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속에서도 그들이 희망을 찾기를
어둠속에서도 그들이 희망을 찾기를
  • 정유진 기자
  • 승인 2023.10.10 10: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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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박소현 기자>

 

약 54만 명. 2021년 기준 한국 고립 청년의 수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하 보사연)은 지난 5월 발표했다. 2000년대 초반 일본에서 히키코모리라는 형태로 처음 시작된 고립 청년은 한국에서 꾸준히 증가하며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은둔형 외톨이와 사회적 고립 청년

 

△은둔형 외톨이 △고립 청년 △히키코모리 △은둔 청년… 다양한 용어로 불리는 은둔형 외톨이는 집 안에만 칩거한 채 가족 이외의 사람들과는 인간관계를 맺지 않고 보통 6개월 이상 사회적 접촉을 하지 않은 사람들을 이르는 말로 규정된다.


고립·은둔 청년 지원기관 푸른고래리커버리센터 김옥란 센터장은 "은둔은 고립된 상황에서 사회와 단절된 상태로 방 안에서 나오지 못하는 현상"이라며 "고립을 조금 더 큰 개념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즉, 고립이 은둔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하지만 최근 은둔과 고립의 형태가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나기에 전문가들은 이를 구분하지 않고 통틀어 고립 청년이라고 말하는 추세다. 사단법인 오늘은 강국현 사무국장은 "어디까지가 고립이고 어떤 특성을 가지는 것이 고립이라고 정의하기 어렵고 큰 의미가 없는 일"이라며 "행정지원 편의상 필요할 뿐, 큰 범위에서 사회적 관계자본이 부족한 청년들을 고립 청년으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이러한 사회적 고립을 겪고 있는 청년들은 얼마나 될까. 지난해 서울시의 '서울시 고립·은둔 청년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서울 시내 사회적으로 고립·은둔 상태에 있는 만13-39세 청년이 약 12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됐다. 같은 해 '부산시 은둔형 외톨이 실태조사'에 따르면 부산시 거주 18-34세 청년 중 은둔형 외톨이는 최소 7,511명에서 최대 2만 2,507명으로 추산됐다. 사회적 고립 청년은 특히 코로나19를 겪으며 더욱 증가했다. 보사연에 따르면 코로나19 발생 이전 2019년 약 34만 명으로 추산됐던 고립 청년은 2021년 54만 명으로 급증했다. 

 

고립 청년, 그들의 이야기 

 

고립 청년들은 어떤 이유로 방으로 들어가게 됐을까.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당사자분들이 직접 정한 가명을 사용했습니다)

 

#1 "시궁창 같은 상태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죽지 못하는 이유 중의 하나였다"

서울에 거주 중인 자스민(32) 씨는 △부모님의 이혼 △아빠의 정신, 신체적 학대 △학교의 왕따 △대학 진학 실패로 인해 6년간의 은둔생활이 시작됐다. 그는 "돈 문제가 가장 힘들었고 밖에 나가라는 엄마의 잔소리도 힘들었다. 매 순간이 우울하고 죽고 싶었다"고 은둔생활을 회상했다. 이어 그는 "혼자 고립되서 안정을 느낀 것은 좋았다"고 밝혔다. 

 

#2 "무기력하고 삶은 무료했다. 내가 뒤늦게 출발해야 하는 게임에 참여하고 싶지 않았다"

인천에 거주 중인 서자(33) 씨는 "원래 독립적이고 내향적이며 집에 있는 것을 좋아했고 미국 유학을 하면서 혼자 지내고 집에 있는 게 익숙해졌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으로 돌아온 후 한국 학교로 복학하지 않았고 아무 목표나 계획 없이 집에 계속 있다 보니 관성이 돼 5년 정도 은둔을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20대의 청년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정작 무엇을 하려고 하면 뭘 해야 할지 몰랐다"며 "많은 선택지 앞에서 방황했고 또래보다 뒤처졌다는 생각에 선택하기를 두려워했다. 불리한 게임이라도 시작했어야 했는데 시작을 미루다 보니 은둔이 지속됐다"며 당시 심정을 밝혔다. 

 

#3 "입김이 나오는 추운 겨울 날씨에 내리쬐는 햇볕이 정말 따뜻했다"

서울에 거주 중인 하나(정인희)(29) 씨는 "은둔생활이 시작된 계기는 우울증과 게임 중독으로 인한 등교 거부였다"라고 회상했다. 그는 "제게 아버지란 잘해주다가도 언제 돌변할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어린 저는 집안에서 항상 불안했다"며 "어머니가 맞벌이를 시작하고 주변에 돌봐줄 사람이 없었기에 밖을 떠돌다 피시방을 알게 되고 컴퓨터에 빠지게 됐다"고 말했다. 


