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연구소│법에 대한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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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아대학교 다우미디어센터
  • 승인 2023.12.04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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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에는 사회 구성원들 뜻이 담겨 있게 마련이다. 공동체의 가치가 잘 담긴 법은 좋은 법이다. 우리는 좋은 법을 갖길 바라고 법이 잘 지켜지길 바란다. 내가 속한 사회 구성원들이 공통의 규범을 존중하길 바라고, 이를 통해 연대를 확인하기도 한다. 법은 한 사회가 공통의 가치관을 공유하는 유용한 방법이다. 잘만 사용하면 아주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는 데 무척 유용하다. 다른 방법, 수단처럼 법도 그 자체가 훌륭하면 쓰임이 좋아진다. 그러나 수단은 수단일 뿐, 목적과 혼동되면 곤란하다. 


법 자체를 목적으로 혼동하면 법이 궁극의 선이라고 착각하게 된다. 법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게 되는 것이다. 법이 지켜지기만 하면 좋은 세상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면 법을 너무 믿는 것이다. 사람들이 법을 지키기만 하면 사회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믿거나 여러 사회 문제를 법만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법의 기능을 과대평가하는 것이다. 법은 도구일 뿐, 믿음의 대상이 아니다. 톱으로 못을 박을 수 없고, 망치로 나무를 썰 수 없는 것처럼 법만으로 좋은 삶, 좋은 사회를 약속할 수 없다. 법의 목적이 그런 것이 아니다. 


법은 종류별로 목적이 다양하다. 어기면 범죄로 처벌되는 규범이 있는가 하면, 어떤 법은 어겨도 단순히 사회에 불편함을 주는 데 그친다. 형법이 전자에, 행정법규가 대체로 후자에 해당한다. 두 법은 목적이 다르고 내용과 작동 방식도 다르다. 어떤 영역에서는 자유를 넓히기 위해 법이 촘촘하게 만들어져야 한다. 다른 영역에서는 법이 많아질수록 자유가 줄어든다. 공권력을 규율하는 공법이 전자에, 시민 삶에 관한 사법이 대체로 후자에 해당한다. 그런데 법은 어떤 경우에도 개인이나 사회에게 이상적 가치를 강제하지 않는다. 법의 과정이 '합의'에 기초하기 때문이다. 


법은 합의이기 때문에 공동체 의사(意思)의 한 부분일 수밖에 없다. 오늘날 법은 구성원들 모두의 의사를 표방한다. 현실에서는 합의에 이르는 일부의 의사만이 법으로 표현된다. 합의는 다양성을 전제한다. 구성원과 생각이 다양하므로 법은 모두의 뜻을 있는 그대로 포착한 것이 아니라 합의의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다. 여러 의안들 중에 가장 우수한 의안이 채택되는 것이 아니다. 더 나은 대안을 만드는 과정을 거친다. 승패의 과정이 아니라 조율과 생산의 과정이다. 이렇게 합의에 이른 일부의 의사가 법이다. 적어도 이것만은 지키자고 합의한 것이 법이다. 그래서 법은 규범일 뿐 목표가 될 수 없다. 


설령 한 사회가 어떤 이상적 목표에 합의하더라도 그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법은 현실에 적용되는 과정을 통해 본래 의도와 효과를 나타낼 수 있기 때문이다. 법은 해석과 적용의 과정을 거쳐 힘을 발휘한다. 행정기관, 사법기관이 법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효과가 달라지는 것이다. 법을 잘 만드는 것이 입법권의 책임이라면 만들어진 법을 잘 해석, 적용하는 것이 행정권과 사법권의 책임이다. 각 국가 기관이 얼마나 제 기능을 하느냐에 따라 법의 효과가 달라지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법의 효능, 쓰임은 제한적이다. 만약 법의 본래 용도보다 더 많은 것을 법으로 이루려 한다면 여러 문제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톱으로 못질을 한다면? 우선 못을 박지 못할 것이고, 손을 다치거나 톱이 망가지거나 등등. 법에게 너무 많은 것을 의존하는 사회에서 가장 우려해야 할 것은 역설적이게도 법에 대한 신뢰 자체이다. 톱이 쓸모없다고 결론 내리면 안 된다. 본래 용도대로 쓰지 않은 잘못이다. 법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는 실패할 것이다. 잘못된 믿음이다. 그렇다고 법 자체를 불신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법은 용도대로 쓰면 아주 유용하다. 한 사회가 중요한 삶의 방식을 결정할 때 법을 쓴다. 공동체는 공통의 규범을 지키면서 연대를 확인할 수 있다. 


현대 민주사회는 초월적 권위에 의지하지 않는다. 사회가 어떤 초월적 권위에 의지하지 않는다면, 구성원들의 첨예한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데 효과적인, 어쩌면 유일한 방법이 법이다. 법은 존중돼야 한다. 법이 지켜지지 않으면 나쁜 사회가 된다. 사회의 중요한 도구가 작동하지 않는데 그 사회가 좋을 리 없다. 사회의 정의, 질서가 훼손되지 않도록 법은 존중돼야 한다. 그러나 법이 존중되기 위해서라도 법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으면 안 된다. 법을 지킴 또는 지키게 함으로써 모든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처럼 과장하지 말아야 한다. 사람들이 법을 과신하게 만들면 그만큼 실망하게 만드는 셈이다. 법으로서는 억울하지 않을 수 없다. 법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다. 

 

전주열 교수
경찰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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