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그들은 왜 압록강을 건넜는가
│기고│그들은 왜 압록강을 건넜는가
  • 동아대학교 다우미디어센터
  • 승인 2022.05.30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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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석(한국어문학) 교수

고종 9년인 1872년 여름, 조선의 최종범, 김태흥, 임석근 세 사람이 현재 양강도인 '후창'에서 압록강을 건너 간도 땅 마록포로 들어갔다. 그들은 이후로 40일간 1,500여 리나 되는 거리를 떠돌다가 되돌아왔다. 때로는 천둥 같은 호랑이의 울부짖음에 잠을 설치고, 때로는 풍찬노숙의 고달픔에 눈물을 흘려야 했다. 


막판에는 호인(胡人)들이 이들을 첩자로 알아 몽둥이를 들고 쫓아오는 바람에 떼어낸 문짝을 뗏목 삼아 황급히 압록강을 건너와야 했다. 


사실 세 사람은 첩자가 맞았다. 수년 전부터 함경북도와 평안북도를 중심으로 수많은 조선 사람들이 몰래 도강해 간도 땅으로 흘러 들어갔던 까닭에, 간도 조선인들의 실상을 정탐하도록 후창 군수가 이들 세 사람을 파견한 것이었다. 최종범 일행에게 목도된 조선인들은 십중팔구 장정은 호인들의 머슴이 되고 부녀자는 호인들의 차지가 된 채 비참하고 후회스런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국법이 두렵고 빚으로 호인에게 몸이 매여 쉬이 강을 되건너지도 못하는 형편이었다. 최종범 일행을 만난 이덕희라는 이는 간도에 오기까지의 고생과 오고나서의 회한을 이렇게 노래했다.


'아름다운 땅 듣기 좋아 처자를 이끌고 구월에 산에 올랐네. 빈산 낙엽 쓸어 드러난 무릎 한기 덮고, 서리 맞은 나무의 마른 열매 따서 빈 창자 채워가며 달포를 연명했네. 길에서 어머니께 곡했으니 불효가 남부끄럽고, 도원(桃源)의 설 헛들었으니 후회가 막급이네' 


최종범 일행은 조선인들을 만날 때마다 똑같은 말을 물었다. 별계(別界)를 찾았으며, 고인(高人)을 만났는가? 조선인들이 월경을 한 첫째 이유는 간도 땅 어디에 양화평·옥계촌 등의 별계가 있고, 곽장군·갈처사 등의 고인이 있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그러나 최종범 일행이 만난 조선이 어느 누구도 별계와 고인을 보지 못했다고 했으며, 그것은 김유사라 하는 자가 그럴듯하게 꾸며 낸 책 때문에 만들어진 헛소문이라고 했다. 위의 내용은 첩보 일기인 「강북일기(江北日記)」에 기록된 내용이다. 


얼른 믿기지 않지만, 헤아릴 수 없는 조선인들이 제 발로 고국을 등지고 이방에 들어가 후회막급한 삶을 살아갔던 이유가 당시의 위서와 풍문, 즉 조선판 가짜뉴스 때문이었다. 물론 별계와 고인의 헛소문이 전부였던 것은 아니다. 이런 헛소문을 부채질한 당시의 정치·경제적 요인이 있었다. 가령 주민들로부터 가혹하게 세금을 거둬들인 무산 부사 마행일의 학정은 그곳의 백성들이 별계와 고인의 소문에 춤을 추며 서둘러 짐을 꾸리게 한 중요한 원인이었다. 몰래 간도로 넘어간 조선사람의 십중팔구가 무산의 백성들이었다.


가짜뉴스는 자칫 대규모 재앙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 「강북일기」가 가르치는 교훈의 하나다. 요즘 SNS에서 판을 치는 가짜뉴스의 주종은 단연 정치에 관한 것이다. 별계와 고인의 소문에서 그러했듯이 현금의 가짜뉴스에도 그것을 부채질하는 사회적 원인이 있을 터, 그 중요한 원인 중에 명색의 '보수'와 '진보'로 갈린 정치적 양극화가 있다. 내 편을 위한 무조건적 옹호와 네 편을 향한 막무가내식 비난은 뉴스의 진위에 대한 감각을 마비시킬 뿐만 아니라 그 판별의 필요성마저 느끼지 못하게 한다. 


국가의 경제가 잘 되려면 중산층이 두터워져야 하듯이 나라의 정치가 잘 되려면 중도층이 폭넓어져야 한다. 선거에서는 당연히 한쪽을 지지하더라도 평상시에는 중도의 자리로 돌아와 양쪽 모두의 견제 세력이 되는 이들이 지금보다 훨씬 많아져야 한다. 그런 공동체라야 가짜뉴스에 몸을 싣고 강을 건너는 우를 범하는 대신 안정과 번영이 공존하는 땅에 정착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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