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노동자도 영화롭길
영화 노동자도 영화롭길
  • 박서현 기자
  • 승인 2020.11.16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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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1일부터 30일까지 10일간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이하 부국제)가 열렸다. 영화제 기간에는 국내영화를 대상으로 한 부일영화상 시상식이 개최됐다. 지난달 22일 열린 올해 부일영화상 최우수 작품상은 <벌새>(감독 김보라, 2019), 최우수 감독상으로는 <유열의 음악 앨범>(2019)의 정지우 감독이 수상했다. 이렇게 화려한 영화가 관객을 만나고 좋은 작품으로 평가받아 트로피를 받기까지 수많은 사람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땀방울을 흘린다. 관객인 우리는 이 숨겨진 구슬땀을 기억해야 한다.  

 한국 영화계의 새로운 물결

영화 <기생충> 해외 포스터 <출처=eclairplay 홈페이지>

지난해 개봉한 <기생충>(감독 봉준호, 2019)은 한국 영화 최초 칸영화제 황금종려상과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을 차지해 전 세계적인 화제를 모았다. 또한, 지난 2월에는 <도망친 여자>(감독 홍상수, 2020)가 제70회 베를린국제영화제 감독상을 받았다. 이처럼 최근의 한국 영화는 웰메이드(well-made)라 불리며 세계적으로 주목받음과 동시에 영화계의 새로운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한국 영화는 100년이라는 장대한 역사를 지니고 있지만, 1980년대 초까지 한국 영화는 권력에 의해 억압받아 왔다. 그러나 1985년 제5차 영화법 개정으로 국가로부터 검열이 완화되면서 한국 영화는 자유를 누리게 됐다. <바람 불어 좋은 날>(감독 이장호, 1980)을 필두로 <만다라>(감독 임권택, 1981), <칠수와 만수>(감독 박광수, 1988) 등과 같은 신선한 작품이 등장했다. 이 작품들은 권력에 구속받던 기존 작품과는 달리 현대의 시대상을 감독의 세계관과 결부시켰다는 평가를 받으며 한국 영화의 새로운 흐름을 보여 줬다. 이러한 변화를 '코리안 뉴 웨이브'라고 불렀다. 이는 영화계의 세대교체를 이루며 한국 영화의 새로운 부흥기를 끌어내는 것에 성공했다. 이에 힘입어 1996년 부산국제영화제가 개막했고 봉준호, 박찬욱, 이창동, 홍상수 등으로 대표되는 세계적인 감독을 배출해 냈다.
 
이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비주류였던 여성 감독의 작품 또한 완성도가 높다고 평가받으며 영화계의 블루칩으로 떠올랐다. 2016년 개봉한 <우리들>(감독 윤가은, 2016)이 백상예술대상에서 시나리오상을 수상하는가 하면, <우리집>(감독 윤가은, 2019)은 독립영화로서 누적 관객 수 5만 명을 돌파했다. 또한 <벌새>(감독 김보라, 2019)와 <메기>(감독 이옥섭, 2019)는 각각 베를린국제영화제 '제너레이션 14플러스'(성장영화) 부문 대상과 부국제 'KBS 독립영화상' 등 4관왕을 차지해 웰메이드 영화임을 증명했다. 지난 8월 개봉한 <남매의 여름밤>(감독 윤단비, 2020)은 코로나19에도 누적 관객 수 2만 명을 돌파하는 등 여성 감독의 저력을 보여 줬다는 호평이 잇따랐다.

우리 대학교 임수현(전기공학 3) 학생은 "웰메이드 작품의 해외 진출로 인해 한국의 위상이 높아졌다"며 "특히 <기생충>에 등장하는 채끝살 짜파구리가 관객들의 이목을 사로잡아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국 식품 온라인 판촉전을 열 정도로 파급력이 있었다. 영화가 주는 효과는 한국에 대한 위상과 홍보로 이어지기에 앞으로도 이와 같은 작품들이 많이 제작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조명 뒤편 영화 노동자의 현실


이렇게 높아진 한국 영화의 명성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영화를 만드는 과정은 구시대적이라는 평가가 많다. 영화 제작의 기획, 제작, 개봉 과정은 최소 수개월, 최대 수년이 걸린다. 더불어 제작 과정에는 감독을 포함한 많은 노동자가 동원된다. 영화계에서는 제작에 참여하는 주요 근로자를 '헤드 스태프'라 칭한다. 헤드 스태프에는 △제작 △프로듀서 △주연 △각본 △촬영 △조명 △편집 등을 포함한 많은 직군이 존재한다. 이들에 대한 고용환경이나 복지 처우는 열악한 현실이다.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이하 영화노조)은 2012년부터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와 세 차례에 걸쳐 '노사정이행협약'을 체결했다. 협약의 주요 내용은 △4대 보험 의무적용 △표준근로계약서 사용 및 적용 등이었다. 지난해 5월 영진위에서 발표한 '2018년 영화 스태프 근로환경 실태조사'에 따르면 제작 기간의 1일 평균 근로시간이 12.3시간으로 나타났다. 이를 주 5일 근무로 계산할 경우 '주 52시간 근무제'를 초과하게 된다. 또한, 표준근로계약서를 통해 계약한 경우는 전체 825명 중 90.2%(744명)로 나타났으며, 4대 보험 가입률은 73.1%(603명)로 나타났다. 특히 4대 보험 가입률은 2012년의 11.9%에 비해 61.2%p 증가했지만, 스태프들은 여전히 개선된 근무 환경을 체감하기 힘들다는 의견이다.

