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글쓰기, 내 것이 되는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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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아대학교 다우미디어센터
  • 승인 2022.09.05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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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학기가 시작되기 전부터 우리는 나와 주변을 정비하게 된다. 생활면에서도 학업면에서도 새롭게 마음을 다잡고 계획을 세우곤 한다. 우리가 학교에 있어서 좋은 점이다. 따로 대학원을 진학하지 않는다면, 대학이라는 곳은 우리 생에 공부를 하는 마지막 공식기관이다. 그러니 학교의 중심은 '공부'일 것이다. 하지만 학교는 기능적 교육 활동만 일어나는 곳이 아니다. 특히 대학은 다양한 관계와 경험이 펼쳐지는 곳이므로 우리는 '공부'라는 것을 좀 더 폭넓게 이해할 수 있어야겠다.


신영복 선생은 공부(工夫)를 다음과 같이 풀이한다. "공부의 옛글자는 사람이 도구를 가지고 있는 모양입니다. 농사지으며 살아가는 일이 공부입니다. 공부란 삶을 통하여 터득하는 세계와 인간에 대한 인식입니다. 그리고 세계와 인간의 변화입니다. 공부는 살아있는 모든 생명의 존재형식입니다. 그리고 생명의 존재형식은 부단한 변화입니다" 생각해보면 삶에서 공부 아닌 것이 도대체 없다. 만나고 헤어지는 사람과 생명과 사물, 상황과 현상, 시대와 장소 등, 일일이 나열하기 어려운 수많은 것들이 모두 우리에게 공부가 된다.

 

그러니 우선 내가 포함된 세계 속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 공부의 최선일 것이다. 부지런히 농사짓듯 생활을 통해 진정으로 세상을 공부하고 깨치면 존재와 삶은 변화한다. 점차 나은 방향으로 진화한다. 내 삶이 나아진다면 좋은 일이고, 내 주변의 삶, 그리고 내가 몸담은 시대까지 나아진다면 더없이 좋은 일이다. 공부의 궁극은 그리로 향해야 할 것이다.  


그러려면 많은 것들을 깊이 있게 보고 듣는 것, 그리고 그것을 '다시' 보고 들으며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공부를 해야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글쓰기'이다. 글쓰기라는 말이 부담스럽다면 메모나 다이어리 쓰기, 일기쓰기부터 시작하면 좋다. 그것을 통해 자신과 주변을 들여다보는 것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프랑스 작가 아니 에르노는 '자기 객관화를 통한, 자신에 대한 세심한 관찰 이상의 예리하고도 냉정한 임상적 해부'의 방식으로 글을 쓰기로 유명하다. 작가는 글쓰기가 칼처럼 느껴진다고 말한다. 이때 칼은 공격, 또는 방어용 무기라는 의미로 읽히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자신을 포함한 대상을 더 깊숙이, 더 면밀히 들여다보는 수술용 메스로 이해할 수 있다.

 

'칼 같은 글쓰기'는 살아나가기 위한 싸움의 방식이다. 외과 수술을 행하는 의사처럼 국소 부위 같은 아주 사소한 무엇이라 하더라도 파헤쳐 다시, 새롭게 들여다보는 글쓰기는 그것을 잊히지 않고 세상에 존재하게 한다. 그때 글쓴이는 어떤 대상들만 구하는 것이 아니다. 글 쓰는 행위는 동시에 쓰는 이의 삶을 구원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글쓰기는 나와 주변을 새롭게 보고, 더 나은 방향으로 가게 하는 탁월한 방법이다. 사적인 글을 넘어 좀 더 좋은 글을 쓰려 할 때도 단순히 기교만 앞세워서는 안 된다. 이오덕 선생은 "말은 생각에서 나왔고 생각은 삶에서 나왔다"고 했다. 그리고 여기에 덧붙여 살아있는 말을 쓸 때 좋은 글이 된다고 했다. 


그러니 좋은 글을 쓰려면 삶을 잘 살아내는 것이 먼저다. 그런데 나의 삶은 '나'로만 구성되지 않는다. 나라는 존재는 '타자' 없이 성립할 수가 없다. 주어진 삶을 잘 살아내기 위한 글쓰기는, 그러므로 '함께' 살아내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함께 살기 위해서는 타자의 삶이 나의 삶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그 삶에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사는 일은 결국 함께 사는 일이니 내가 쓰는 것 또한 함께 사는 것을 쓰는 것이다. 우리는 살고, 그리하여 함께 살며 주어진 삶을 '다시 사는' 일을 해야겠다. 그것이 또한 실제의 삶들을 풍요롭고 웅숭깊게 만들 것이다. 좋은 공부는 그렇게 나아간다.

 

이소연
한국어문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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