결국 정인희 씨는 중학교 1학년 때 정신과를 내원했고 화병과 우울증 진단으로 약을 먹었다. 하지만 나아지지 않았고 이후 등교 거부를 하며 11년 간 은둔으로 이어졌다. 그는 "부모님과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수준의 갈등이 있었다. 사춘기가 오고 아버지의 행동이 옳은 게 아닌 것을 깨닫자 억눌려 있던 감정이 심하게 폭발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10년간의 은둔생활을 보다 못한 어머니에 의해 정인희 씨는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됐다. 그러나 오히려 그곳에서 안정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는 "당시 주치의 선생님을 만나고 정말 오랜만에 안정감을 느꼈던 것 같다"며 "입원 후 처음으로 했던 보호자 동반 외출에서 겨울 햇볕이 정말 따뜻한데, 이걸 놓치고 살았구나 싶었다. 또 오랜 은둔생활로 장시간 걷는 방법을 까먹은 자신에게 심한 충격을 받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4 "은둔을 시작할 때 상태가 좋지 않아서 아무 생각도 감정도 없었던 것 같다"

서울에 거주 중인 돌솥비빔밥(43) 씨는 심한 우울증으로 인해 밖으로 나가기 어려워 2년 반의 은둔생활이 시작됐다. 그는 "처음 은둔할 때는 상태가 좋지 않아 침대에 누워만 있었다. 하지만 상태가 좋아지고 정신이 들면서부터는 TV를 보기 시작하고 책도 읽었다. 스트레스에서 벗어난 상황과 자유가 좋았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돌솥비빔밥 씨 역시 신경정신과에서 약물 치료의 도움을 받았다. 상태가 호전되고 바깥 활동을 하려는 욕구가 커졌지만 쉽지 않았다. 그는 "은둔 막바지에 다시 세상에 나올 준비를 하면서 가장 힘들었다. 이미 많이 뒤처진 것 같아 부끄럽고 불안했고 수많은 취업 시도가 실패하며 좌절했었다"고 토로했다. 

 

고립 청년들은 왜 은둔할까

 

전문가들은 고립 청년들이 은둔하는 이유엔 다양한 원인이 있다고 주장한다. 김옥란 센터장은  "은둔의 원인으로 가장 빈도가 높은 문제를 꼽자면 △학교폭력 △가정 내 불화 △취업 및 학업 실패가 다수다"라며 이어 그는 "그 외에도 △신체장애 △외모 콤플렉스 △직장 내 괴롭힘 △정서적 어려움 등 많은 이유로 청년들이 은둔에 이르게 된다"고 덧붙였다. 


또한 한국 사회의 구조에서도 은둔의 원인을 찾을 수 있다. '한국 사회의 은둔형 외톨이 출현 배경 연구'(정근하, 노영희, 2022)에 따르면 노력을 통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었던 고도성장기의 사회 구조와는 달리, 외환위기 이후의 한국 사회는 부모의 지위와 경제력에 따라 장래의 모습이 명확해지는 불합리한 사회가 됐다. 이는 청년층에게 체념과 포기라는 부정적인 사고를 심어줬고, 거기서 회복하지 못한 청년들이 좁은 골방으로 들어가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은둔 경험자 4인과 나눈 인터뷰를 담은 책 『마음의 안부』 저자 최선희 작가 역시 "현재 청년들은 다양성을 인정받기보다 획일화된 기준으로 평가받고 선발되는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사회에 살고 있다"라며 우려했다. 


이렇듯 청년들의 은둔 원인은 다양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들에게 공통점이 있다고 말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김성아 부연구위원은 "어려움을 겪을 때 의논하거나 도움을 요청할 사람이 없고, 이를 사회적 지지 체계가 결핍됐다고 말한다"고 전했다. 이어 고립 청년을 지원하는 비영리 단체 사람을 세우는 사람들 더유스 김재열 대표는 실패의 경험을 언급했다. 그는 "은둔 청년들을 만나봤을 때 그들이 갖고 있는 공통점은 실패감이 가장 컸다. 직업이나 학교나 관계에서의 실패 등 다양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은둔 청년들이 증가한다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청년의 고립은 얼마나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킬까요?'(청년재단, 2023)에 따르면 청년 고립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최소한의 비용으로 계산할 경우, △경제비용(비경제활동·직무성과 저하·비출산) 7조 2천억 원 △정책 비용(국민기초생활보장·실업급여 등) 2천억 원 △건강 비용(질병·조기사망·작업 손실) 293억 원 등으로 나타났다. 


