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하고 싶은 학생, 취업시키고 싶은 학교
공부하고 싶은 학생, 취업시키고 싶은 학교
  • 진순영 기자
  • 승인 2022.09.05 15: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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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계열이 이른바 인기과에 비해 미래도 불투명하고 프리랜서와 같이 특정한 곳에 소속되지 않아서 사회적 시선이 좋지 않다. 어떨 때는 내가 내는 등록금이 예체능이 아닌 전망 있고 인기 있는 학과에 돈이 쓰인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차별이 존재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러한 현실이 안타깝고 화가 나기도 한다

<일러스트레이션=박하늘 기자>

 

동양대에 재학 중인 A(공연영상학부 2)씨는 이러한 사회 전반적인 불편한 시선과 대우는 학과별 인기도에 따라 비단 예체능 계열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인문·사회 등 소위 비인기과를 대상으로 어김없이 나타난다고 인터뷰를 통해 말했다.

 

인문·사회·예체능은 울상…이공·의학은 웃상


지난해 치러진 문·이과 통합형 수능과 약학대학 (이하 약대)학부 선발로 자연 계열 학생의 문과 교차지원과 함께 대입에서 이과 쏠림 현상이 두드러졌다. 대학교육연구소 임은희 연구원은 이른바 과 쏠림 현상의 가장 큰 원인을 취업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학 교육은 초·중·고의 연장선이며 사회로 나가기 위한 마지막 단계이기에 취업 문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지만, 현재 취업시장 자체가 어렵고 양질의 일자리가 이공계 중심으로 많다 보니 학생들이 학과를 선택할 때 취업을 고려해 이공계 쪽을 많이 선택하는 거 같다"고 전했다. 전통적으로 이공계 및 의약학 계열은 타 계열과 달리 취업과 미래가 보장돼있다는 인식 때문에 경쟁률이 높은 편이다.


종로학원이 발표한 '22년도 수시모집 원서접수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수시모집 결과 14년 만에 신입생 모집을 시작한 약대의 경우, 전국 37개 약대는 960명 모집에 4만 2,374명이 지원해 경쟁률 44.1:1을 보였다. 


특히 2015-2022학년도 전국 10개 수의대 수시모집 정원 내 경쟁률 추이를 보면 2015년(18.0:1), 2016년(20.4:1), 2017년(23.8:1)으로 경쟁률이 점점 증가하다 지난해 전국 10개 수의대 모집인원 307명에 무려 9,657명이 지원해 31.5:1의 경쟁률을 보여 최근 8년간 가장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


이러한 이공계 및 의약학 계열의 높은 경쟁률은 곧 취업으로 이어진다. 교육부와 한국교육개발원이 조사한 '2020년 고등교육기관 졸업자 취업통계조사'에 따르면 개인의 취업상태가 어느 기간만큼 유지되는지를 보여주는 유지취업률이 80%였는데 공학계열(83.9%)과 의약 계열(84.2%)의 경우 평균보다 높은 유지취업률을 보였다. 반면 인문계열(74.1%), 사회계열(78.9%), 예체능 계열(66.9%)은 전체 유지취업률에 미치지 못하는 저조한 수치를 보였다. 


한편 과 쏠림 현상에 대해 부경대 재학 중인 익명의 B(법학과 3)씨는 "안정적인 취업 때문에 생긴 당연한 현상이라"고 말했다. 이어 A(동양대 공연영상학부 2)씨도 "예전부터 인문·사회계열은 선생님과 같은 공직 계열을 제외하고 직업 안정성이 보장되지 않아 사회적 인식으로도 어떤 직업이 있는지 모르겠다"며 "특히 이공계열에서 인문·사회계열로 넘어가는 것은 쉽지만 반대는 어렵다는 인식이 지배적이기에 많은 학생이 처음부터 이공계 및 의약학 계열에서 시작하는 거 같다"며 이러한 과 쏠림 현상은 당연하다고 답했다. 


두 번째 원인은 사회적 배경과 인식 등 여러 요인의 복합적 작용이다. 종로학원 임성호 대표이사는 "인공지능, ICT(정보통신기술), 로봇 등 4차 산업혁명 업종의 성장, 산업구조 재편에 따라 이공계 인력에 대한 사회적 수요가 급증했고 대기업 중심으로 이공계 고급인력에 대한 파격적 처우개선이 이어졌다"고 말했다. 이어 "이공계 학과는 다양한 전문 직종으로 졸업 후 진로가 다양하고, 인문계 학과와 비교해 취업이 용이하다는 생각에 이공계 직종에 대한 사회적 선호도가 높아졌다"며 이공계 및 의약학 계열 중심의 과 쏠림 현상이 산업 구조 개편과 최상위권 대학 진학의 용이함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벌어진 현상이라 분석했다. 


