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전염병과 외부인 혐오증
│사설│ 전염병과 외부인 혐오증
  • 동아대학교 다우미디어센터
  • 승인 2021.09.06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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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그 시작부터 전염성 병원균과 사투를 벌여왔다. 흑사병, 스페인 독감, 천연두는 인류 역사를 뒤바꾼 대표적인 전염성 병원균이다. 흑사병은 14세기 유행해 당시 유럽 인구 3분의 1에 해당하는 약 7,500만 명을 사망케 했다. 스페인 독감은 1차 세계대전 무렵 창궐해 약 5,000만 명을 죽게 만들었다. 1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사망자가 약 1,600만 명인 것을 감안하면 병원균이 전쟁보다 더 많은 목숨을 앗아간 것이다. 천연두는 기원전부터 유행해 1980년에야 종식됐다. 천연두처럼 박멸된 전염병도 있지만, 사스, 메르스, 코로나19까지 전염병이 인류를 위협하는 역사는 현재진행형이다.


인류는 병원균에 맞서 정교한 생리적 면역 체계를 진화시켜왔다. 그러나 면역 체계가 작동하더라도, 병원균에 전염된 이후에는 신체 기능이 약화되거나 목숨이 위험해지기도 한다. 그래서 인류는 생리적 면역 체계와 함께 심리적 면역 체계를 진화시켜왔다. 이러한 심리적 면역 체계를 심리학자들은 행동 면역 체계(behavioral immune system)라고 부른다. 사전에 주변의 병원균을 탐지하고, 병원균과의 접촉을 피하도록 우리의 사고, 정서, 행동을 조절하는 것을 말한다. 행동 면역 체계는 병원균으로부터 인류를 보호하는 방역의 최전선인 셈이다.


행동 면역 체계는 화재경보기처럼 신호 탐지 원칙에 기반한다. 화재경보기는 화재가 발생하면 경보음을 울리고, 그렇지 않으면 경보음을 울리지 않는다. 문제는 화재인지 아닌지 모호한 상황이다. 화재가 났는데 경보기가 반응하지 않을 경우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불러올 수 있다. 때문에 화재경보기는 작은 연기에도 경보음을 울리게끔 설계돼있다. 화재가 아닌데도 화재경보기가 울리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이유다. 인간의 행동 면역 체계도 마찬가지다. 병원균도 한 번이라도 놓치게 되면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래서 행동 면역 체계는 일말의 병원균이라도 포착하면 즉시 경보음을 울리도록 설계돼있다. 이처럼 민감한 행동 면역 체계 덕분에 인류는 병원균의 위협으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었다.


예로부터 병원균의 주된 감염원은 외부인이었다. 과거에는 적절한 치료법이나 백신이 없어 외부인을 멀리하는 것이 유일한 방어 수단이었을 것이다. 외부인에 대한 공포, 반감으로 정의되는 외부인 혐오증(xenophobia)은 인류의 행동 면역 체계에서 비롯된 지극히 자연스러운 반응이라고도 볼 수 있다. 문제는 병원균에 대한 위협이 커질수록 외부인 혐오증이 과일반화(過一般化)된 형태 즉, 외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배척하는 행동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강타하면서 외부인에 대한 무조건적인 혐오감이 커져가고 있다. 이처럼 행동 면역 체계의 모든 경보음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할 경우 개개인은 병원균의 위협에서 안전할 수 있겠지만 사회 결속력은 저해될 수 있다.


코로나19 바이러스와 그에 동반하는 외부인 혐오증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먼저 행동 면역 체계가 잘 작동하는 사람이라면 병원균의 위협 앞에 외부인을 경계하는 것이 정상적인 반응임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과거와 달리 현재 인류에게는 병원균에 대한 지식과 기술이 축적돼 있다. 덕분에 행동 면역 체계가 보내오는 경보음 중 오경보는 어느 정도 걸러낼 수 있게 됐다. 따라서 우리는 행동 면역 체계의 작동 기제를 이해하되, 이것이 무조건적인 외부인 혐오증으로 흐르는 것을 억제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코로나 바이러스를 종식시키기 위해 우리 모두가 힘을 합치고 지혜를 모을 수 있는 길이다. 

본지 논설위원 
사회학과 최혜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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