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시각│청춘 잔혹사, 청년은 가난으로 아프다
│기자시각│청춘 잔혹사, 청년은 가난으로 아프다
  • 박선주 기자
  • 승인 2022.11.07 15: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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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점심시간, 기자는 점심을 먹으러 가다가 청년들의 왁자지껄한 소리를 들었다. 때마침 점심 얘기에 한 청년이 다소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속이 안 좋은 걸까, 아니면 돈이 없는 걸까.

 

청년의 복잡한 표정을 단정 지을 수 없지만, 생각은 자꾸만 후자로 향했다. 시야에서 멀어지는 청년을 보자, 돌연 휴학하고 생활비를 벌러 공사장으로 떠난 동기의 뒷모습이 떠올랐다. 저렴했던 학식도 비싸지는 와중에, 자꾸만 그 청년의 쓴웃음이 머릿속에 가시지 않았다.


생활난에 시달리는 청년들은 도처에 깔려있다. 당장 옆에만 봐도 학교가 끝나는 족족 알바로 전전긍긍하는 동기들이 여럿이다. 점차 물가는 오르고, 일자리는 줄어드는 상황에서 집 한 채 구하기도 힘들어졌다. 오죽하면 MZ세대를 두고 '부모 세대보다 더 가난한 첫 세대'라 하겠는가. 그만큼 부모의 재력 없이는 홀로서기 어렵다는 말이다. 


청년의 가난은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눈에 보이지 않는다. 가난한 청년은 사회에서 투명 인간처럼 고립돼있을뿐더러, 우리는 너무도 가난한 사람이 없는 것처럼 생각한다. 체감되지 않는 가난에 익숙해진 탓이다. 간혹 가난을 마주쳐도 시선을 돌린다. '학식이 비싸졌다'는 말에 '누가 요즘 학식 먹고 사냐?'라고 반문하듯이, 우리는 가난한 사람을 그저 통계로만 추측할 뿐, 한 발짝 물러나 있다.


그렇다면 원초적인 질문을 던져볼 때다. 이 땅의 청년들은 왜 가난한가? 아프니까 청춘이라고들 하지만, 대체 청년은 어디까지 아프고 가난해야 하는가. 청년들이 직접적으로 '수저론'을 꺼내는 것에 그 이유가 있다.

 

가난한 청년 뒤에는 가난한 부모가 있다. 개천에서 용 나는 시대는 이제 지났다. 청년 빈곤은 결코 끊어낼 수 없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사회를 잠식했다. 가난의 역설이 불러온 쌍봉형 빈곤에서 흙수저를 논하며 절망을 부르짖는다. 본인과 가족이 풀 수 없는 가난을 해결해달라는 일종의 메아리다. 


사회는 이러한 청년의 외침을 귀 기울여 들어야 한다. 그들도 하나의 인격적 존재로서 삶을 누릴 권리가 있다. 그러나 사회는 그 사실을 망각한 채 살아왔다. 가난하다고 삶까지 초라할 이유는 없을뿐더러, 바로 지금이야말로 청년 가난에 대해 생각할 때다. 가난은 죄가 아니기에 그 잘못은 청년이 아니라 사회에 있다.

 

고된 노동으로 지친 청년들이 바스러지는 어깨로 삶의 무게를 짊어져도, 사회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고 할지라도 그들은 결코 잘못한 게 없다. 그러니 가난한 청년들의 모든 모서리마다 빛이 나길 바란다. 오늘을 버틴, 그리고 내일을 살아갈 그들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박선주 기자
2100366@dong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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