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부즈맨 칼럼│더 깊은 쾌락으로 마약으로
│옴부즈맨 칼럼│더 깊은 쾌락으로 마약으로
  • 동아대학교 다우미디어센터
  • 승인 2023.04.03 12: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친구 집에 눌러앉아 습관처럼 티비 채널만 돌리고 있었다. 어느새 옆에 앉은 친구가 "마약 해봤냐?"하고 물었다. 순간 잘못 들었나 싶어 동그란 뒤통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 시선을 의식한 반달눈이 햇빛을 머금고 가늘게 휘었다. 킥킥대는 웃음소리는 덤이었다.


때마침 티비에서 모 연예인의 마약범죄를 떠들어댔다. 약 빤 것처럼 연기를 한다는 말이 늘 따라붙던 배우였다. 뉴스의 내용은 그가 출연했던 작품보다 영화 같을 정도로 현실과 동떨어져 있었다. 싸하게 타고 오르는 서늘함에 몸서리를 칠 무렵, 웃음기 빠진 음성이 귓가를 스쳤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는 친구의 말에 고개만 주억거렸다.


원체 실없는 말을 뇌까리던 녀석이었으나, 얼굴 안에는 세상에 대한 근심과 막막함이 어렸다. 이미 우리는 마약 해봤냐는 소리가 너무도 당연한 시대에 살고 있었다. 한국은 2016년에 마약 청정국 기준을 넘어섰을뿐더러, 얼마 전 부산 앞바다에서 한 낚시객이 마약을 무더기로 건져 올린 일도 있지 않았는가.


그렇게 마약은 우리 사회를 좀먹었다. 갉아먹은 구멍이 커질수록 가시 돋친 덩어리가 온 혈관을 타고 역류했다. 그러다 가끔 눈앞이 새하얗게 아득해지고 목덜미가 달아오를 때면 쾌락을 모른다는 안도감과 비루함 사이에서 이성을 잃었다. 그 순간마저 필자의 눈에 보이는 건 '마약 옥수수'란 다섯 글자였다.


전염병처럼 일상에도 퍼진 마약은 '마약 계란장', '마약 떡볶이'라는 신조어로 다시금 과오를 새겼다. 맛있다는 말이 그저 마약으로 치환돼 중대한 범죄를 포장하고 희석했다. 심지어는 아이들마저 '맛있다'는 표현 대신 '마약'을 입에 올렸다. 어떠한 거부감 없이 쉽게 내뱉는 아이들을 차마 똑바로 바라보기 힘들었던 게 사실이리라. 마약의 전염성이 비단 일상에만 스며든 건 아니었다. 진심으로 신음하는 사람은 따로 있었다. 그 순간 마약 복용자들은 도미노처럼 우르르 무너져 내렸다. 열심히 쌓아오던 거대한 벽들이 차례차례 넘어졌다. 그때 빠져나온 톱니바퀴 때문인지 맞물리지 않는 기계처럼 요란한 불협화음이 났다.


대체 왜 그들은 생의 밑이 다 갈려 나간 채로 쾌락만 좇으며 마약에 기댈 수밖에 없었나. 그것만이 유일한 탈출구였다는 건 비열한 핑곗거리처럼 들렸다. 다들 밑바닥을 기면서 산다. 가설이 합당하다면 이미 많은 사람이 수백 번 마약을 해야 했다. 텔레그램으로 단돈 만 원이면 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쾌락보다는 세상의 잔혹함에 길들길 택했다. 꺼져가는 촛불처럼 목숨이 겨우 붙어 있어도 결코 쾌락에 영혼을 팔진 않았다. 어차피 모든 것에는 금이 가 있기 마련이고, 그 나약함에서 빛이 나온다는 사실을 알았다.


결국 참다못한 윤석열 정부는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그러나 마약중독자들의 숨이 붙어있는 한 어떻게든 마약을 손에 넣고 뒤로는 부지런히 유통해 돈을 거둬들일 테다. 그런데도 이 땅에는 그들을 위한 공간이 없기에 중독자들은 사지로 내몰리고, 마약에 돈을 갖다 바치며 본인의 목숨 줄을 쥐여 주는 처절한 존재로 추락할 수도 있겠다.


지금도 이들은 어둡고 음습한 곳에 모여 자기 생의 절반을 떼어내 쾌락으로 날리고 있다. 무성한 세월을 더욱 건강하고 맑게 살도록 중독의 사슬을 끊어내는 방법은 오직 금단뿐이다. 마약을 벗어나서야 마약을 알 만큼 금단증세가 머리끝까지 차오르겠지만 당신은 절대 나약하지 않기에 이겨낼 수 있음을, 꺼져가는 재처럼 씁쓸하게 웃는 입꼬리만큼이나 쾌락만을 좆는 삶이 유일하지 않다고 작게 되뇌어본다. 


 박선주 독자위원(철학생명의료윤리학 3)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부산광역시 사하구 낙동대로550번길 37 (하단동) 동아대학교 교수회관 지하 1층
  • 대표전화 : 051)200-6230~1
  • 팩스 : 051)200-6235
  • 청소년보호책임자 : 권영성
  • 명칭 : 동아대학교 다우미디어센터
  • 제호 : 동아대학교 다우미디어센터
  • 등록번호 : 대전 가 00000
  • 등록일 : 2017-04-05
  • 발행일 : 2017-05-01
  • 발행인 : 이해우
  • 편집인 : 권영성
  • 동아대학교 다우미디어센터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동아대학교 다우미디어센터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