과 복고 영화에서나 본 듯한 디자인의 가방은 언제부턴가 유행에 민감한 청년들의 필수 아이템이 됐다. 80년대 청년들이 입었을 법한 옷들, 먹었을 법한 식품, 걸었을 법한 거리의 풍경들을 2019년의 청년들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해 향유하고 있다. 레트로가 돌아왔다. 뉴트로라는 이름으로. 

  유행은 돌고 돈다. 트렌드가 된 #뉴트로

  "전남에 여행을 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 가봤던 곳들이 전부 뉴트로 분위기였어요. 특히 순천에서 뉴트로 열풍이 불고 있었는데, 옛날 분위기의 드라마 세트장과 70-80년대 교복을 빌릴 수 있었던 대여소가 기억에 남아요. 그때 찍은 사진들도 너무 예뻐서 아주 재밌는 여행이 됐던 것 같아요." - 김나현 (사회학 2)

인스타그램에서 '#뉴트로'로 검색한 결과
인스타그램에서 '#뉴트로'로 검색한 결과

  '뉴트로 감성'은 특정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은 채 소비 시장 전반의 트렌드로 자리매김했다. 서울대 소비트렌드 분석센터는 올해 우리 사회 소비의 핵심 키워드 중 하나로 뉴트로를 꼽았다. 이들이 펴낸 책 『트렌드 코리아 2019』(김난도 외 8명, 미래의 창, 2018)에 따르면 뉴트로(New-tro)란 기존의 복고(Retro)와 다르게 젊은 세대가 익숙하지 않은 옛것을 새로운 콘텐츠로 받아들이는 '새로운 복고'를 의미한다. 특히 청년층은 복고 컨셉의 소비문화를 경험하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공유하는 방식으로 과거 문화를 즐기고 있다. 실제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 중 하나인 인스타그램에는 3만 개가 넘는 게시물이 '#뉴트로'라는 해시태그를 달고 있다. #빈티지감성 #레트로 #뉴트로패션 #뉴트로인테리어 등 다양한 종류의 관련 태그는 뉴트로가 SNS를 주로 이용하는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 출생한 세대를 가리키는 말)에게 대세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준다. 

  현재 청년들이 향유하고 있는 '뉴트로 감성'은 비교적 최근인 80-90년대는 물론 '개화기 감성'이라고 불리는 1900년 초반대의 컨셉도 포함한다. 개화기(開化期)란 1876년 강화도 조약을 시작으로 국내에 서양 문물이 들어온 시기를 말한다. 한복을 입던 의복 문화가 '양복'이라는 형태로 파격적인 변화를 거쳤으며, 당시의 트렌디한 청년들은 '모던보이', '신여성' 등의 별명을 가지게 됐다. 앞서 언급한 인스타그램의 #뉴트로 태그와 같이 #개화기 #개화기컨셉 #개화기의상 등의 태그를 가진 게시물 또한 3만 개를 훌쩍 넘겼다.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질감의 원피스와 레이스 장갑을 낀 채, 맞춤 정장 부티크를 재현한 스튜디오에서 사진을 찍는 모습은 지금의 청년들이 향유하는 '개화기 감성'의 대표적인 모습이다. 현대 청년들은 신여성과 모던보이가 돼 그 시절을 하나의 콘텐츠로써 체험하며 공유하고 있다.

  그 시절 감성으로 소비자를 잡아라

  뉴트로 트렌드의 강점은 그리움과 새로움의 중간 영역에 절묘하게 멈춰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뉴트로는 중장년층에겐 향수를, 청년층에게는 새로움과 재미를 선사하며 전 세대에 걸쳐 인기를 얻는 문화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영국의 전설적인 록 그룹 '퀸'의 열풍을 일으킨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감독 브라이언 싱어, 2018)는 퀸의 음악을 듣고 자란 30-50대뿐만 아니라 퀸을 접해보지 못한 10-20대의 관람객도 많았다는 점에서 대표적인 뉴트로 현상으로 꼽힌다. 

  이에 식품, 패션 등 소비자의 취향을 누구보다 빠르게 파악해야 하는 업계에서는 너나 할 것 없이 뉴트로 감성의 제품들을 계속해서 쏟아내고 있다. 

어글리 슈즈 열풍을 일으킨 디스럽터2 시리즈
어글리 슈즈 열풍을 일으킨 디스럽터2 시리즈

  휠라(FILA)코리아는 뉴트로 패션의 대표 주자이자 가장 성공한 사례다. 지난해 휠라 코리아가 내놓은 운동화 '디스럽터2'는 국내에서만 150만 켤레가 팔리며 휠라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휠라가 1997년 처음 선보인 디스럽터에 이어 두꺼운 아웃솔, 톱니바퀴 모양의 오버솔 등 투박한 디자인을 그대로 살린 디스럽터2는 어글리 슈즈 열풍을 이끌었다. 휠라는 디스럽터2를 기반으로 한 뉴트로 감성의 제품들을 흥행시켜, 지난해에는 매출 2조 9,600억 원, 영업이익 3,570억 원을 기록해 전년 대비 각각 17%, 64%씩 증가한 모습을 보였다. 

