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헌 집 줄게, 서울 새집 다오
부산 헌 집 줄게, 서울 새집 다오
  • 정찬희 기자
  • 승인 2022.03.07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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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잠자리는 어디인가. 청년의 개인 성취, 처우와 삶의 개선, 사회에 대한 배려 모두 부산의 잠자리에서 행해진다면 그것은 곧 지역 발전으로 통한다. 그렇다면 부산은 청년의 잠자리를 보장해 주고 있는가. 부산은 수도권으로 떠난 청년의 잠자리를 보장하지만, 부산에 발 디딘 청년의 잠자리는 서늘하다. 같은 잠자리서도 다른 꿈을 꾸는 우리가 '이상동몽'을 바라도 되는 걸까.

<제공=홍제 행복기숙사>

 

부산의 눈길 사로잡은 '재경기숙사' 

 

재경기숙사는 수도권 대학으로 진학하는 대학생을 대상으로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와 서울시, 공공부서 등이 협업해 건립한 공공기숙사다. 입사생은 지자체의 도움으로 10만 원대의 저렴한 비용으로 거주가 가능하다. △남도학숙 △구미학숙 △강원학사 등 지자체 주도 기숙사가 있는가 하면 행복기숙사와 같은 공공기관 주도  기숙사도 있다. 


근래들어 부산시의 청년 유출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한국고용정보원이 2019년 발표한 '비수도권 청년인구의 유출과 수도권 집중: 최근의 변화'에 따르면 1993년에 5-9세가 된 인구를 100으로 둘 경우, △15년 후(2008년) △20년 후(2013년) △25년 후(2018년) 인구변화를 조사한 결과 부산은 20-24세에서 91.7%로 감소하더니 25-29세에서는 83.9%, 30-34세는 75.6%로 급격히 감소했다.


조사에 따르면 20-24세 대비 25-29세의 인구 유출은 광역시 중 대구를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수치를 보였고, 25-29세 대비 30-34세 인구 유출은 전 지역을 통틀어서 가장 심각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이에 부산시는 계속되는 인구 유출을 막기 위해 '재경기숙사 사업'을 꺼내 들었다.


부산 동래구는 지난 2019년 한국사학진흥재단이 운영하는 홍제구 행복기숙사와 계약을 체결해 매년 동래장학회로부터 1,200만 원의 장학금을 10명의 입사생에게 지원한다. 또한, 서울 강서구 내발산동에 위치한 공공기숙사는 구비 약 2억 원을 들여 사용권을 양도받아 4명의 입사생에게 매년 250만 원의 장학 기금을 지원한다.


기장군도 2016년부터 재경기숙사 건립에 뛰어들었다. 기장군은 △경주 △울주 △영광 등 원전 소재 지자체와 연합해 건립을 추진하고 있으며 부산시 주도 기숙사 사업으로는 처음이다. 사업비는 한국수력원자력에서 400억 원을 지원하기로 했으며, 이중 기장군은 111억 원을 투입한다.


북구와 남구에서도 유사한 움직임을 보  였다. 지난 13일 북구의회 김태식 의원(이하 김 의원)은 임시회 5분 발언에서 '재경학숙' 사업을 제안했다. 김 의원이 구상하는 재경학숙 사업은 한국장학재단 또는 한국사학진흥재단 등과 협약을 맺어 기존의 시설들을 장기적으로 활용하는  구조로 동래학숙 등과 같은 지자체 사업 구조와 유사하다. 


