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발언대│새로운 가족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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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아대학교 다우미디어센터
  • 승인 2023.06.05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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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현 <br>​​​​​​​정치외교학 '23 졸
박서현
정치외교학 '23 졸

 

인연(因緣)이란 사람들 사이에 맺어지는 관계를 뜻하는 단어다. 단어의 정의만 본다면 인연이란 것은 누군가와 특별한 사건이나 필연적인 경험이 있어야만 생성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인연은 우리의 생각보다 그리 거창하지 않다. 같은 시간, 같은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함께 기다리던 사람들도 나와 인연이 될 수 있고,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옆집 사람과도 인연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사소한 것이다. 이 수많은 인연 중에서도 법적으로 보호해 주고 인정해 주는 인연이 있다. 혈연(血緣)이다. 이 혈연은 가족이라는 혈연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으며, 가족이라는 공동체를 통해 비로소 국가의 보호를 받을 수 있게 된다. 


 이를 증명하듯 대한민국 헌법 제36조 1항에는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돼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라고 명시돼 있다. 그렇다면 가족이라는 공동체의 구성이 되기 위한 조건은 무엇일까. 대한민국 민법 제779조에서는 가족의 범위를 배우자와 직계 혈족, 형제·자매, 배우자의 직계 혈족과 형제·자매로 규정하는데, 이 민법의 내용과 가족의 사전적 정의는 거의 같다. 결국 같은 핏줄이 아닌 남남이 결혼을 하게 되면 가족이라는 혈연 공동체의 구성원이 돼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법체제 때문에 가족이 될 수 없어 보호받지 못한 이들이 있었다. 2013년 10월, 부산에서 여고 동창생 A 씨와 B 씨가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했다. 그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부터 아파트를 마련해 40년간 함께 살았다. 그러나 그해 8월, A 씨가 골수암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아 병원에 입원하면서부터 비극이 시작됐다. B 씨는 아파트 명의가 A 씨로 돼 있어 명의를 본인으로 이전하려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수년 동안 얼굴 한 번 비치지 않은 A 씨의 조카가 나타나 재산권을 행사했기 때문이다. 그는 A 씨의 사망보험금도 차지하며, B 씨를 고소했다. 그리고 B 씨는 병원과 집에 갈 수 없다는 접근 금지 처분을 받은 후 자신의 신변을 비관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해당 사건이 보도된 이후, A 씨와 B 씨가 레즈비언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져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우리나라 헌법과 민법에서는 혼인의 당사자를 따로 규정짓고 있지 않고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한국의 혼인제도가 형성돼 온 배경과 현재 동성 간 혼인신고는 불가하다는 점을 미뤄 봤을 때 결국 대한민국에서의 혼인 당사자는 남녀 간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B 씨는 법적으로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40년간 함께 살았던 사랑하는 이의 임종을 지킬 수 없었고, 둘의 세월과 추억이 담긴 보금자리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그들은 가족이었지만 가족이 될 수 없었다. B 씨를 죽음으로 내몬 것은 그들을 가족으로 인정해 주지 않은 우리 사회였다.


이러한 비극이 있었음에도 일각에서는 동성혼 허용은 반사회적 행동이라며 반대하는 의견이 분분하다. 그렇다면 주어를 바꿔서 다시 생각해 보자. A 씨와 B 씨가 레즈비언이 아니라 '친구'였으며, 서로 의지할 곳이 필요해 같이 살고 있었던 노인들이었다면?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이었다면? 이런 상황에서도 법의 도움을 받기 힘든 건 마찬가지다. 법의 영역인 혈연 공동체에게 실질적인 돌봄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생전 본 적도 없는 혈연이 뒤늦게 보험금과 집을 챙기고, 서로 의지하던 친구는 가족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주어는 내가 될 수도, 내 주변인이 될 수도 있다. 이 또한 비극 아닌가.


 국가는 헌법을 통해 혼인과 가족생활에 있어서 개인의 존엄 유지를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이 제도는 되려 가족의 단위를 규정지어 그 틀에서 벗어나면 비정상으로 간주하는 데에 일조했으며, 이는 혐오로 이어져 결국 사회적 타살을 야기했다. 정치권에서도 이 문제를 인식해 수년 전부터 '생활동반자법'을 추진했으나, 특정 종교 단체의 반발로 발의조차 되지 못했었다. 그러나 지난달 31일, 정상 가족 프레임을 벗기기 위한 한 걸음이 시작됐다.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생활동반자법'을 발의했기 때문이다. 개정안 내용에는 △혼인평등법(민법 개정안) △생활동반자관계 △비혼출산지원법(모자보건법 일부 개정안)에 관한 법이 포함됐다.


혼인평등법은 민법에 동성 간 혼인을 금지하는 조항이 없음에도 동성혼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점을 꼬집었으며, 생활동반자법 개정안은 혈연이나 혼인 관계가 아닌 두 성인이 함께 살아가는 것을 생활동반자 관계로 가족과 같은 개념으로 법적인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수정한 것이 핵심이다. 그리고 모자보건법 개정안의 경우 기존의 시험관, 인공 수정 가능 대상자를 난임 부부에서 미혼임에도 임신과 출산을 원하는 여성들로까지 확대해 비혼 출산을 법적으로도 용인할 수 있도록 내용을 변경했다. 기존의 정상 가족 개념에는 반하지만 우리 사회는 변화했고, 변화한 만큼 가족의 구성도 다양해져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할 때부터 '글로벌 스탠다드(Global standard)' 시스템을 강조했다. 이미 선진국 국가 대부분은 비혼 출산을 법적으로 용인했으며, 서구권 국가에서는 동성혼과 자유롭게 동거를 할 수 있고, 동거인이 가족과 같은 법적 지위를 부여한 경우가 허다하다. 이러한 선례들을 봤을 때 대한민국은 늦어도 한참 늦은 셈이다. 발의안은 이제 국회 본회의와 법제사법위원회, 그리고 국무회의가 남았다. 여전히 비난과 혐오가 가득하지만, 이 발의안 자체가 정부에서 그토록 강조하는 글로벌 스탠다드 아니겠는가. 부디 정부에서 세계화와 선진화를 향한 책임 있는 정치적 논의를 실현해 주길 바란다. 그리고 모두가 보호받을 수 있는 새로운 가족이 탄생할 수 있길 고대하고, 또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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