  롯데월드는 지난 3월 초부터 시작한 봄 시즌 축제의 테마를 개화기로 잡았다. '개화기 축제 오픈. 모던걸, 클래식 보이 냉큼 나오시오!'라는 슬로건을 내건 해당 축제는 놀이동산 곳곳을 조선 근대의 거리 풍으로 꾸미고 개화기 의상 대여점을 설치해 개화기 감성을 느끼고픈 고객들의 취향을 저격했다. 뉴트로 트렌드를 반영해 과거로의 여행을 경험할 기회를 방문객에게 제공한 것이다.

  CJ제일제당은 1950년대 백설 브랜드의 초기 디자인을 활용한 뉴트로 컨셉의 한정판 '백설 헤리티지 에디션'을 내놨다. CJ제일제당 식품사업의 주축인 설탕을 포함해 소금, 참기름, 밀가루 등 네 가지 제품으로 구성됐다. CJ제일제당 측은 해당 패키지를 "60년 이상 이어져 온 백설 브랜드의 정통성을 계승하고, 대표 요리 소재 브랜드로서 새로운 모습을 통해 다양한 소비자에게 다가가기 위해 기획했다. 옛 감성을 흥미롭게 받아들이는 밀레니얼 세대 공략을 통해 젊은 브랜드 이미지를 강화하고자 한다"라고 소개했다. 

  그런데, 개화기(開化期) 제대로 알고 있니?

  한편, 이러한 청년들의 과거 여행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현재 청년들이 소비하고 있는 뉴트로 컨셉이 역사적 사실을 정확히 인지하지 못한 채 자본주의 시장의 인기 콘텐츠로서만 소비되고 있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롯데월드의 개화기 봄 축제는 이름을 '개화기(開化期)'가 아닌 '개화기(開花期)'로 표기해 역사적 시기를 중의적 표현으로 포장했다는 논란을 샀다.

논란이 됐던 롯데월드 축제 포스터
논란이 됐던 롯데월드 축제 포스터

  강보라(행정학 3) 학생은 "조선의 모던걸과 모던보이는 당시 현대적인 삶을 영위하는 계층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사회적 모순과 퇴폐의 온상으로 비판받던 집단이라는 것을 얼마 전 책을 통해 알았다"며 "단어가 내재한 여러 가지 의미는 모른 채 이를 유행처럼 사용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국사편찬위원회의 '우리역사넷' 사이트는 개화기 및 대한 제국기는 1876년부터 1910년까지로, 일제강점기는 1910년부터 1945년으로 구분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청년들이 즐기는 개화기 컨셉의 화려한 의복들은 사실 1930년대에 유행하던 상류층의 옷차림에 가깝다. 1930년대 의복이 명확한 시대 구분 없이 마치 개화기 문화인 것처럼 여겨지고 있는 것이다. 

  이에 김정선(고고미술사학) 교수는 "근대 문화를 알리는 데에 '개화기 감성'이 큰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지만, 조선이 근대화된 시기와 배경은 매우 양립적인 측면이 있기에 청년들이 이를 인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뉴트로 열풍을 이끈 미디어콘텐츠에 힘입어 최근 근대문화를 알아보려는 젊은 층의 시도가 늘었다며 "개화기 감성이라 불리는 현재 트렌드가 역사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는 부분에서는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젊은 세대가 근대역사를 타자화해서 바라보고 있는 현상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김 교수는 "현재 대부분의 청년이 개화기와 일제강점기를 정확히 구분하지 않고 그즈음을 모두 개화기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 정확한 개념 없이 자의적으로 시기를 추측한 채 역사를 받아들이는 행위는 역사 왜곡의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더불어 "모던걸, 모던보이는 1920-30년대 소비와 향락이 일상화되기 시작했던 경성을 배경으로 출현한 새로운 풍조로, 현재의 청년들이 그들이 향유했던 서구적인 외양만을 표층적으로 소비하거나, 마치 이를 근대를 대표하는 문화로 받아들이는 것은 지양해야 할 태도"라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그는 "과거의 문화를 재해석해 향유하는 것은 긍정적인 현상이지만, 역사적으로 중요한 시기를 인식하고 향유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일러스트레이션 = 최윤지 기자
일러스트레이션 = 최윤지 기자

조은아 기자·강민석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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