전국 15개가 넘는 기초자치단체에서 재경기숙사 사업을 진행 중인데, 지자체에서는 왜 재경기숙사 사업에 뛰어들까. 이는 지역 인재에게 성장 기회를 부여해 지역 발전에 이바지할 것이라는 기대가 반영됐다는 해석이 존재한다. '재경대학생 기숙사 설립 타당성 및 설립방안'(양기근, 2007)에 따르면 재경기숙사 설립 및 운영이 지역 인재의 질적 향상에 기여하고 애향심을 불러일으킴으로써 향토 인재를   확보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또한 재경기숙사 설립을 통해 학생들은 재경 유학비용을 절약할 수 있고 이를 자신의 특기와 적성 개발을 위한 교육 기회로 확대하기 쉬울 것이라 주장한다. 본문은  재경기숙사를 내실있게 운영한다면 최소한 이들에게 경남에 대한 애향심과 더 나아가서 졸업 후 조건이 크게 차이 나지 않으면 고향에서 직장을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높여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유출 막을 수 없다면 되돌아오도록


그렇다면 재경기숙사는 실질적으로 지역 청년에게 도움이 될까. '지방자치단체의 지역인재육성정책에 관한 연구-재경기숙사지원의 운용효과 분석'(최보훈, 2007)에 따르면 재경기숙사를 운영하는 단체의 공통된 정책 목표는 △국가 및 지역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인재양성의 필요성 △수도권 진학 학생의 면학 환경 조성과 학부모 부담 경감 △지역의 애향심 고취 △인구 유출방지 크게 네 가지로 구분된다.


해당 자료는 재경기숙사 사업이 수도권 대학 진학 예정자 혹은 재학자의 가족이 고향을 떠나 수도권에 정착하지 않도록 방지하는 효과를 설명한다. 또한 재경기숙사의 수혜를 받은 6개 학사 3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85%(25명)가 만족감을 드러내 사업의 필요성을 환기했다.


실제 지난달 4일 동래장학회 자유게시판에는 '항상 감사드립니다'라는 제목으로 재경기숙사 사업의 수혜를 받은 학생이 고향과 장학회에 감사를 전했다. 게시글에는 '어려운 환경에서 서울로 대학을 가게 되면서 거주 문제로 고민이 많았는데, 동래학숙 덕분에 안심하고 제 꿈을 위해 공부할 수 있게 됐다'며 '힘든 시기에 도움받은 만큼 저도 다음 세대와 사회에 도움을 주는 훌륭한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감사의 글을 남겼다.


재경기숙사를 건립하고 운영하는 대부분의 지자체는 지역 인재의 성장을 곧 지역 발전으로 이해한다. 남도학숙의 경영 목표를 살펴보면, 지역 인재가 저렴하고 안정된 환경에서 학업에만 전념해 미래사회를 주도할 역량을 갖추도록 지원하는 것을 사업 비전으로 제시한다. 수도권 대학 졸업자가 △취업 △기술 전수 △교육 등의 이유로 귀향하지 않더라도 그들의 성장과 성과 자체가 지역에 이바지한다고 파악  하는 것이다.


김 의원은 "수도권 대학에 진학이 예정됐거나 재학·졸업한 학생을 부산에 억지로 붙잡을 수 없기에 재경기숙사 사업이 청년 유출을 방조한다고 볼 수는 없다"며 "재경기숙사를 운영하기 위해 편성되는 예산은 전체의 극히 일부로, 이 사업이 학생들에게 애향심을 심어줄 수 있다면 수도권에서 취업해 성장하더라도 추후 지식이나 자본이 부산으로 투입되는 것을 기대할 수 있다"고 전했다. 이어 "결국 부산에 필요한 것은 유능한 지도자와 교육자이며 재경기숙사는 그것을 위한 장기적 투자로 바라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시 내발산동 공공기숙사 전경
<제공=태안군청>


싸늘한 '진짜' 지역 청년

 

부산 청년의 사정을 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올해 우리 대학교에 입학하는 A 학생은 "1학년이고 울산에 거주해 당연히 교내 기숙사에 입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 마음 놓고 기다렸지만, 예비 번호를 받게 돼 막막하다"고 심정을 토로했다. 그는 "최초합격자로 입학했는데도 입사에 어려움이 있다는 게 이상하다"며 "경제적으로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선택지는 교내 기숙사뿐"이라고 한탄했다.