특히 대한상공회의소가 발표한 '2022년 기업의 채용 트렌드' 자료에 따르면 기업의 이공계 인력 채용 확대가 54.9%를 차지한다. 이처럼 수험생들이 특정 과로 몰리는 이유가 기업과 사회가 이공계 출신 중심으로 사원을 뽑고, 제도 지원을 하는 등 사회 구조적인 문제도 원인으로 작용한다는 것에 대해 종로학원 임 대표는 "최근 신산업 성장 분야로 꼽히는 대부분이 이공계 전문 인력을 다수 필요로 하는 분야라는 점을 고려해야 하며 기업의 경영적 측면에서도 수리적 능력이 뛰어난 이공계 학생에 대한 수요가 꾸준하게 제기된다"며 이공계 인력에 대한 수요 증가는 사회구조 개편에 따른 자연스러운 변화라고 말했다. 


마지막 원인은 정부의 미흡한 재정지원이다. 지난해 12월 '제2차 인문학 진흥 기본계획'에서 교육부는 "과학기술 연구개발(R&D)과 인문·사회 학술지원 간 예산 격차는 점차 확대되고 있어 학문 분야 간 불균형이 우려된다"며 이공계에 비해 △인문△사회△예술계열에 대한 재정지원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2017-2021년까지의 지난 5년간 정부 R&D 증가율 대비 인문 사회 R&D 예산 추이를 보면 2017년 정부 R&D 예산이 19조 4,615억 원에서 2021년 27조 4,005억 원으로 연평균 증가율이 8.9%였지만 인문 사회 R&D 예산은 2017년 3,064억(1.6%) 원에서 2021년 3,226억(1.2%) 원으로 5년 전과 비교할 때 0.4%p 감소했고 인문 사회 R&D 예산 연평균 증가율은 1.3%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학과 통폐합의 냉혹한 현실


이러한 과 쏠림 현상이 일어남과 동시에 수험생들에게 선택받지 못한 비인기학과는 학과 통폐합과 같은 구조조정을 당하기 십상이다. 특히 인문·사회 및 예체능 계열의 경우 학과 구조조정의 좋은 먹잇감이 되기도 한다. 


또한 과 쏠림 현상은 수도권보다 지역대학에서 더 심각한 양상을 보인다. 부산의 경우 이미 많은 대학에서 학령인구 감소와 대학 정원 미달로 인해 학과 통폐합과 같은 구조조정이 활발히 이뤄지는 추세다. 부산대 언론사인 채널 PNU에 따르면 부산대는 지난 3월 31일 학과 구조 개편의 이유로 학령인구 감소를 들어 사범대 독어·불어교육과를 각각 인문대학 독어독문학·불어불문학과로 통폐합할 것이라 밝혔다. 


신라대 역시 신입생 정원을 15% 줄이는 방안을 의결했으며 부산대와 마찬가지로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구조조정으로 무용·음악학과와 같이 52개 학부·과 중 신입생 충원율이 70% 이하인 과 10곳을 통폐합하기로 했다. 인제대는 지난해부터 신입생 충원율을 이유로 학과 구조 조정 논의를 시작해 내년부터 입학정원을 270여명 줄이고 여러 학과를 통폐합하는 방향으로 결론을 내렸다. 게다가 경남대에서는 올해 대학의 독단적 학과 통폐합에 학생들이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비인기과에 대한 학교의 학과구조조정에 대해 부산대 재학 중인 C(고고학 2)씨는 "학과 통폐합은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학생들의 역량 강화를 위해서는 불가피한 선택이라 본다"고 말했다. 동양대 재학 중인 A씨는 "학생들이 등록금을 내고 그 학과에 들어가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는데도 학생들과의 소통 없이 학과 통폐합을 한다는 것은 학교가 학생들을 돈으로 본다는 생각이 든다"며 허심탄회하게 말했다.


우리 대학의 경우 그동안 많은 학과가 폐과됐고 일부 학과는 통합이 됐다. 2012년에는 무용학과가 폐과됐고 2015년 인문대 소속 국어국문학과와 문예창작학과가 한국어문학과로, 생명대 소속 유전공학과와 분자생명공학과가 유전공학과(2016년 분자유전공학과로 명칭 변경)로 학과 통합됐다. 2017년에는 독어독문학과와 프랑스문화학과가 폐과됐고 2020년 유기재료고분자공학과는 신입생 모집을 중단했으며, 사회대 소속 정치외교학과와 사회학과가 교육부의 20년도 대학 학생정원 조정 계획에 따라 정치·사회학부로 통합되기도 했다.


