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허준이 교수가 가르쳐 준 것들
│사설│허준이 교수가 가르쳐 준 것들
  • 동아대학교 다우미디어센터
  • 승인 2022.09.05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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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들이 허준이 프린스턴대 교수의 필즈상 수상을 점칠 때만 하더라도 실제 그런 일이 일어날 거라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노벨상을 비롯하여 분야별로 권위 있는 시상식이 다가올 때면 으레 있어 왔던 일이였다.

그러나 허준이 교수는 마리나 비아조우스카, 위고 뒤미닐코팽, 제임스 메이나드 교수와 함께 올해 필즈상 공동수상자로 선정이 되었다. 비록 허준이 교수의 현 국적은 미국이지만 국내에서 학부와 대학원 교육을 마쳤고, 무엇보다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는 점에서 확실한 한국계이기도 해서 동갑내기 학자의 수상 소식은 그지없이 반갑고 또 자랑스러웠다.


이후 여러 매체에서 앞을 다퉈 허준이 교수를 인터뷰했다. 인상적인 대목이 많았다. 우선 수학자인 그가 소싯적에는 시인 지망생이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수학의 언어는 정확하고 보편적인데 반해 시의 언어는 모호하고 개별적이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경우 고등학교부터 교과과정을 문과와 이과로 분리하고 있어 두 분야가 전혀 별개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공계 출신 시인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잘 알려진 예로는 건축가인 이상이 있고 그 외에도 의사 마종기, 또 다른 건축가 함성호, 수학을 전공한 함기석, 물리학을 전공한 채길우 등이 있다. 수학과 시는 저마다의 이유로 아름다워서 여전히 호기심이 많은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필즈상 수상 이후 인천국제공항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허준이 교수는 본인이 학문적으로 성장하는 데 필요한 조언들을 해줄 수 있는 사람들을 "딱 필요한 때"만난 것이 감사하다는 답변을 한 바 있다. 즉, 무척 운이 좋았다는 말이다.

 

경제학자 로버트 프랭크는 저서 『실력과 노력으로 성공했다는 당신에게』를 통해 개인의 성공 여부는 흔히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운에 의해 결정된다고 주장했다. 허준이 교수가 재능이 있고 이를 바탕으로 성실하게 연구에 매진했을 것이라는데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재능이 넘치고 성실한 사람들 모두가 필즈상 수상에 견줄 만한 성공을 거두는 것은 아니다. 허준이 교수의 겸손함은 허풍에 가까운 자기자랑이 대세인 시대를 살아가는 내게 큰 울림을 주었다.


개인적으로는 동종업계 종사자로서 허준이 교수가 비교적 젊은 나이에 큰 성취를 이뤄낼 수 있었던 비결이 궁금했다. 그런 사람이 나뿐만은 아니었는지 허준이 교수의 일과를 물어보는 질문도 많았다. 허준이 교수는 보통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5시에 퇴근하는데, 출근 이후 점심식사 전까지는 온전히 연구에만 매진하려고 노력한다고 한다. 장시간 학습에 익숙한 우리나라 학생들에게는 하루 서너 시간 연구하는 것이 대단치 않아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새로운 지식을 생산하는 일은 기존의 지식을 소비하는 일보다 훨씬 더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매일 세 시간씩 깊이 몰입해서 연구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이는 아마 허준이 교수 본인이 여러 시행착오 끝에 찾아낸 지속 가능한 연구 방식일 것이다. 지속이 가능하려면 즐거워야 한다는 점 역시 허준이 교수가 누차 강조하는 부분이다.


허준이 교수는 어린 시절의 자신을 다시 만나게 된다면 "인생은 충분히 많은 우연이 충분히 자주 일어날 만큼 충분히 길다"고 말해주고 싶다했다. 짐작건대 기회는 충분하니까 너무 조급해하거나 실패 앞에 주눅들지 말고'건강한 마음으로 꾸준히 즐겁게'공부하라는 뜻이 아닐까. 처음 들었을 때엔 말이 정리가 덜 된 탓에 한 문장 안에'충분히'라는 부사가 세 번이나 반복된 거라 생각했다. 헌데 글을 쓰기 위해 다시 들어보니 의도적으로 그렇게 썼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젊은 날의 자신을, 나아가 또래의 모든 젊은이들을 진심으로 응원하는 마음에서. '충분하다' 소리내 보니 왠지 마음이 조금 따뜻해진 것 같기도 하다.


본지 논설위원
경제학 박진성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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