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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어주는 기자] 대한민국 사회를 지배하는 감정시스템, 모멸감김찬호, 『모멸감』
김무엽 특임기자  |  hakbomyk@dong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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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5.12  14:5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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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란 수레바퀴를 굴리기 위해서는 많은 힘이 필요하다. 가족 간의 유대, 연인 간의 사랑, 타인의 인정 등이 대표적인 동력원이다. 하지만 여러 학자들은 인생을 움직이는 가장 큰 힘은 바로 '타인의 인정'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인생은 인정투쟁의 역사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인정의 욕구는 인생에서 큰 부분을 차지한다.

   
▲ 사회학자인 김찬호 성공회대 교수는 한국 사회에서 변질된 인정 욕구의 모습을 포착했다. 현재 대한민국 사회가 타인을 모욕하고 경멸하며 스스로 자신을 인정받고자 하는 사회라는 것이다.

인정의 욕구는 보통 자아실현과 같은 긍정적인 것으로 표출된다. 자신이 잘하는 것을 하면서 타인에게 인정을 받고, 그것이 자아실현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자아실현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부재한 상황이라면 인정의 욕구는 부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간다. 스스로를 높이는 대신, 타인을 모욕하거나 경멸하면서 자신이 타인보다 더 낫다고 자위한다. 타인의 인정을 바라는 욕구는 도리어 타인을 깎아내리는 욕구로 변질된다.

사회학자인 김찬호 성공회대 교수는 한국 사회에서 변질된 인정 욕구의 모습을 포착했다. 현재 대한민국 사회가 타인을 모욕하고 경멸하며 스스로 자신을 인정받고자 하는 사회라는 것이다. 김찬호 교수는 이 같은 대한민국의 모습을 '모멸'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분석해낸다. 이 연구의 결과물이 『모멸감』(문학과지성사, 2014)이란 책으로 나왔다.

대한민국 사회와 모멸의 구조

저자는 먼저 모멸감이 정확히 어떤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지 분석한다. 저자의 분석에 의하면 모멸은 수치심을 일으키는 최악의 방아쇠다. 수치심은 스스로의 부족함을 반성하고 자신을 한 단계 성장시킬 수 있는 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체면을 완전히 구기고 존재를 송두리째 부정하면서 자존감을 뭉개버리는 파괴적인"(55쪽) 이면을 가지고 있다. 이 파괴적인 수치심을 일으키는 방아쇠가 모멸이라는 것이다.

모멸감을 정의하고 그 의미를 분석하고 난 이후, 저자는 대한민국 사회와 모멸의 구조에 대해 세밀하게 관찰한다. 먼저 한국인이 사용하는 언어를 살핀다. 저자는 긍정적인 단어와 부정적인 단어를 나열하면서, 한국어에 부정적인 상황을 표현하는 단어가 훨씬 더 많고 다채롭다는 것을 포착한다. 저자는 이런 한국어의 특징이 "한국인의 삶은 부정적인 감정에 많이 노출되어 있고, 거기에는 불합리하거나 불공정한 사회적 관행들이 맞물려"(111쪽) 있기 때문에 나타난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어 저자는 귀천에 대한 강박과 신분의식의 지속을 모멸의 구조로 들고 있다. 어찌 보면 둘은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귀천을 나누는 것이 신분의식 속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대한민국을 "여전히 전통적인 신분 관념이 강하게 지배하는 사회다. 다만 그 틀이 전근대적인 신분 질서가 아닐 뿐이다. 그 대신 학력, 빈부, 외모, 지위 등이 강력한 기준으로 자리 잡았다. 그런 차이들을 중심으로 귀함과 천함을 구분하고 자기와 타인을 위아래로 자리매김한다"(126쪽)고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집단주의의 지속, 인종주의와 콤플렉스가 대한민국 사회를 모멸의 구조로 몰아가고 있다고 판단한다. 집단주의는 스스로의 성취보다 남의 이목에 신경을 곤두세우도록 만든다. 그렇게 되면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는 일에도 모멸감을 느끼게 된다. 저자는 "한 가지 사회적인 징후로, 언제부터인가 '굴욕'이라는 표현을 남용하는 것"(145쪽)을 예로 든다. 인종주의와 콤플렉스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에 속한 이들은 백인들에게는 꼼짝 못하면서도, 흑인이나 동남아계 사람들에게는 멸시를 보낸다. 이 모든 것이 모멸의 일부분이다.

   
▲ 자아실현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부재한 상황이라면 인정의 욕구는 부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간다. 스스로를 높이는 대신, 타인을 모욕하거나 경멸하면서 자신이 타인보다 더 낫다고 자위한다. 타인의 인정을 바라는 욕구는 도리어 타인을 깎아내리는 욕구로 변질된다. <일러스트레이션=이영주 기자>

굴욕에서 존엄으로

모멸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지만 저자는 이를 비하, 차별, 조롱, 무시, 침해, 동정, 오해 등 7가지로 분류한다. 일곱 가지의 개념으로 분리하긴 했지만 모멸은 이 개념들의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현상이다. 요컨대 모멸은 보기만 해도 부정적인 개념들의 집합이며, 사회를 좀먹고 인간관계를 와해시키는 파괴적인 행위인 것이다.

저자는 대한민국 사회와 모멸의 구조에 대한 탐색을 마치면서 타인을 아무렇지 않게 모욕하는 풍토는 사회적으로 형성된다고 정리한다. 그리고 이 사회적 풍토를 만든 모멸감에 취약한 심성에 대해 저마다 일정 부분 책임져야 한다고 역설한다. 저자는 모멸의 사회를 벗어날 대안으로 '존엄의 사회'를 제안한다. 존엄의 사회란 개인과 사회 전체가 모멸감에 저항하고, 사회에 속한 개인 모두를 존엄한 존재로 격상시키는 사회다.

인정을 향한 투쟁은 결국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벌이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행복을 우월감이라고 착각하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타인을 모멸하는 행위는 하지 않을 것이다. 모멸의 사회는 자신이 타인보다 우월하다는 것에서 행복이 나온다고 믿는 사람들이 만드는 사회다. 하지만 행복은 우월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타인에게서 얻을 수 있는 행복이란 마음을 나누고 함께 배우며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다. 이것이 저자가 『모멸감』을 통해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대한민국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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