또한 동래구가 운영하는 동래학숙, 기장군이 건립 추진 중인 재경기숙사 그리고 북구의회에 발의된 재경학숙 모두 입사생이 졸업 후 취업 시 귀향하도록 유도하는 장치가 전혀 마련되지 않았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2020년 10월, 부산인재평생교육진흥원에서 발표한 '대학-지역연계 중장기 발전계획 수립' 자료에 따르면 수도권(서울, 경기, 인천) 대학을 졸업한 4,888명 중 24명(0.49%)만이 부산에서 취업한 것으로 나타나 실질적으로 부산 출신 수도권 졸업자가 취업을 위해 귀향하는 순기능을 기대하기 어렵다.


정작 부산에는 공공기숙사가 부재하다는 것에 대한 지적도 존재한다. 그나마 부경대행복기숙사가 △국토교통부 △한국사학진흥재단 △교육부 자금을 투입해 건립한 동시에 부산시가 일부 호실을 장기임대해 타 대학생을 수용한 유일한 기숙사다. 그러나 이 또한 24개 대학 300명에 한해 모집하는데 그친다.


부산시 관계자는 이에 "부산시는 현재 역외 우수 인재 유치와 정주 환경 기반 조성을 목적으로 관련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며 "공공기숙사 건립의 경우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수요와 재정의 상황, 기타 정책과의 관계 등 한정된 예산안에서 정책을 수립해야 하는 여건 상 많은 고민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부경대행복기숙사의 경우 "표기된 300명의 인원은 부산시 전형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위기에 처한 지방대학의 인재양성 - 어떻게 지방자치단체와의 협력을 확대할 것인가?'(선정원, 2021) 논문 역시 지역 인재 양성의 돌파구를 지역에서 찾을 것을 당부했다. 자료에 따르면 지방자치단체와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필요한 지역인재가 매우 부족할 뿐만 아니라, 해당 지역에 거주하려는 의지가 부족하고 지역의 유무형 자산이나 지역특색에 대한 관심도 매우 부족한 것이 지역 인재 유출에 어려움을 초래했다. 이때 지난해 대학 입시에서 지방대학 입학지원자의 감소가 두드러지지 않은 대학이나 학과는 대학교육이 취업과 확실하게 연계된 대학이라며 타개책을 제시했다. 


박형준 부산시장이 청년 핵심 정책으로 내세운 '지산학 협력 사업'은 부산 소재 대학이 지역 인재를 확보해야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취업이 교육의 연장선이라는 사업 관점에서 지역 인재가 수도권에서 교육의 터를 잡는다면 산학의 연계가 매끄럽지 못해 최대 효용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재경기숙사가 부산의 시선 밖에 있는 것도 사실이다. 동래구는 동래장학회와 협업해 사업을 운영하고, 기장군 또한 한국수력원자력공사와 재경기숙사 설립을 구·군별로 추진하고 있다. 동래학숙 담당자는 "최근에는 타 구에서도 종종 재경기숙사 사업을 문의한다. 재경기숙사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 것 같다"며 "지역과 국가에 기여하는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재경기숙사  사업이 시 단위 사업으로 확장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우리 대학 김나현(환경공학 4) 학생은 "차라리 부산으로 돌아온 청년들에게 지원하는 게 나을 것 같다"고 꼬집었다. 그는 "수도권으로 진학한 학생들을 지원하는 것은 좋으나, 불확실한 사업을 조건 없이   지원하는 것은 의아하다"며 "부산 청년을 위한 월세 지원 사업이나 주거 선택지를 다양하게 하는 정책이 우선돼야 한다"고 전했다.


김 의원 또한 "부산에 실질적으로 거주하는 청년들을 위한 공공기숙사 등 거주 복지가 충분하지 않아 안타깝다"며 입을 모았다. 이어 그는 "공공기숙사 등 청년 거주 환경을 위해 지자체 시도 단위에서 지원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며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부산 청년들이 머물 수 있는 주거나 일자리 환경을 마련해 대기업을 유치해야 수도권으로 대학을 진학한 학생들도 돌아올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정찬희 기자
radiant@dong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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