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마의 심장 민족동아, 왜 기억하지 않는가
부마의 심장 민족동아, 왜 기억하지 않는가
  • 박주현 선임기자
  • 승인 2022.10.04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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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16일은 부마민주항쟁 기념일이다. 지금으로부터 43년 전 1979년 10월 16일부터 20일까지 부산·마산 시민들은 박정희 정권의 폭정에 못 이겨 거리로 뛰쳐나왔다. 16일 부산대에서 시작된 교내시위는 항쟁의 불쏘시개가 됐다. 다음날 17일 부산대의 횃불을 이어받은 우리 대학교의 교내시위는 본격적인 민중항쟁의 도화선이 됐다.

결국 부마민주항쟁은 박정희 정권을 붕괴시키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부마민주항쟁에서 우리 대학을 빼고 논할 수는 없다. 우리 대학과 더불어 부마민주항쟁의 큰 역할을 한 부산대와 경남대는 이를 기리기 위해 기념조형물을 설치했지만, 정작 우리 대학만 전무한 상태다.

 

▲우리 대학 구덕캠퍼스 10.17 부마민주항쟁 박원지에는 석당 정재환 동상만 존재한다.
<사진=박주현 기자>

 

부마의 횃불을 짊어진 민족동아


부마민주항쟁진상규명위원장을 맡은 바 있는 우리 대학 홍순권(역사문화학부 사학) 명예교수는 "동아대가 부마민주항쟁에서 큰 역할을 했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부산대가 (부마민주항쟁 주도를) 독단적으로 한 것이 아니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김백수(법학 '82 졸) 동문은 "가정법이니까 알 수는 없지만, 부산대만 시위를 주도했으면 부산 전체에 항쟁이 확산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라며 "부산대가 당시 16일 시위를 주도하고, 17일 동아대가 같이 참여함으로써 더더욱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는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1979년 10월 17일 오후 12시경 우리 대학 구덕캠퍼스 당시 도서관(현 석당기념관) 앞에 유신정권을 향한 불만을 가진 학생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오후 1시 30분경에는 학생 1,000여 명이 대열에 합류했고, 이들은 교문을 통해 교외 진출을 시도했다. 그러나 경찰과 대치 끝에 가두시위를 통한 시내 진출이 어렵다고 판단되자 각기 학교 탈출을 통해 오후 6시 남포동에서 집결하기로 결정했다. 각자 흩어져 구덕산으로, 경남고 담을 넘어 학교를 빠져나갔다. 그들은 남포동 부영극장 앞(현 BIFF 광장)에 모여 대오를 맞췄다. 


부마민주항쟁 진상조사보고서에서는 17일 시위 분위기에 대해 "동아대 학생들로 인해 도심의 학생 수는 더욱 불어났고, 국제시장과 광복동으로 학생 청년들이 몰려들기 시작하면서 시위 분위기는 더욱 달아올랐다"고 명시했다. 본지는 695호(1989년 10월 16일 자)에서 "17일 항쟁 우리 대학생 주도적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우리 대학 학생들이 합류해 분위기가 고조된 도심은 '유신철폐', '독재타도'가 울려 퍼졌다. 그 결과 18일 0시를 기해 부산지역 비상계엄령이 선포돼 결국 우리 대학 시위 주동자 이동관(법학 '81 졸) 동문과 김백수 동문은 군법회의에 회부됐고, 형벌에 처했다. 

▲부산대 부마민주항쟁 박원지 표지석
▲부산대 부마민주항쟁 40주년 기념조형물
▲부산대 10.16 부마민주항쟁탑

 

 


 

기억하지 않는 동아

 


이렇게 민주화 물결에 공을 세운 우리 대학임에도 불구하고 부마민주항쟁 기념조형물은 학내에 전무한 상황이다. 기자는 1979년 10월 17일 동아대 교내 시위가 발생한 우리 대학 구덕캠퍼스 석당기념관 앞을 찾아갔다. 그곳에는 석당 정재환 동상만이 덩그러니 있을 뿐 부마민주항쟁 기념비는커녕 표식조차 없었다.


우리 대학 홍준영(역사문화학부 사학 3) 학생은 "부마민주항쟁 관련 리포트 작성했을 때, 우리 대학 학생들이 활발하게 항쟁에 참여했는데, 부산대나 고신대에 비해 사료가 많지 않아 우리 학교에서 일어난 역사임에도 다른 대학 사료를 찾아봐야 하는 게 씁쓸했다. 부산대 경우 부마민주항쟁 기념 조형물도 많은 상황인데, 우리 대학은 하나도 없어 아쉽다"고 말했다. 


부산대는 부산캠퍼스 새벽빛도서관 앞 민주언덕에는 10.16부마민주항쟁탑이 있으며, 자연과학관 인근 부마민주항쟁 40주년 기념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또한, 부산대는 과거 대학극장이라는 공연장 명칭을 10.16기념관으로 명명한 바 있다. 10.16기념관 부근에는 '민주주의 신새벽 여기서 시작하다'라는 사상가 故 신영복 선생의 글씨가 적힌 부마민주항쟁 발원지 표지석이 존재한다. 1979년 10월 18일 마산항쟁을 이끌었던 경남대 역시 부마민주항쟁 기념을 위해 학내에 10.18시원석이 설치돼 있다.


