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추억을 사는 키덜트입니다
우리는 추억을 사는 키덜트입니다
  • 신재원 기자
  • 승인 2022.11.07 15: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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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도 아니고 웬 장난감?" 

 

어린이의 전유물이었던 귀여운 스티커와 장난감은 어른에게 어린 시절로 돌아가 현실의 삭막함을 녹여주는 안식처가 됐다.

어른들은 장난감을 사면서 위로와 추억을 함께 사는 것이다.

장난감이 갖고 싶은 아이의 마음과 장난감을 살 수 있는 어른의 경제력이 합쳐진 이른바 키덜트(Kidult)는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점점 많아지는 키덜트들

 

어린 시절, 포켓몬스터를 보며 자란 MZ세대는 어른이 돼 포켓몬스터 빵과 스티커로 추억을 사고 있다. 빵과 스티커뿐만 아니라 각종 완구, 옷 등을 수집하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이처럼 어린 시절의 추억을 다시 소비하고자 하는 성인들을 키드(kid)와 어덜트(Adult)의 합성어인 키덜트(Kidult)라고 부른다. 


이러한 키덜트는 과거 부정적인 인식이 강했다. '키덜트 감성을 이용한 캐릭터 콜라보레이션 연구'(조준호, 2016)에 따르면 과거 키덜트 문화는 정신적 퇴행이라는 부정적 뉘앙스가 강해 소수의 미성숙한 또는 비주류 문화로 간주되는 경향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소위 오타쿠들의 취미나 미성숙한 어린이 같은 어른들의 취미로만 여겨지면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음지 영역에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취미들을 추억 소비와 자기 위로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향유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하나의 문화로 인식되고 문화 산업으로 인정받고 있다. 소수만의 문화였던 성인들의 장난감 수집이 이제는 공개적으로 키덜트 상품을 구매하고 즐기는 문화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키덜트는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19-2021년 캐릭터 구매 설문 조사 결과, 자녀나 조카 선물이 아닌 '나 자신을 위한 구매'를 하는 20대-50대의 비율이 △2019년 65.6%, △2020년 75.4%, △2021년 76%로 매년 상승했다. 또한 키덜트가 많아지면서 키덜트 소비시장도 커지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국내 키덜트 시장 규모는 2020년 1조 6,000억 원으로 2014년 5,000억과 비교해 세 배 이상 커졌으며 향후 최대 11조 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분석했다.


어린이용 장난감을 주로 판매하는 장난감 매장에서도 키덜트를 적지 않게 볼 수 있다. 부산 키즈 마트에 위치한 토이저러스의 판매원 A 씨는 "매장을 방문해 완구를 구입하는 사람들의 연령층은 아이부터 30대-60대의 성인까지 다양하다"고 답했다. "그중 성인들이 아이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 사는 경우도 꽤 있다"며 "성인 고객은 주로 수집용 완구를 많이 구매하는데, 대부분은 피규어를 많이 구매하고, 최근에는 수집용으로 유행하는 실바니안 완구 등을 많이 구매한다"고 말했다. 


우리 대학 B 학생도 "성인들도 충분히 장난감을 사고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주변에서 인형이나 스티커 등을 모으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고, 캐릭터 키링을 가방에 달고 다니는 사람들도 꽤 많이 봤다"고 말했다.

 

추억 소비에 지갑 여는 키덜트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키덜트가 될까.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성인들의 '추억 소비'를 강조했다. 인하대 이은희(소비자학) 교수는 "취업난, 물가 상승 등 어른의 삶을 힘들게 하는 현실의 고통으로 인해 천진난만하던 어릴 때로 돌아가 몰입하려는 심정이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경성대 장은진(문화콘텐츠학) 교수 또한 "추억 소비는 대중문화계에서 불기 시작한 판타지 열풍과 맥락이 닿아있다"며 "판타지의 속성인 불가능한 것을 상상으로 가능케 하는 것이, 키덜트 상품을 통해 자신의 유년 시절로 돌아가 그 추억으로 회귀하는 것으로 커다란 맥락 속에서 판타지에 탐닉하는 성인들의 트렌드를 형성한 것이라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키덜트 캐릭터 소비트렌드 생성 과정과 특성 연구'(백란이,  2016)에 따르면 키덜트가 문화 코드로 주목받게 된 원인은 복잡하게 변화해가는 현대 사회 속 빡빡한 일상을 거부하고 환상의 세계를 동경하는 성인들의 일탈 심리에서 비롯되었다고 분석한다. 또한 각박한 경쟁 사회 속에서 일상을 탈출하고자 하는 직장인의 욕구가 증가한 것과 과거를 그리워하는 복고·향수 심리가 맞물린 것으로도 보고 있다. 


즉, 키덜트 소비자는 자신의 어린 시절 보았던 만화나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사 모으고 팬덤을 이루기도 하는 등 동심, 순수함 등을 관련 캐릭터 상품을 소비하는 것으로 표현하는 적극적인 캐릭터 소비자로 부상했다는 것이다.


키덜트가 적극적인 소비자로 부상함에 따라 음식, 패션 등의 업계에서 이들을 공략하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최근 포켓몬스터(이하 포켓몬) 빵과 함께 들어있는 스티커, 일명 띠부띠부실이 큰 인기를 끌며 연일 품절사태를 기록하자 전국에서 포켓몬 빵을 구하기 위해 편의점 재고가 들어오는 시간을 기다렸다가 구매하거나, 재고 트럭을 따라가 구매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포켓몬 스티커를 모으는 부산의 고등학교 교사 이기백 씨는 "포켓몬 빵과 포켓몬 스티커를 종류별로 모으고 있다"며 이러한 것을 모으는 이유에 대해 "포켓몬 스티커를 수집하고 전시하면서 어린 시절에 느꼈던 소소한 즐거움과 만족감을 느낀다"고 전했다.


