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끝난 것 같지만 끝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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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아대학교 다우미디어센터
  • 승인 2022.05.02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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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식(한국어문학) 교수

"시내에서 올라오는 환희의 외침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리유는 그러한 환희가 항상 위협을 받고 있는다는 사실을 상기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그 기쁨에 들떠 있는 군중이 모르는 사실, 즉 페스트균은 결코 소멸하지 않으며, 그 균은 수십 년간 가구나 옷가지들 속에서 잠자고 있을 수 있고, 방이나 지하실이나 트렁크나 손수건이나 낡은 서류 같은 것들 속에서 꾸준히 살아남아 있는다. 그리고 언젠가는 인간들에게 불행과 교훈을 가져다주기 위해 또다시 저 쥐들을 흔들어 깨워서 어느 행복한 도시로 그것을 몰아넣어 거기서 죽게 할 날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가 쓴 <페스트>의 한 장면이다. 작품의 마지막에 주인공 리유는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군중을 보면서 이처럼 생각했다. 


지난달 18일부터 사회적 거리두기의 모든 조치가 해제됐다. 식당, 카페 등의 운영시간, 사적 모임 인원수 제한 조치를 모두 해제한 것이다. 다만, 마스크 착용은 추후 경과를 보면서 결정한다고 했다. 그동안 우리를 괴롭혔던 코로나19가 끝나는 듯하다. 술집에는 사람들이 붐비고 캠퍼스에는 학생들이 많아지고 있다. 너무나 그리웠던 일상들이다. 얼마 전, 점심 식사를 마치고 연구실로 오면서 운동장 벤치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는 한 무리의 학생들을 보면서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 이토록 소중한 것임을 새삼 느꼈다. 파릇한 새싹을 배경으로 편안하게 앉아서 대화를 나누는 그들의 뒷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페스트>의 내용은 이러하다. 가상의 도시 '오랑'에서 강력한 전염병 페스트가 발생한다. 도시는 봉쇄되고 사람들은 혼란과 충격에 휩싸인다. 질서는 무너지고 죽음에 대한 공포는 이성을 마비시킨다. 그 와중에 의사인 리유를 비롯한 몇몇 주인공들은 희망을 잃지 않고 미래를 준비한다. 결국 리유가 백신을 만들게 되고 이로 인해 페스트는 사라진다.


<페스트>는 '한 가지의 감옥살이를 다른 한 가지의 감옥살이에 빗대어 대신 표현해 보는 것은, 어느 것이든 실제로 존재하는 그 무엇을 존재하지 않는 그 무엇에 빗대어 표현해 본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합당한 것이다'라는 말로 시작한다. 원래 이 말은 영국의 소설가 다니엘 디포가 한 말인데 카뮈가 <페스트>의 제사(題詞)격으로 활용했다. 그는 세계 2차대전의 비참함을 페스트라는 전염병에 빗대어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다. 


카뮈는 이 작품을 1947년에 썼는데 그 당시 페스트는 '존재하지 않는 그 무엇'이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는 너무나 분명하게 '존재하는 그 무엇'이 되었다. 존재하지 않을 것 같던 그 무엇이 실제로 존재하게 된 것은 무엇 때문일까?


리유의 말대로 바이러스는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변이'할 뿐이다. 변이는 사멸되지 않기 위해 변화된 환경에 적응한 결과물이다. 리유는 그것을 정확히 알고 있었고 군중들의 환호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변이가 출현하여 또다시 일상을 감옥으로 만들 수 있음을 예고한 것이다. 리유의 말을 상기한다면, 우리는 지난 2년을 단순한 감옥살이로 받아들이고 우리 삶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시간으로 기억하면 안 된다. 코로나25, 코로나33 등이 얼마든지 우리를 괴롭힐 수 있기 때문이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미국의 유명 야구 선수 요기 베라가 한 말이다. 지난 2년의 경험을 이 말과 연결지어 본다면 아마 이렇게 될 것이다. '끝난 것 같지만 끝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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