부산연구원 환경안전연구실 박주홍 책임연구위원은 "청년이 한참 생산 시기인데 고립 청년들이 증가하면 사회 전체의 생산성이 떨어진다. 또 고립 청년들이 취업이나 경제적 자립 부분에서 불안정한 상태이기에 결혼이나 연애, 출산을 기피한다. 그렇게 되면 연쇄적인 사회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편, 은둔에서 벗어났다가 다시 은둔을 시작하는 재고립 청년들의 수도 증가하고 있다. 청년재단이 지난 6월 만 19-39세 은둔·고립 청년 393명 대상으로 실시한 '재고립 실태조사'에 따르면 은둔 청년의 58.8%가 재고립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청년들이 은둔에서 벗어났지만, 다시 방으로 들어간 이유는 무엇일까? 


청년재단 대외협력팀 박재영 팀장은 "고립과 은둔을 했던 청년이 어렵게 사회로 다시 나왔을 때 사회는 그대로"라며 "은둔 청년들은 다른 사람의 반응에 특히 예민한데, 사회는 일반인들과 똑같은 기준으로 이들을 보고 조금만 잘못해도 비난하고 꾸짖는다. 어쩌면 그들이 재고립을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며 지적했다.

 

그들이 다시 밖으로 나오려면 

 

지난해 5월, 윤석열 정부는 110대 국정과제에서 고립·은둔 청년 실태 파악 및 맞춤형 지원체계를 구축하고 확대하겠다는 세부과제를 발표했다. 그러나 현재 고립 청년을 위한 지원사업을 실시하는 곳은 서울뿐이다. 부산시청 청년희망정책과 관계자는 "현재 고립·은둔 청년을 위한 별도의 정책계획이 있지는 않다"며 "그렇지만 현재 진행 중인 청년 정신 건강을 돌보는 마음이음사업을 내년에 더욱 확대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김옥란 센터장은 "한 명의 고립 대상자를 회복시키는 데 필요한 가장 중요한 것은 물적, 인력 자원인데 현재 무척 부족한 상황이다"라며 "현재 진행되고 있는 고립·은둔 청년 지원 사업은 전국 단위 사업이 아니다. 국가적 공공복지의 영역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고립 청년들이 다시 밖으로 나오려면 어떤 것이 필요할까. 김 부연구위원은 "고립 청년들이 바라는 건 보통의 삶"이라며 "안정감을 느끼며 나올 수 있는 공간과 적절한 도움을 줄 수 있는 전문 인력 그리고 그들이 나왔을 때 갈 곳과 할 일을 제공해 주는 게 적절한 도움"이라며 조언했다.


이어 강국현 사무국장은 "고립 기간을 가지고 나온 청년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 고립을 공백으로 받아들인다"며 "가령 해외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온 청년을 보며 해외에서 무엇을 했는지 모르지만, 도전 혹은 경험을 습득하고 온 사람으로 평가한다. 마찬가지로 고립 기간을 공백이 아닌 도전의 시간으로 바라봐 주면 좋겠다"며 의견을 전했다.


고립을 겪은 서자 씨는 "은둔 당사자들은 우리가 모르는 곳에 숨어있기에 당사자를 발굴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며 "예산을 책정하는 지자체나 중앙 부처에서 당사자가 발굴되도록 상호작용하며 도와줘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이들의 재고립을 방지하기 위해 관련 지원사업의 기간을 늘리는 것 역시 필요하다. 정인희 씨는 "긴 호흡의 지원이 필요한 당사자가 천천히 회복하다가 사업이 끝나면 방황하면서 다시 방으로 들어가 버리는 경우가 많다"며 "지원사업 기간을 늘려 단계적인 지원 환경이 조성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한편, 김 센터장은 고립 청년 당사자의 의지를 언급했다. "신청해 놓고 용기를 내기 어려워 포기하는 이들이 20-30% 정도 된다"며 "타의에 의해 신청했더라도 꾸준히 참여하는 것은 타의만으로 되지 않는다"며 의지의 중요성을 전했다.


끝으로 최선희 작가는 "지금 은둔하고 있지 않더라도 누구든 은둔할 수 있다"라며 "소수의 문제가 아닌 우리가 함께 관심을 가지고 해결해야 할 우리의 문제라고 생각했으면 한다"며 고립은 누구나 겪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유진 기자 
 2010342@dong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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