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이가 들려주는 역사 로맨스] - 사랑이란…
[엽이가 들려주는 역사 로맨스] - 사랑이란…
  • 서성희
  • 승인 2012.04.04 11: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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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태양인 훤은 연우를 보며 애끓는 목소리로 말했다. "잊어 달라 하였느냐. 잊어주길 바라느냐. 미안하구나. 잊으려 하였으나 너를 잊지 못하였다." 훤의 진심을 느낀 연우는 세자빈이 되기로 마음먹는다. 하지만 탐관오리들의 농간으로 연우의 가문은 몰락하고 연우는 기억까지 잃는다. 천한 무녀로 살던 연우는 자신을 잊지 못하는 훤의 절절한 그리움 때문인지 기억을 되찾고 제자리로 돌아온다. "신첩, 전하의 여인이자 이 나라의 국모인 허연우라 하옵니다." 이룰 수 없을 것만 같던 사랑은 결국 결실을 맺는다.

누구나 한 번쯤은 드라마 <해를 품은 달> 같은 애틋하고 절절한 사랑을 꿈꾼다. 궁(宮)에서 벌어지는 고결하고 아름다운 사랑, 누군가의 방해 때문에 더 절절해질 수밖에 없는 금지된 사랑은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날 따르면 더없는 고생길이 될 것이오." "저승길이어도 좋습니다." 지옥을 가더라도 함께만 한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는 드라마 <공주의 남자> 속 대사는 '아! 나도 저런 사랑을 해보고 싶다'는 환상을 가지게 만든다. 하지만 드라마가 끝나면 우리는 아마도 "현실은 시궁창"이란 말을 연발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드라마 속 주인공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마 우리는 <해를 품은 달>이나 <공주의 남자>가 보여주는 사랑보단 이런 사랑이야기에 더 공감할지도 모른다. "난간을 스치는 봄바람은/이슬을 맺는데/구름을 보면 고운 옷이 보이고/꽃을 보면 아름다운 얼굴이 된다/만약 천등산 꼭대기서 보지 못하면/달 밝은 밤 평동으로 만나러 간다."

조선조 중엽 젊은 선비 박달은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향하다 평동을 지나는 길에 금봉을 만난다. 박달은 금봉의 청초하고 빼어난 자태에 사랑에 빠지고 만다. 머릿속이 금봉으로 가득 차 있던 박달은 공부는 뒷전으로 미뤘고 과거에서 '똑' 떨어졌다. 박달은 금봉을 볼 낯이 없어 평동으로 내려가지 못하고 허송세월만 보낸다. 박달을 그리던 금봉은 상사병으로 앓아누웠고, 결국 박달을 보지 못한 채 죽고 말았다. 금봉의 소식을 듣고 달려온 박달은 땅을 치며 목 놓아 울었다. 한참을 울던 박달의 눈앞에 고갯길 저편에서 금봉이 너울너울 춤을 추며 달려가는 모습이 아른거렸다. 박달은 벌떡 일어나 정신없이 금봉을 향해 달려갔다. 간신히 금봉을 따라잡은 박달이 기쁨에 겨워 금봉을 꽉 껴안았다. 하지만 금봉을 껴안은 곳은 천국이 아니라 천길 낭떠러지였다. "박달재 하늘고개 울고 넘는 눈물고개/돌부리 걷어차며 돌아서는 이별고개/도라지꽃이 피는 고개마다 구비마다 금봉아 불러보나 산울림만 외롭구나." '울고 넘는 박달재'란 노래는 박달과 금봉의 사랑을 더 구슬프게 한다.

이와 비슷한 설화가 또 있다. 옛날 이씨 성을 가진 군수가 있었는데, 그에게는 딸이 셋 있었다. 그중 둘째 딸은 시집 간 지 얼마 안 되어 남편과 사별하고, 친정에 돌아와 수절하고 있었다. 그 때 군수의 집에 돌쇠라는 우직한 하인이 있었는데, 돌쇠는 둘째 딸이 친정에 온 순간부터 그녀를 연모했다. 둘째 딸도 우직한 친절함 때문인지 돌쇠에게 사랑을 느꼈다. 둘의 사랑은 깊어졌지만 서로 신분이 달라 함부로 표현할 수 없었다. 손목 한 번 잡지 못한 채 둘은 속앓이만 거듭했다. 군수의 딸은 이를 버티지 못하고 상사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돌쇠는 사랑하는 이를 잃은 충격으로 미쳐버렸다. 슬픔을 견디지 못한 돌쇠는 용다리 옆 고목에 목을 매어 사랑하는 이의 뒤를 따랐다.

"행복하게 살았답니다"고 말하는 개그콘서트 쌍칼아저씨의 말처럼 우리는 '사랑'이 언제나 행복하길 바란다. 하지만 R. 반필드가 "사랑이란 광증, 불꽃, 천국, 지옥, 쾌락, 고통, 후회가 함께 사는 곳이다"고 말했듯이, 사랑은 궁중로맨스처럼 언제나 아름답고 고결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사랑은 굉장히 난해하고 까다로운 것이다. 박달재, 용다리 설화 속 사랑이야기가 죽음으로 끝맺은 것은 아마도 사랑의 불가사의함을 선조들이 후손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김무엽 기자
hakbomyk@donga.ac.kr

동아대학보 제1094호 2012년 4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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