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깨어 있는 누에가 되기를
[기자수첩]깨어 있는 누에가 되기를
  • 김승언
  • 승인 2011.11.30 06: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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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질머리, 삶은 어질머리를 가만히 앉아서 풀어가는 가내수공업 센터 같은 것이 아닌 것도 사실이긴 하였다. 풀어간다는 것도 살면서 풀어가는 것이고, 산다는 일은 어질머리를 보태는 일이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콩쥐의 일감. 어느 사람이 이 어질머리에서 풀려난단 말인가. 사람들은 그래서 사노라면 어느덧 누에처럼 그 어질머리 속에 들어앉아 버린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구보의 경우에는 그럴 수 없었다. 그는 어질머리라는 누에집을 풀어서 그것이 대체 어떤 까닭으로 그렇게 얽혔는가를 알아보아야 했다. 그것이 소설이라는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으므로, 그는 자기 집을 헐고 자기 껍질을 벗겨서 따져보는 그러한 누에였다.

소설 『구보씨의 일일』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이다. 기자가 예전에 '글쓰는 사람은 그렇다'고, '그래야 한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동감했던 부분이다. 그런데, 어느날 문득 생각이 들었다. 아니다. 어디 소설가만 그러한가? 기자도 마찬가지다. 소설가나 기자만 그러한가? 또 아니다.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자신의 어질머리를 풀어헤쳐 보려고 애쓴다. 어질머리 속에 들어앉아 있고만 싶어 하는 누에는 없다. 정도의 차이일 것이다. 개인이 스스로의 삶을 풀어 보는 것. 껍질을 벗겨서 따져 보는 것.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개인의 삶이라는 껍질에 있어서도, 혹은 자신을 감싸고 있는 사회라는 껍질에 있어서도. 자신만 특별한 누에, 생각 있는 누에라는 착각을 버려야 한다.

20대가 정치를 너무 감정에만 치우쳐 판단 한다고, 진지하지 않다고 걱정하는 이들이 많다. 무엇이 그리도 걱정스러운가. 참정권을 가진 20대의 정치참여를 어찌 걱정하는가. 오늘날 20대는 그들의 생각만큼 들어앉아 있지 않다. 풀어 볼 줄 안다. SNS나 신문기사 따라 갈팡질팡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무서운 것은 오히려 정치에 대한 젊은 세대의 무관심이다. SNS를 이용한 여론몰이? 트위터리안의 힘? 아니다. 20대에 대한 기성 정치권의 무관심과 정치에 대한 20대의 관심이 지난달 26일 전국적인 관심이 몰렸던 서울시장 재선의 결과로 나타났다.

서울시장 선거기간 동안 한 후배와 나눴던 대화가 생각났다. "누나, 트위터 같은 거 하지 마요. 선동 당해요." 또다시 누에 몇 마리의 대화였다.


 여다정 기자
 
hakbodj@donga.ac.kr
동아대학보 제1091호(2011.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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