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져나갈 수 없는 전세사기의 늪
빠져나갈 수 없는 전세사기의 늪
  • 박기표 기자
  • 승인 2023.09.11 18: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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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왕 △건축왕 △깡통전세… 모두 전세사기를 일컫는 단어들로, 최근 전세사기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며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집은 인간이 살아가는 데 있어 기본적으로 필요한 의식주에도 포함되는 만큼, 집을 이용한 사기행각은 결코 간과할 수 없다. 내 집 마련을 위해 평생을 꿈꾸던 청년들의 꿈이 전세사기로 짓밟히고 있다.

일러스트레이션=박소현 기자
<일러스트레이션=박소현 기자>

 

나도 모르는 사이 당한 전세사기


우선, 전세란 보증금을 맡기고 남의 집에 임차한 뒤 계약기간이 끝나면 보증금을 돌려받는 주택임대차 유형으로 월세를 내지 않는다는 점에서 월세와는 다르다. 


우리나라에 전세 제도가 도입된 것은 주택금융시장이 활성화되기 전, 집주인과 세입자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나타났다. 집주인은 부족한 주택구입자금을 전세자금을 이용해 무이자로 융통하고, 세입자는 매달 이자를 부담하는 것보다 주택의 절반 가격 정도에서 주택을 임차하는 것이 득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이런 전세를 이용한 사기가 급증하고 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국토교통부·대검찰청과 지난해 7월부터 지난 7월까지 약 1년간 벌인 전세사기 특별단속에서 의심 사례 1,249건을 수사해 3,466명을 검거하고 367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특히 피해자 57.9%(2,903명)가 2030세대로 30대가 1,708명(34.1%)으로 가장 많았으며 20대가 1,195명(23.8%)으로 뒤를 이었다.


남 일로만 여겨졌던 전세사기는 이제 더는 남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보수동 인근의 한 오피스텔에 거주하는 우리 대학교 A 학생은 지난해 12월 전세계약이 만료됐지만, 집주인으로부터 전세금 3,000만 원을 받지 못했다.


그는 "같은 오피스텔 주민이 전세사기를 당했다는 대자보를 오피스텔 내에 붙인 것을 보고 나서야 나도 사기당한 것을 알게 됐다"며 이어 "사기를 당한 것을 알게 된 후, 입주자들끼리 연락망을 만들어 집주인에게 계속 연락했다. 하지만 연락이 잘 닿지 않았고, 그마저도 문자로 '조금만 기다려 달라'는 답을 받은 게 전부"라며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인천 남동구의 빌라에 거주하는 B 씨 역시 1억 2,000만 원가량의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채 전세사기를 당했다. 그는 "전 집주인과 전세 계약을 맺었지만, 중간에 집주인이 바뀌면서 새 집주인과 연락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부동산에서 알려준 연락처도 새 집주인 번호는 아니었다. 현재는 새 집주인과 연락이 닿지 않아 전세 보증금 행방 자체를 알 수 없다"며 피해 사실을 호소했다.

 


불붙듯 번진, 전세사기


그렇다면 전세사기는 왜 급증했을까. 전문가들은 △개인 △은행 △정부 등 여러 원인이 있다고 말했다. 동의대 부동산대학원 강정규 교수는 대다수 세입자가 부동산 기초 지식이 없다는 점을 꼬집었다.

그는 "인간의 삶에 있어 의식주는 기본인데 특히 주(住)인 부동산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너무 모르고 있다"며 이어 "전세사기 유형은 크게 보면 등기부 등본 위조와 전셋값을 부풀려 더 많은 전세금을 가져간 후 돌려주지 않는 상황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이 두 가지 모두 세입자가 전세 시장에 대해 이해를 못함으로 인해서 발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리 대학 박봉철(법학대학원) 교수는 "낮은 금리로 돈을 빌릴 수 있었던 소위 갭투자자들이 갑작스럽게 금리가 높아지자, 이자를 감당하기 어려워지며, 전세사기가 급증한 것"이라며 전세사기와 경제 상황의 관련성을 언급했다. 갭투자는 시세차익을 목적으로 주택의 매매가와 전세금 간의 차액이 적은 집을 전세를 끼고 매입하는 투자 방식이다. 


이어 동의대 재무부동산학과 C 교수는 쉬워진 은행 전세대출 문제를 꼬집었다. 그는 "최근 전세자금 대출을 많이 해주니 전세자금이 5천만 원만 있는 사람도 무리해 1억 원 전셋집으로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실제로 B 씨 역시 전세 보증금 1억 2,000만 원 중 90%가 대출이다.


금융감독원이 지난해 발표한 '은행권 전세자금대출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9년 20·30대의 전세자금대출은 54조 7,381억 원이었으나 지난해엔 무려 96조 3,672억 원으로 20·30대의 전세자금대출 합계가 약 100조 원에 육박하는 형태를 보였다.


우리 대학 부민캠퍼스에서 7년째 부동산을 운영하는 공인중개사 D 씨는 "임대인이 건물의 총임대료를 정확히 제시하는 의무가 없다. 호실마다 모든 임차 보증금을 확인할 방법이 없다 보니 공인중개사들도 그저 중개할 뿐이다"라며 임대인과 임차인 간의 정보 비대칭성을 언급했다.

