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부즈맨 칼럼│꺾인 생명에도 개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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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아대학교 다우미디어센터
  • 승인 2024.03.04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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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마저 잠든 새벽이었다. 유독 그날따라 깊은 꿈에 빠졌다. 그때 별안간 굉음이 들렸다. 차마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라기엔 괴이했고, 잔인했으며, 어쩌면 꿈이라 믿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원인 모를 말이 사방으로 내리꽂혔다. 잠결에 아직 돌아오지 않은 이성이 말을 건넸다. 신고하자. 그때 쾅 하는 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찢어질 듯한 소음 뒤로 아직 덜 여문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분명 어린아이의 목소리였다. 베란다에만 환한 불이 켜진 채로 사람이 난간에 매달려있었다. 필자는 그날 꿈이 기억나질 않는다. 곧바로 전화했는지, 아니면 베란다 난간에 겨우 몸을 지탱하고 악을 쓰던 아이를 둘러업었는지, 순간 머릿속이 새하얗게 아득해져 가만히 있었는지. 눈을 한번 깜빡였을 때는 경찰이 부모를 떼어내는 중이었고, 멀리서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정신 차려 보니 모두 떠난 아파트 안이었다. 그때 베란다에 걸린 티셔츠가 비명을 지르는 것만 같아 뒷걸음질 쳤다. 잔뜩 구겨진 모습이 아이처럼 보여서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안 됐다. 폭풍 뒤에 고요가 오듯,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기억마저 종적을 감췄다.

 

그러나 꿈속의 일은 결코 허상이 아니었다. 그날 아침, 한 가족이 바다에 빠진 채 발견됐다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종적을 감췄던 기억이 스멀스멀 깨어났다. 소리 소문도 없이 죽을 뻔한 아이의 상기된 얼굴이 생경했다. 결국 그들이 벌인 동반 자살 속에 아동 인권은 없었으며, 자식의 동행 또한 미궁에 빠졌다. 동반 자살이라는 이름하에 벌어진 자녀 살해였다.

 

여전히 거대한 범죄인 동반 자살은 각종 핑계로 벌어진다. 어느 집에서, 외딴섬에서, 심지어는 놀이공원까지. 모든 곳이 죽음에 파묻혀있다. 꺼내지 못한 생은 연꽃처럼 부유하다 소멸하고, 사람들의 기억에서도 지워져 갈 거란 사실이 사무쳤다. 부모의 압력으로 꽃이 피기도 전에 시든 청춘이 보인 건 그때였다.

 

그곳에는 술만 먹으면 미술 얘기를 꺼내던 친구가 있었다. 아버지의 반대로 어쩔 수 없이 공대에 온 게 후회된다는 말만 뇌까리던 녀석이었다. 아침마다 숙취에 절여지면서도 애타는 속을 알코올로 달래지 않으면 죽는 사람처럼 굴었다. 술과 함께 합석하는 후회를 어찌할 바도 없이 숨기던 사람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선배, 억지로 교대에 끌려간 동기. 본인의 인생은 뒷전인 채로, 부모님이 원한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꾸역꾸역 살던 사람들.

 

자식은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거늘, 왜 하나의 인격체로 대하지 않는가. 대체 부모의 그릇된 선택으로 죽임당한 아이들의 설움을 누가 풀어줄 수 있는가. 생명을 준 부모가 도리어 생명을 앗아간 판국을 우리는 무어라 칭하는가. 여전히 부모의 삶을 대신 살아가는 청춘에겐 어떤 말을 해줘야 하나. 필자는 여기를 공백으로 둔다. 훌훌 털어내고 자신만의 인생을 살아낸 당신이 채워줬으면 하는 마음에서, 마침표가 아닌 쉼표를 찍고 기다리겠다.

 

박선주 독자위원(철학생명의료윤리학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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