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년생? 12학번 새내기입니다!"
'소년은 늙기 쉬우나 학문을 이루기는 어렵다(少年易老 學難成).' 주자의 『권학문』에 나오는 시의 첫 구절이다. 여기 노년이 되어 비로소 학문을 시작한 사람이 있다. 바로 우리 대학교 김인권(국어국문학 1) 학생이다.
고교 졸업 후 김인권 학생은 공무원의 길을 택했다. 하지만 몇 년간의 공무원 생활을 뒤로한 채 그는 사업에 뛰어 들었다. 사업은 매번 실패를 면치 못했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나를 믿어주고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있는데 좌절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고 그는 당당히 말했다. 불안했던 시절은 그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다.
2010년 봄, 김인권 씨는 또 한 번의 시련을 만났다. 위암 선고를 받은 것이다. 그는 힘겨웠지만 아직 이루지 못한 꿈을 생각하며 끝내 암을 이겨냈다. 그리고 "더 늦기 전에 공부를 해야 겠다"고 결심했다.
학문에 대한 열정으로
어릴 때부터 문학에 남다른 관심을 가졌던 김인권 씨는 결국 우리 대학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했다. "산수에는 영 소질이 없었지만 책 읽는 것만은 정말 좋았다"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혼자서 책을 읽으며 문학의 길을 걷던 그는 드디어 '체계적인 학문'을 배우게 됐다.
주변 사람들은 늦깎이 대학생이 된 그에게 축하를 아끼지 않았다. "특히 아내가 가장 좋아하죠. 담배 피고 술 마실 시간에 공부를 하니까요." 공부에 빠진 그는 쉴 틈이 없다. "과제가 어찌나 많은지 하루 종일 씨름하고 있다"고 투정하면서도 행복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현재 화재보험 대리점을 운영하는 그는 근무시간을 자유자재로 조절 할 수 있다. "학업에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물론 월 매출이 예전보다 줄기는 했지만요."
지난 학기 성적에 대해 조심스레 묻자 표정이 금세 어두워졌다. "수업 시간에는 재미있고 다 이해가 되는데 시험 기간만 되면 기억이 안 나더라고요." 영어가 제일 어렵다는 그는 외우는 것이 가장 힘들다고 했다. "다른 친구들이 공부하는 시간의 2배 이상 걸려요."
위풍당당 새내기
뒤늦게 시작한 공부도 힘든데 아들보다 어린 학생들과 생활하는 것이 불편하지는 않았을까. "자연스럽게 내가 먼저 다가갔죠. 나중에는 학생들이 안마도 해주고 초콜릿도 나눠줬어요. 이제는 농담도 하는 사이가 됐죠. 한 학기 동안 젊어진 느낌이에요"라며 그는 자랑스레 말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술자리가 있으면 끝나갈 쯤 불러 달라 했다고 한다. "젊은 친구들끼리 신나게 놀아야죠. 그리고 나는 계산하러 가는 거고요." 그러나 아직 불러준 친구가 한 명도 없다며 아쉬워했다. "나이는 많지만 친구들이 자신을 예사스럽게 봐줬으면 좋겠다"고 그는 말했다.
무난히 한 학기를 끝마친 김인권 학생은 "건강만 따라 준다면 대학원에도 진학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낙제 안하고 무사히 졸업하는 것이 목표라고 덧붙였다. 정신없이 바빴지만 그는 대학 생활이 보람찼다고 말한다. 지난 4월에 자신의 이름을 내건 시집을 내면서 그의 직업은 하나 더 늘었다. 직장인, 학생, 그리고 시인까지. 새내기 김인권 학생은 더 큰 꿈을 꾼다. "죽고 나서 사람들이 나를 기억할 만한 작품을 남기는 것이 꿈이에요. 그러니까 더 열심히 살아야겠죠?"
최정아, 박근우 기자
동아대학보 제1097호 2012년 9월 3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