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따뜻한 빵에 담긴 잔인함
│데스크 칼럼│ 따뜻한 빵에 담긴 잔인함
  • 박혜정 기자
  • 승인 2022.11.07 14: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혜정 편집국장
박혜정 편집국장

지난달 15일, SPC그룹 계열사 제빵공장에서 20대 노동자가 공장 기계에 끼여 사망했다. 비극적인 사고에도 불구하고 해당 노동자가 죽은 그 자리엔 흰 천만 둘러져 있을 뿐 공장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평소와 똑같이 가동됐다.

 

바로 내 옆에서 일하던 동료가 죽었지만, 공장 관리자의 지시에 따라 아무렇지 않게 일해야 했던 것이다. 숨진 노동자가 일한 공장에는 '사람'은 없었다. 이들은 노동자라는 이름으로 고용돼 주야 2교대, 하루 12시간씩 일했다. 쉬는 시간 없이 이어진 고강도 노동의 대가는 죽음이었다. 


기업은 노동자를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오직 하루 생산량을 맞추기 위해 일하는 노동자의 모습은 더 이상 한 사람으로서의 인격체가 아닌, 언제든 교체 가능한 기계 부품으로서 취급됐다. 철저한 자본주의적 생산수단인 것이다.

 

이는 영화 <모던타임즈>(감독 찰리 채플린, 1989)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주인공 찰리는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로 하루 종일 쉬지 않고 나사못을 조이는 일을 한다. 잠깐 한눈이라도 팔면 그 즉시 공장 관리자의 감시가 이어진다. 이런 공장의 모습은 당대 기계화 시대에 인간 역시 기계화돼야 했던 것을 내포함과 동시에 자본주의 시대 인간성 무시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영화에서 주인공 찰리는 죽지 않았지만, 제빵공장에서 일하던 20대 노동자는 죽었다. 


많은 국민들은 이러한 '피 묻은 빵'에 분노하며 SPC 불매운동이 들불처럼 일어났다. SPC그룹 회장은 사고가 발생한 지 6일 만에 기자회견장에서 대국민 사과를 했다. 그러나 그의 말엔 책임 소재에 대한 건 빠져 있었다. 단순히 독과점과 이윤추구에 혈안이 된 이러한 기업의 행태에 반문해야 한다.


'참담하고 안타까웠다'는 SPC그룹 회장의 사과는 과연 얼마나 진정성이 있는가. 단순 책임회피에 지나지 않았는지 따져봐야 한다. 정의당 이은주 의원이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5년간 SPC그룹 계열사의 산업재해현황' 자료에 따르면 산재 재해자는 △2018년 76명 △2019년 114명 △2020년 125명 △2021년 147명으로 파악됐다. SPC그룹 내 산업재해는 꾸준히 증가했지만, 기업은 제3자의 입장에서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았다. 그저 팔짱 낀 채 지켜봤다.

 

이번 제빵공장 노동자의 사망 사고 현장에도 공장 기계에는 어떠한 안전장치도 없었다. 처음 발생한 사고가 아님에도 당장의 이윤에 눈이 멀어 안전장치와 사전교육 하나 제대로 하지 않는 일터에서 노동자는 또다시 죽어갔다. 이에 기업은 또다시 무책임한 사과문만 늘어놓은 채 한발 물러서 있다. 그리고 정부 역시 이를 모를 리 없다. 우리는 의구심을 가져야 한다. 


지난 1월, 대한민국은 계속해서 산업현장에서 일어나는 중대재해를 막고 기업의 안전에 대한 투자와 보건조치를 강화, 노동자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하는 목적으로 중대재해처벌법을 제정했다. 그러나 현재 해당 법안은 시행된 지 약 10개월이 넘었지만, 아직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처벌된 사업주나 경영자는 없다. 그럼 그동안 기업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인가.

 

딱 잘라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지난 10월 5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진성준 의원이 고용노동부에서 받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중대재해 발생 현황' 자료에 따르면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난 1월 27일부터 지난달 30일까지 약 8개월 동안 발생한 중대산업재해는 443건이었다. 그중 사망자는 446명, 부상자는 110명이었다.

 

법안의 목적은 노동자의 생명을 보호하고자 했지만, 실제 법안이 시행된 이후 기업의 관심은 노동자의 안전 강화가 아닌 어떻게 하면 기업이, 오너가 처벌을 피할 수 있는지가 중점이 됐다. 그렇기에 중대채해처벌법은 어쩌면 이미 법으로서의 효력을 잃은 사문화(死文化)됐을지도 모른다.


더 이상 노동 현장에서 노동자가 다치거나 죽지 않도록 정부와 기업은 책임져야 한다. 노동자는 어떤 기계의 부속품이 아닌, 사람이다. 끝으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친 한국의 노동운동을 상징하는 전태일 열사의 이름을 딴 '전태일 3법'의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

 

1. 모든 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을 적용하기 위해 근로기준법 제11조 개정
2. 모든 노동자의 노조할 권리를 위해 노동조합법 제2조 개정
3. 모든 노동자의 죽지 않고 일할 권리를 위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박혜정 편집국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부산광역시 사하구 낙동대로550번길 37 (하단동) 동아대학교 교수회관 지하 1층
  • 대표전화 : 051)200-6230~1
  • 팩스 : 051)200-6235
  • 청소년보호책임자 : 권영성
  • 명칭 : 동아대학교 다우미디어센터
  • 제호 : 동아대학교 다우미디어센터
  • 등록번호 : 대전 가 00000
  • 등록일 : 2017-04-05
  • 발행일 : 2017-05-01
  • 발행인 : 이해우
  • 편집인 : 권영성
  • 동아대학교 다우미디어센터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동아대학교 다우미디어센터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