독립영화 조감독 이준혁 씨는 "한국 영화의 위상은 높아졌지만, 근로자들의 근무환경과 처우는 여전히 열악한 현실"이라며 "설상가상 코로나19로 영화 산업이 위기를 맞아 표준근로계약서나 4대 보험 가입이 더 어려워졌다"고 호소했다. 더불어 그는 "주 52시간 근무제가 적용되면서 업무 강도는 나날이 더 심해져 과로나 산재를 겪는 근로자들도 있어 영화노동자 처우 개선에 대한 관련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며 의견을 전했다.

영화계에는 노동자 성비 불균형 문제도 존재한다. 영진위에서 지난 6월 발표한 '한국 영화 성 평등 정책 수립을 위한 연구 보고서'에 의하면, 2009년에서 2018년까지 10년 동안 개봉된 영화를 연출한 감독 1,525명 중, 여성 감독은 176명(11.5%)으로 소수다. 헤드 스태프 12개 직군 가운데 △촬영 △조명 △사운드는 여성 종사자 비율이 가장 낮다. 촬영 분야를 보면 10년간 개봉한 영화의 촬영감독은 1,832명이지만 그중 여성은 7.1%(130명)로 낮으며 지난해 한국촬영감독조합 전체 회원 98명 중 여성은 단 4명에 그쳤다. 조명 분야는 성별 불균형이 가장 심각한 직군으로 꼽힌다. 실제로 조명감독 1,268명 가운데 여성은 31명밖에 되지 않았다.

학업과 촬영 및 연출 업무를 병행하는 안소은(한양여대 영상디자인학 2) 씨는 "다른 직군에 비해 특히 촬영과 조명 분야는 여전히 남성 근로자가 대다수"라며 "무거운 소품을 들 때 '여자라서 못한다'는 선입견이 있어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일부 여성 근로자들은 무리하게 일하다 다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영화계에 성희롱과 성추행도 만연하다. 실질적으로 이를 신고하기 어려운 환경이라 성범죄의 대상이 되지 않기 위해 머리를 밀고 촬영장에 나오는 여성 근로자도 있을 정도"라고 덧붙였다.

'영화의 도시' 부산의 영화 노동자 역시 노동법 사각지대에 서 있었다. 2018년 10월, 청년 노동권 향상을 위한 노동조합 '청년유니온'에서 영화제 스태프 노동실태 제보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 결과, 부국제는 2018년 영화제 기간 동안 스태프 149명에게 약 1억 4,200만 원의 임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또한, 고용노동부에서는 부국제가 퇴직 스태프를 포함한 모든 스태프 176명에게 야간·연장·휴일근로수당도 미지급했다고 밝혔으며, 부국제의 총임금체불 규모는 5억 2,448만 원에 이른다. 그뿐만 아니라 부국제는 △여성 스태프 11명 동의 없이 야간·휴일근로 강행 △스태프 31명 연장근로 주 12시간초과 등 근로기준법 위반 사실도 드러났다.

청년유니온 김영민 사무처장은 "부국제 임금체불 논란 이후 영화제마다 스태프 처우 개선을 위한 정책토론회를 실시하고, 영진위에서는 처우 개선 정책연구를 시행해 노동 환경 개선하고자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며 "영화·영상산업 정책이나 사업계획서를 구상할 때 실제로 종사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얼마나 잘 대변하고, 이해했는지가 중요하다. 해당 과정에서 종사자들의 직접적인 참여가 한국 영화계 발전에 큰 도움을 줄 것"이라며 의견을 전했다. 

영화 <기생충> 제작 현장 <출처=CJ엔터테인먼트 유튜브>

 

레드카펫, 차별과 착취의 아이콘이 되지 않길


영화노조는 '영화노동자 권리 찾기 수첩'과 같은 보고서와 '각종 피해 제보하기' 홈페이지 배너를 통해 영화 스태프들의 노동권을 지키고자 노력하고 있다. 영화노조 이상길 수석부위원장은 "최근 몇 년 사이 영화산업 내 법 기준 준수 등 많은 개선이 있었지만, 영화인 근로시간은 여전히 초과하는 상황"이라며 "노동 안전 분야에서도 많은 개선이 필요하고, 무엇보다도 대다수가 비정규직인 영화 노동자에 대한 임금 수준 가이드 마련이 시급하다. 노사정이 적극적으로 영화 산업 내 문제에 대해 논의해야 할 것"이라며 당부했다.

동의대 김이석(영화학) 교수는 "좋은 작품이 나오기 위해서는 좋은 창작자가 필요하다. 하지만 한국 영화계의 노동 환경 개선은 뒤처져 제작 환경이 어렵다"며 "한국 영화계가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영화 제작자와 노동자들에 대한 처우 개선과 지원 정책이 더더욱 확대돼야 한다"고 전했다.

붐 마이크를 들고 안소은 씨 <제공=안소은 씨>

또한, 영화계는 노동 분야뿐 아니라 다양성 문제도 해결하려 고민 중이다. 세계적인 위상을 가진 아카데미 시상식은 지난 9월 작품상 수상 자격에 다양성 조항을 추가하겠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백인 남성 중심의 획일화된 기조를 벗어나려고 도전하는 만큼 국내 영화계에서도 다양성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지난 9월에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영화감독조합 주관 하에 '벡델데이 2020' 행사를 개최해 지난 10년간의 한국 영화를 돌아보며 영화계의 다양성과 양성평등을 지향하기 위한 과제를 논의하는 장을 열기도 했다.

안소은 씨는 "영화계의 다양성을 위해 여성 근로자에 대한 편견이 사라져야 하고, 모든 영화계에서 영화 <걷기왕>(감독 백승화, 2016)과 <우리들>처럼 촬영 전에 모든 스태프를 상대로 성희롱 방지 교육과 아동 배우에 대한 사전 교육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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