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원작을 만나다│ 어쩌면 다르지만, 같은 우리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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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지민 기자
  • 승인 2019.12.09 10: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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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
▲영화 <82년생 김지영> 스틸컷 <출처=네이버뮤비>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태도는 갈등을 불러온다. 갈등을 해소하고 상대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여기,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여성의 삶'을 자세히 보여주는 작품이 있다.

영화 <82년생 김지영>(감독 김도영, 2019)은 1982년 봄에 태어나 누군가의 딸이자 아내, 엄마로서 평범한 삶을 사는 여성 김지영(정유미 분)의 삶을 보여준다. 임신과 육아 때문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 그녀는 딸 아영(류아영 분, 책에서는 지원)을 키우며 매일 고군분투한다.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이 지극한 남편 대현(공유 분)이 지영과 육아를 함께 하려 하지만, 여성의 손에 떠맡겨진 돌봄 노동의 현장에서 함께하는 것은 물론 돕기조차 쉽지 않다. 그러던 중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버린 지영이 언젠가부터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행동하는 이상한 모습을 보인다. 영화는 김지영이 이상 행동을 보이며 생기는 부부의 이야기를 다룬다. 

원작은 『82년생 김지영』(조남주, 민음사, 2016)이라는 소설이다. 작가 조남주 씨는 이 도서로 2017년 오늘의 작가상을 받았으며, 현재 도서는 국내 베스트셀러 등극은 물론 전 세계 각국으로 번역돼 출간되고 있다.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작품이 영화화되는 등 뜨거운 관심을 방증하듯 작품을 둘러싼 논쟁도 뜨겁다. 여성의 입장만을 내세워 한국 사회를 일반화시키고 있다는 의견과 현재 우리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여성의 이야기를 누구보다 자세하고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다는 의견이 충돌하며 해당 작품은 젠더 갈등의 중심에 서게 됐다.

 

"가끔 네가 다른 사람이 돼."

작품은 중심 사건이 되는 지영의 이상 증세를 우리 사회에 뿌리내리고 있는 '남아선호사상'에 기인한 것으로 풀이한다. 지영의 이상 증세는 남성을 중심으로 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가장자리로 밀려난 여성의 입장을 대변하는 역할을 한다. 어린 시절부터 당연한 듯 강요됐던 여성에 대한 차별이 지영의 내면에 쌓이자 어느 순간부터 지영은 다른 사람이 돼 상황에 대한 심정을 솔직하게 표출한다.

지영의 이상 증세가 어디에서 기인했는가를 보여주기 위한 기법에서 영화와 도서는 큰 차이를 보인다. 도서에서는 그의 증상이 어디에서 왔는가를 독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일기 형식'으로 구성됐다. 지영의 삶을 연도별로 구성해 그가 경험한 차별의 역사를 연대기로 정리했다. 한편 영화는 회상을 위주로 지영의 삶을 써 내려간다. 지영이 다른 사람이 되기 전 과거를 회상하며 그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먼저 제시한 후 회상 장면의 중심인물로 변하게 된다.

 

"나도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커피나 마시면서 돌아다니고 싶다."

도서에서 지영을 향해 던져진 '맘충'이란 말은 여성에 대한 차별적 시선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으로 꼽힌다. 지원(영화에선 아영)을 어린이집에서 데려와 커피를 마시며 산책하는 지영의 뒤에서 직장인 무리는 "나도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커피나 마시면서 돌아다니고 싶다", "맘충 팔자가 상팔자다"라고 말한다. 그들에게 반박하긴커녕 부리나케 공원을 빠져나온 지영은 종일 멍한 상태로 상황의 충격을 곱씹을 수밖에 없다. 이는 돌봄 노동에 혼자 내던져진 여성의 고충을 이해하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실감케 한다.

한편 영화에서는 똑같은 상황을 다르게 연출한다. 아영 때문에 커피를 쏟은 지영은 '맘충'이라는 똑같은 험담을 듣지만, 그는 책에서 보인 모습처럼 자리를 황급히 떠나지 않는다. 자신을 아냐며, 잘 모르는 사람에 대해 함부로 얘기하지 말라는 당당한 경고의 모습은 영화를 보는 관람객에게 씁쓸함과 동시에 통쾌함을 선사한다. 똑같은 사건을 놓고 지영이 전혀 다른 태도를 보이는 이 장면은 영화와 책의 결말이 다를 것임을 암시한다. 도서는 지영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오히려 다른 여성에게도 똑같은 잣대가 적용됨을 암시하지만, 영화는 지영을 둘러싼 갈등이 차츰 해소돼 가는 모습을 그렸다.

이에 감독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일부러 차별점을 둔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으며 오히려 결이 같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소설의 결말은 다소 씁쓸했는데, 영화에서는 대단한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위로받은 마음을 조금은 더 쉽고 편안하게 전달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일간스포츠 '82년생 김지영' 김도영 감독 "원작과 비교 피할 수 없다는 생각" 2019.10.23 참고). 또한 "관객들이 '그래 괜찮을 거야 좀 나아질 거야'라는 믿음을 가지고 극장 문을 나서길 바란다"고 도서와 다른 결말에 대해 언급했다(네이버무비 '제작기 영상 Chapter 1. 82년생 김지영을 만나다' 참고).

▲책 『82년생 김지영』 <출처=민음사>

 

모두가 알지만, 아무도 몰랐던 당신과 나의 이야기

책과 영화로 서술된 82년생 김지영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보편적인 여성의 이야기를 잘 풀어 여성에게 적용되는 사회적 차별을 날카롭게 지적했다는 평을 받지만,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여성의 입장에서만 사회를 바라봤다는 비판을 받아 보는 이의 시각에 따른 차이가 극명히 나타나는 작품이 됐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제껏 사회적으로 대두되지 않았던 '여성의 자세한 삶'을 들여다보는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물론 하루아침에 변화가 생기진 않는다. 오랜 시간 동안 누적된 사회적 시선과 이에 따르는 차별적 태도를 바꾸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작품이 말하는 것처럼 서로에 대한 공감이 이뤄진다면, 새로운 '김지영'의 이야기가 쓰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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