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시각│물가가 오르니깐 아끼는 '거지'
│기자시각│물가가 오르니깐 아끼는 '거지'
  • 이승희 기자
  • 승인 2023.06.05 12: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거하"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을 통해 거지방에 참여하면 기존 참여자들이 '거하'라는 단어로 반겨준다. '거지 하이'의 준말인 셈이다. 최근 자신을 '거지'라 칭하며 이들과 소비 내역을 공유하는 '거지방'이 유행이다.


거지방에서는 각자의 소비 내역을 하루 혹은 일주일 단위로 공개하는데, 참여자들의 다수에 의해 합당한 소비가 아니라고 판단될 땐, 비판을 빙자한 농담이 오간다. 실제 기자가 참여한 거지방에서는 아메리카노 2,500원이라는 소비 내역에 "직접 타서 마시면 더 싸다"는 반응이 돌아왔다. 이처럼 '거지방'은 소비를 공유하고 불필요한 소비를 줄여나가자는 취지로 개설된 방이다.


주로 10-20대가 많이 참여하는 거지방은 다양한 언사들이 오간다. 5,000원짜리 밥을 먹으면서 좋아하는 아이돌의 포토 카드를 구매하기 위해 50,000원을 사용하는 사람에게 "아이돌이 밥 먹여주냐"는 원색적인 비난이 오가기도 한다. 이렇듯 연령층의 특성답게 생활에 필요한 돈보다는 △팬 활동 △게임 △취미생활 등의 분야에서 소비하는 비중이 높았다. 


이러한 가벼운 분위기로 소비 내역을 공유하는 거지방은 과연 유머러스한 생성 배경을 가지고 있을까? 아니다. 중·고등학생과 대학생의 소비 양식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바뀐 것은 물가뿐이다. 치킨값이 기본 2만 원이 된 사회에서 사용할 수 있는 금액이 한정된 학생들은 자기 스스로 절제하며 소비할 수 있는 금액을 점차 줄여갈 수밖에 없다.


거지방 이전엔 '개인적인 만족에 의한 지출'은 줄이고 필요한 소비만 하는 무지출 챌린지가 있었다. 문화도 취미도 즐기지 못한 채로 돈을 아껴 생활에 투자해야 할 정도로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검열해야 하는 소비 패턴을 만들어 가고 있다.


식당 메뉴판에는 가격을 덧대 오른 가격이 반기고, 오른 물가에 지갑을 여는 부담은 더 커진다. 그렇게 되니 거지방에서는 매달 말일이 되면 컵라면, 삼각김밥 등으로 배를 채우는 소비 내역을 확인할 수 있다. 그들이 과소비한 것도 아니었다. 기본적인 의식주를 챙기기 위해 제대로 된 식사를 하려면 기본적으로 8,000원이 넘는 돈이 들고, 그마저도 저렴한 축인 식당에 갔을 때 드는 비용인 것이다.


물가는 오르는데 수입은 고정된 상태이니 지난달보다 이번 달이 더 궁핍하고, 이번 달보다 다음 달이 더 궁핍한 소비 생활이 되는 건 당연한 일이 됐다. 애호박 하나에 1,200원 하던 때가 엊그제인데, 정신을 차리니 애호박이 3,000원이 넘는 가격으로 오른 물가에 지갑은 강제로 다이어트하는 것이다.


이런 경제 속에서 거지방에 참여하는 이들의 웃음 뒤에는 결국 부의 증식이 어려우니 절약으로 버텨 보자는 의지가 담겼다. 소비보다 절약에 관심을 가지는 이들이 일종의 밈으로서 거지방에 참여함으로써 많은 이가 소비에 경각심을 가지고, 강요받지 않고 재미를 추구하며 함께 절약하게 된다. 그렇기에 이들은 부드럽고 장난스러운 하나의 놀이 문화로 인지하게 되는 것이다.


이전의 유행은 한 번뿐인 인생 즐기며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자는 'YOLO'와 부나 귀중품을 과시하자는 'FLEX'와 같은 과소비를 부추기는 문화였다. 그러나 이번의 '거지방' 유행은 고물가 시대의 위기를 기회 삼아 새로운 문화가 창조된 것이다. 위기를 승화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절약하자는 취지이기에 이전의 문화보다 건전하게만 느껴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거지방의 내면에는 고물가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한 이들이 뭉쳐 함께 이겨내기 위한 처절한 의지가 담겨 있다. 절약이 하나의 트렌드가 된 지금, 모두가 공통으로 생각하는 질문은 이것일 거라고 감히 추측할 수 있다.


물가, 어디까지 오르는 거예요?

 

이승희 기자

1778wmok@donga.ac.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부산광역시 사하구 낙동대로550번길 37 (하단동) 동아대학교 교수회관 지하 1층
  • 대표전화 : 051)200-6230~1
  • 팩스 : 051)200-6235
  • 청소년보호책임자 : 권영성
  • 명칭 : 동아대학교 다우미디어센터
  • 제호 : 동아대학교 다우미디어센터
  • 등록번호 : 대전 가 00000
  • 등록일 : 2017-04-05
  • 발행일 : 2017-05-01
  • 발행인 : 이해우
  • 편집인 : 권영성
  • 동아대학교 다우미디어센터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동아대학교 다우미디어센터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