 

일러스트레이션=박소현 기자
<일러스트레이션=박소현 기자>


전세사기특별법 발의했지만, 실효성은 글쎄…


전세사기를 당한 A 학생과 B 씨처럼 전세사기로 고통받는 피해자들을 위해 지난 5월,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및 주거 안정에 관한 특별법(이하 전세사기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해당 법안에는 피해 보증금 보전을 비롯해 정부가 전세사기 피해자들에게 *최우선 변제금을 받지 못하는 피해자에게 최우선 변제금만큼 최장 10년간 무이자 대출해 주는 내용이 담겼다. 또한 피해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해 전세 대출을 상환하지 못하는 피해자들을 위한 신용 회복 프로그램도 가동된다.


그리고 전세사기 피해가 중점적으로 일어난 △서울 △인천 △부산 지역을 중심으로 전세피해지원센터를 설립했다. 부산전세피해지원센터는 전세사기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긴급 주거지원 △금융지원 △무료 법률상담 △심리 상담 등을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노력에도 아직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아쉬움은 크다.  A 학생은 전세사기특별법 발의에 대해 "*소액임차인에 해당해야만 피해 보증금을 받을 수 있다고 들어서 실제로 피해자들에게 어떤 효과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지금 상황에서 최소한의 보증금이라도 받고 싶다"고 전했다. 


지난 5월, 전세사기피해자전국대책위가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전세사기특별법에 피해자들이 요구한 '선 구제-후 회수' 방안이 포함되지 않았다며 최우선변제금을 받지 못하는 피해자들에 대한 보증금 회수 방안 마련을 촉구했다.


이에 박봉철 교수는 "정부가 선 구제-후 회수 안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본질적인 이유는 임대인을 상대로 *구상권을 행사할 실익이 없다는 데 있다"며 "임대인이 경제적 능력을 이미 상실한 상태이기 때문에 민사적인 구상권을 행사한들 집행할 수 없는 결과가 뻔히 예상되기 때문이다"라고 전했다. 


또한 전세사기 피해자의 인정 요건이 애매하다는 의견도 많다.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 관계자는 지난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피해 요건 중 '다수의 피해' '(집주인의) 기망, 반환능력' 등 구체적 부분을 위원회가 결정하는데 세부 기준이 없다. 회의록을 공개해야 한다"고 전했다.


현재 전세사기특별법은 △대항력(전입신고)과 확정일자 △임차 주택에 대한 경매 진행 △면적·보증금 등을 고려했을 때 서민 임차 주택에 해당 △전세사기 의도가 있다고 판단 △다수의 피해자 발생 △보증금의 상당액 미반환의 요건이 있다. 이 6가지 요건 중 4가지를 충족해야 특별법 지원 대상이 된다.


법무법인 재유 이지욱 변호사는 "이 같은 요건을 정한 것은 형사상 처벌 대상이 될 전세사기와 달리 단지 집값 하락으로 인한 '역전세'까지 전부 특별법으로 보호하는 것은 형평의 문제가 있기 때문에 피해자 인정요건을 제한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인정요건 중 일부가 모호하다는 지적이 있긴 하지만, 이를 지나치게 구체화하는 경우 자칫 소외되는 피해자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의견을 전했다.

 


안전한 집을 구하기 위해선


그렇다면 사회 초년생들은 지금과 같은 사회적 상황에서 집을 안전하게 구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부동산 계약도 개인 간의 사적인 거래인만큼 개인의 재산은 개인이 지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박봉철 교수는 "전세제도는 전입신고와 확정일자를 왜 받아두어야 하고 그 한계는 무엇인지와 같은 관련 법 지식을 공부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C 교수 역시 "대학생들이 교양과목으로라도 부동산 법과 같은 생활법률에 관한 공부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주택 보증 보험의 중요성도 언급했다. C 교수는 "전세 보증금을 안전하게 돌려받기 위해서는 임차인 전세금 반환 보증보험을 임차인들이 무조건 가입해야 한다"고 밝혔다. 실제로 '전세사기 유형별 분석 및 해결방안'(황세은·장희순, 2023) 논문에 따르면 현재 전세 거래의 약 20% 정도만 반환보증에 가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D 씨는 피터팬과 같은 부동산 직거래 플랫폼을 이용하는 것은 절대 금물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집주인이 직접 매물을 파는 직거래는 사기를 당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라며 "직방이나 다방에 나온 매물의 거의 80%가 허위 매물이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부동산에 가서 매물을 확인하고 꼭 중개를 받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끝으로 이지욱 변호사는 "계약할 부동산에 대한 등기부등본과 건축물대장을 살펴봐야 한다. 부동산등기부등본에 △가압류 △저당권 △전세권 등이 설정됐는지 확인하고 부동산 건축물대장에 건축법 위반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고 전했다. 

 

박기표 기자
854526@donga.ac.kr

*최우선 변제금: 부동산이 경매에 넘어가도 소액 임차인이 보증금 일부를 우선 돌려받을 수 있는 제도.
*소액임차인: 임대차 보증금이 주택임대차보호법에서 정한 금액보다 적은 임차인.
*구상권: 남의 채무를 대신 변제해 준 사람이 채무자에게 갚아 준 돈의 반환을 청구하는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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