부산대 학생 김민지(철학 3) 씨는 "부산대는 부마민주항쟁 기념상징물도 많다. 부마민주항쟁 관련해 학내 구성원 대상으로 공모전을 열기도 하고 비교과·학술 강좌도 많이 진행하는 등 구성원들의 관심을 계속해서 환기하고 있다"며 "이러한 환경과 프로그램이 조성돼 있다 보니 새내기 때부터 학교의 역사성과 그 가치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됐다. 학과 캠퍼스투어에서 선배들이 후배에게 부마민주항쟁 기념탑을 방문해 학교 역사를 소개해주는 분위기도 자연스럽다"고 설명했다.


부산대는 지난해 2학기에 이어 올해 2학기에도 비교과 프로그램 <대학과 민주> '우리 선배들의 자랑스러운 역사-부마민주항쟁' 특강을 진행한다. 이는 지난해 비교과 학생 공모전을 통해 학생이 제안한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 내용으로 △한국의 민주화운동과 10.16 부마항쟁의 의미 △부마항쟁의 확산과 박정희 정권의 붕괴 △부마항쟁 이후 민주화운동의 확산 등이 있다.
"설치하려다 불발됐다"


우리 대학 건설과 관계자는 2020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학교에 기념시설을 세우려면 누군가 주체가 돼 사업을 건의하고 이끌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 부서는 지금껏 부마항쟁 사업에 대해 들은 바가 없다"고 말한 바 있다(본지 제1163호 2면 참고). 그러나 취재 결과 부마민주항쟁 40주년인 2019년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 측에서 학내에 상징조형물 건립을 추진한 사실이 밝혀졌다. 


대통령령인 '부마민주항쟁 관련자의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14조에 따라 재단의 사업을 부마민주항쟁 기념시설 조성 등 관련자 추모사업 등으로 규정하고 있다.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은 이에 따라 부마민주항쟁 40주년인 2019년에 부산대·동아대 구덕캠퍼스·광복동 시티스폿(당시 미화당백화점 앞)에 기념조형물을 건립할 계획을 세운 것이다.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의 김동규 당시 교학부총장 면담 요청 공문에서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 측은 우리 대학 구덕캠퍼스 정문 경비실 부근 혹은 석당 정재환 동상 부근에 기념조형물 설치를 희망했다. 부마민주항쟁 기념조형물 사업에 관한 재단 측 예산도 마련돼 있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부산대와 광복동에는 정상적으로 기념조형물이 세워졌으나 우리 대학은 불발됐다.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 정영배 사무처장은 "조형물 설치 허가 협조를 위해 한석정 당시 총장과 면담을 여러 차례 요청했으나 무산됐다"며 "그 대신 2019년 6월 재단 측이 김동규 당시 교학부총장과 면담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김동규 당시 교학부총장이 '학교법인 이사회와 논의가 필요하다', '다가올 이사회에 기념조형물 설치 안건을 상정해 합의를 낼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답변했다"며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사회에서 부결됐다"고 주장했다.

 

기자는 진위 판단을 위해 학교법인인 동아학숙 측에 2019년 당시 회의록을 요청했지만, 사립학교법 시행령에 따라 이사회 회의록 공개가 1년이라는 사실을 들며 제공을 거부했다. 정영배 사무처장은 "동아대에 부마민주항쟁 기념조형물이 없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건립을 추진한다면 재단에서 예산을 편성해서 동판이라도 설치하고 싶다"며 "부지도 3.3㎡면 충분하다"고 전했다.


우리 대학 민주동문회 최지웅 사무처장은 "부마민주항쟁이 박정희 군부 독재를 끝내는 소중한 시민들의 민주항쟁이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사건"이라며 "역사적 사건을 경험하지 못했던 미래 세대들이 이러한 역사적 가치를 느낄 수 있는 학내에 기념조형물이 만드는 것은 상당히 긍정적"이라면서 "학교 측이 이를 부정적으로 생각해 아쉽다"고 전했다.


홍준영 학생은 "과거 역사적 가치를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않으며 소극적인 학교 측의 행동은 역사를 진보시키는 게 아니라 퇴보시키는 느낌"이라고 지적했다. 김종민(정치외교학 3) 학생은 "우리 대학이 이들을 기억할 자리 한편도 내어주지 못하고 있는 사실은 상당히 유감스럽다"며 "올바른 미래를 그리기 위해서는 현재를 존재하게 한 자들을 기억하려는 자세가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우리 대학 승학캠퍼스 교수회관 부근에 있는 '6월 항쟁도' 역시 복원이 되지 않고 있다. 6월 항쟁도는 담쟁이덩굴에 가려져 있다. 우리 대학 측의 자체  복원 의지도 없는 상황이다(본지 제1168호 1면 참고).

 

"주인의식 높여야"

 


홍순권 명예교수는 학생들이 주체가 돼 부마민주항쟁 기념조형물 건립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학생들이 스스로 우리 대학의 민주화 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조형물이 꼭 필요하다고 학교 측에 요구하든, 학생들이 스스로 모금해 자체적으로 조형물을 만들든지 해야 더 큰 의미가 있다"며 "학생들이 참여도가 높고 지지가 많을수록 학교를 설득하기가 쉬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국대학노동조합 동아대지부 조홍률 지부장은 "무엇보다 학생들이 활동적이고 역사의식을 가져야 생각한다"며 "그게 우선시되고 그 뒤에 학교 측을 설득하는 일은 내부적인 힘으로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광복동 부마민주항쟁 40주년 기념조형물

 

 박주현 선임기자
 1906866@dong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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