부산진로진학지원센터 이성준 대입 지원관은 "특히 사립대는 등록금이나 정부 지원을 받지 못하면 학교를 유지하기 어려워서 과 쏠림이 생긴다"며 "대학이 학과 통폐합을 고민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학문의 영역이 매우 다양하고 다채로운 형태로 나타나는 게 건강한 사회이나 소위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돈벌이 되는 몇 개의 직종으로 집중되는 것은 사회적으로 건강하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지표"라고 지적했다.


이어 대학교육연구소 임은희 연구원도 "사립대학은 정부가 운영비를 지원하지 않기에 학생 등록금으로 대학 재정의 많은 부분을 충당한다며, 따라서 학생 충원율을 고려할 수 없는 입장"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대학이 취업 준비기관만은 아니다. 우리 사회의 균형 잡힌 학문의 발전이 필요하다면 응용학문뿐만 아니라 기초학문도 필요하다"며 "양자 간의 균형이 중요한데 이것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기초학문이 비인기학과로 내몰려 폐과가 되면 학문 간의 균형과 탄탄한 응용학문의 발전방안에도 영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결코 넘어가서는 안 될 문제


그렇다면 과 쏠림 현상이 장기적으로 지속될 경우 어떤 사회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가. 이에 대해 임 연구원은 "타 분야에서의 인재 부족 문제와 인원이 특정 학과로 너무 몰리게 되면 이 학과에서도 과잉 문제가 벌어져 역으로 인기과를 졸업했는데 정착 취업을 못하는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진격의 대학교』(오성호, 문학동네, 2015)에서는 "취업률에 따라 학문의 생사가 결정됐고 취업에 도움이 된다면 어떤 과목이든 개설됐다. 즉, 현재 대학은 △돈을 약속하는 학과 △돈에 대한 지식을 다루는 학과 △돈의 원천이 되는 학과만이 미래를 보장받았다"며 대학의 우선순위가 학생이 아닌 돈으로 바뀌며 벌어지는 대학의 기업화를 꼬집었다.


종로학원 임성호 대표이사는 "진로와 적성을 고려하지 않고 취업을 위한 대학 및 학과 진학으로 입학 후 학과 부적응과 중도 탈락 학생 증가와 같은 사회적 비용 낭비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학은 인문계 학과의 충원율 저조로 구조적인 어려움을 겪고 미달 학과라는 낙인으로 학생 모집 충원율이 떨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며 이 같은 악순환이 부실대학의 증가로 국내 4년제 대학 전체의 경쟁률과 교육의 질적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처럼 과 쏠림 현상에 따른 사회적 문제와 손실을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해결책 중 전문가들이 주안점을 두는 부분은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과 재정지원이다. 대학교육연구소 임은희 연구원은 "인재 양성을 사회와 시장에 맡길 수는 없다. 국가와 정부 차원에서 다양한 인재 양성을 위한 지원정책이 필요하다"라며 인문 사회 분야 복지사업과 인문 사회 분야 시간 강사 지원사업 등 특정 분야를 육성하기 위한 인재 양성정책과 재정지원사업을 뽑았다. 


그에 그치지 않고 종로학원 임성호 대표이사는 "정부 차원에서는 교육과정 개발 및 확대, 취업 연계 프로그램의 확대 등에 초점을 둔 종합적인 지원책을 마련하고, 대학의 혁신역량과 발전 의지를 지속해서 북돋아 줄 수 있는 법령, 제도개선 등이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산업재편에 발맞춰 대학 내 융합 교육과정 등 탄력적이고 유연한 교육과정의 개발 및 확대와 대학과 기업의 산학협력이 더 활발하게 이뤄질 수 있게 △대학△지역△기업△정부 차원의 상호협력과 정책적 지원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성준 대입 지원관은 "어떤 대학의 무슨 학과를 전공했다 해도 그 자체로 인정받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돼야 한다"며 이어 "대학이 산업수요에 맞춘 지원보다 오히려 비인기학과와 같은 취약 분야 중심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게다가 그는 "학문 간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가 되면 획일화되고 건강하지 못한 사회가 된다"고 경고했다.


 

진순영 기자
 2200325@dong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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