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부산│근대사 100년이 압축된 동네, 소막마을
│#6월의 부산│근대사 100년이 압축된 동네, 소막마을
  • 조민서 기자
  • 승인 2022.05.30 13: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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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박소현 기자>

 

부산시 남구 우암동에 위치한 소막마을은 많은 역사적 가치를 지녀 지난 2018년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됐지만, 같은 부산의 감천동 문화마을처럼 많은 관광객이 찾는 마을은 아니다. 그리고 관심이 줄어들면 그 속에 포함된 역사적 가치도 퇴색되기 마련이다. 이에 기자는 소막마을이 얼마나 많은 역사적 가치를 지녔는지 직접 확인하고자 마을로 발걸음을 옮겼다. 


우선 소막마을로 들어가기 전, 인근 지역 매립지와 항만이 먼저 눈에 띄었다. 소막마을이 위치한 우암동의 지명은 오래전부터 마을 소(牛)의 형상을 한 바위로부터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이 우암동 일대의 바다를 매립하며, 현재는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없게 됐다. 


소막마을의 소막이란 소(牛)와 막사(幕舍)를 의미하며,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의 매립과 동시에 한국 소를 수탈하기 위한 막사의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지어진 아픔이 동반된 이름이다. 이곳 소막마을의 마스코트인 소 모형을 따라 마을로 들어서며 본 첫인상은 굉장히 좁고 미로 같았다. 실제로 대다수의 골목길과 집들은 빼곡히 붙어 있었다. 이는 해방 이후 귀국한 해외동포와 한국전쟁 중 부산으로 밀려드는 피란민들의 거주 공간 확보를 위해, 이전 소 막사를 주거시설로 개조해 사용한 것이 그 시작이라고 한다. 그 때문에 소막마을의 곳곳에는 4-5평 크기의 집이 자주 눈에 띄었다.


소막마을엔 유독 공중화장실이 많은 편인데, 이 또한 작은 집 크기 때문이라고 한다. 당시 집마다 화장실을 놓을 공간이 없어 공중화장실이 동네 곳곳에 지어지기 시작했고, 그 흔적으로 지금도 마을에는 총 19군데의 공중화장실이 건재하고 있다. 

 

 

게다가 소막마을은 작은 집 크기와 더불어 유독 복층 구조로 지어진 집도 많았다. 이에 오랫동안 소막마을에서 거주한 소막마을 공동체 공경식 사무국장은 "피란민들이 소막마을에 자리 잡으며, 산업화가 도래한 것이 원인이다. 산업화와 동시에 일자리를 찾아 소막마을에 오거나 자녀를 낳는 등 인구가 많아지며, 집을 위로 늘려 복층으로 개조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당시 보통 몸무게가 적은 아이들이 위층, 부모들이 아래층에서 많이 생활했다"며 당시 기억을 읊었다. 


다시금 마을을 거닐다 보니 시멘트 건물 사이로 목재와 기왓장의 집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공 사무국장은 "목재와 기왓장을 이용한 집 같은 경우는 과거 일제강점기에 일본식으로 건축된 집이고, 70-80년대 산업경제기가 되면서 서서히 시멘트 건물이 들어서기 시작한 것"이라며 "소막마을은 아직도 목재와 기왓장을 이용한 건물이 남아있다"며 마을의 특징을 설명했다. 


그리고 마을 곳곳엔 독특한 모양의 쉼터와 벽화를 볼 수 있었는데, 이는 2016년부터 3년간 80억 원이 투자돼 진행된 마을 도시재생 사업의 결과물이다. 공 사무국장에 따르면 △소암마을 공동체 센터 △마을 곳곳의 쉼터 △마을 분위기 재조성 위한 벽화 △역사적 가치가 높다고 평가받는 소 막사 복원사업이 진행됐다고 한다. 공 사무국장은 "재생 사업 전 소막마을은 평범한 동네처럼 마을 이름이 아닌, 우암동이라고만 불리며 유명하지 않았다. 하지만 해당 사업으로 역사적 가치가 높은 소막마을이라는 이름을 다시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단순 이름을 알리는 것에 그치지 않기 위해 마을 소방관, 공동 밥상 그리고 수제 청 제작과 같은 역량 강화 교육에도 힘쓰는 중이다"고 소막마을의 긍정적인 변화를 기대했다. 


하지만 소막마을 도시재생 사업에 긍정적인 평가만 있는 것은 아니다. 1960년대부터 60년간 소막마을에서 거주한 한 주민은 긍정적으로 말해 역사적 가치가 있는 것이지, 거주하는 주민 입장으로는 단순히 발전 없는 마을일 뿐이라고 안타까움을 내비쳤다. 얼마 전 도시재생사업도 마을 주민이 살기 편한 동네가 아닌 다른 방향성이었기 때문에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며 기자에게 호소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소막마을은 아픈 역사와 더불어 대한민국 근대사 100년의 흐름이 압축돼 있고, 곳곳에서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아직 많은 변화가 필요할지언정, 우암동 소막마을은 사람 냄새가 묻어나는 매력을 지닌 곳이다.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기도 하지만 6·25전쟁이 발발한 달이기도 하다. 피란민들의 애환과 그 이상의 역사적 가치를 느끼고 싶다면 부두 앞 조용한 소막마을을 방문해 보는 건 어떨까.


조민서 기자
alstj21849@dong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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