이러한 포켓몬 빵의 인기에 힘입어 다른 유통업계 또한 키덜트 마케팅 제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롯데제과에서 지난 8월 출시한 디지몬 빵은 출시 40일 만에 약 190만 개가 팔리며 29억여 원의 매출을 올렸다. 주류업계에서도 키덜트 시장을 노린 캐릭터 마케팅에 힘쓰고 있다. 하이트 진로는 지난 2019년 현대적인 패키지를 새로 도입하고, 브랜드를 상징하는 두꺼비 캐릭터를 귀여운 이미지로 리뉴얼했다. 또한 패션 업계 이랜드의 SPA브랜드 스파오는 잔망루피, 짱구, 검정고무신 등 추억의 캐릭터와 협업해 여러 파자마를 내놓았다. 


잔망루피 캐릭터 잠옷을 종류별로 다 구매했다는 김나영(경남정보대 피부메이크업네일학 1) 씨는 "평소 루피 캐릭터를 좋아해 이모티콘, 티셔츠 등을 많이 구매해왔다"며 "루피 캐릭터 잠옷도 스파오에서 출시된 이후 종류별로 사게 됐다"고 답했다.

이어 그는 "어린 시절 만화에서 친절하고 귀여웠던 캐릭터인 루피가 여러 재밌는 사진으로 합성되고, 사람들끼리 그 사진을 주고받는 것이 흥미로워 좋아하게 됐다"고 말했다.
 

키덜트, 하나의 문화가 될 수 있을까

 

늘어나는 키덜트족과 그를 겨냥한 마케팅을 통해 키덜트는 점점 주류문화로 떠오르며, 생활 영역 전반에서 접할 수 있다. 특히 SNS와 유튜브 등의 뉴미디어가 발달하며 키덜트들을 더 쉽게 만날 수 있다. 


경성대 장은진(문화콘텐츠학) 교수는 "유튜브 등의 뉴미디어를 통해 개인의 수집 컬렉션이 대중에게 공개돼 하나의 콘텐츠가 되는 시대"라며 "키덜트 컬렉션을 수집, 언박싱하는 유튜버들이 증가하면서 대중들에게 키덜트 수집 욕구, 소장 방법, 거래 등이 자연스레 소개되고 노출된다"고 말했다.


유튜브 채널 '키덜트리포트'에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김태석 씨는 "출연자들의 취향과 감성을 담은 키덜트 제품을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싶어 유튜브를 시작하게 됐다"며 "시청자들과 라이브 방송을 통해 추억을 공유하기도 하고, 키덜트 상품을 구매하고 소개하면서 시청자를 위한 대리만족 콘텐츠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키덜트 문화의 핵심인 '추억 소비'는 어린이에서 성인이 된 키덜트들의 소비력에서 비롯된다. 인하대 이은희(소비자학) 교수는 "어린 시절 부모의 통제하에서 억압된 소비 욕구가 성인이 된 후 돈을 벌 수 있는 능력이 생기면 억압된 과거의 욕구가 충족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성인의 소비력과 관련 있는 키덜트 상품은 피규어와 프라모델이 대표적인데 정품 피규어를 사 모으는 키덜트들은 비싼 값을 주고 구매하기 때문에 소비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장난감 가지고 노는 어른이 아닌 트렌드 세터, 키덜트 마케팅'(한국마케팅연구원, 2014)에 따르면 키덜트는 자신이 어린 시절에 경험한 향수를 중심으로 소비하고, 개인적인 만족을 위한 소비에 돈을 아끼지 않는다는 점에서 큰 특징을 갖는다고 분석했다. 따라서 이성적으로 판단했을 때 매우 고가의 제품임에도 불구하고 큰 고민 없이 구매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또 키즈는 구매욕은 강하지만 자력으로 구매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반면 키덜트는 키즈에 못지않은 강력한 구매욕뿐만 아니라 구매를 할 수 있는 능력과 여건 모든 것이 갖춰 있기 때문에 슈퍼파워슈머(Super Power Sumer)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성인들은 고가의 캐릭터 상품을 자유롭게 사 모은다. 동의대에 재학 중인 C 씨는 최근 아이언맨 피규어를 10만 원에 구매했다. C 씨는 "어릴 때부터 어벤져스를 좋아했는데, 피규어는 워낙 비싸다 보니 부모님께 사달라고 조를 수도 없고, 내 돈으로 사기도 어려웠다"며 "아이언맨 피규어가 갖고 싶어 종이 도안을 사 아이언맨 종이 인형을 만들곤 했는데, 성인이 되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열심히 돈을 모아 실제 피규어를 구매했다"고 말했다.


유튜브 채널 '오렌지캐럿'을 운영하는 D 씨 또한 "성인이 되고 스스로 번 돈으로 원하는 장난감, 캐릭터 상품을 구매하면서 유튜브 채널까지 운영하게 됐다"고 말했다. "키덜트 문화의 성장으로 다양한 제품들이 이전보다 합리적인 가격에 출시돼 키덜트 간에 더 활발한 소통이 이루어지고, 사람들의 시선도 더 긍정적으로 변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키덜트 문화의 전망에 대해 이은희 교수는 "키덜트는 상품의 종류가 다양화되면서 계속해서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라 생각한다"며 "최근 화제였던 영화 <오징어 게임>(감독 황동혁, 2021) 속 달고나 뽑기,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등은 물건이 아닐 뿐 추억 속 문화를 소비하는 것으로 키덜트와 비슷한 맥락 속에 있다. 앞으로 키덜드를 겨냥한 식품, 패션, 영화 등 더 풍성하게 즐길 거리가 많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신재원 기자

2208026@donga.ac.kr

<일러스트레이션 = 박하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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