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공감(共感)이 부재한 자리
[기고] 공감(共感)이 부재한 자리
  • 학보편집국
  • 승인 2015.05.12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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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형 교수 교육대학원 독서교육전공

몇 년 전, 한 중등학교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당시 우리 지역에서 이슈가 되었던, 한 여성 노동자가 수백일 동안 모 중공업의 높은 크레인에서 홀로 농성을 하고 있는 일을 우연히 수업시간에 잠시 언급했다고 한다. 그러자 학생들이 "그 사람은 똥은 어떻게 싼대요?" "아니, 소변은?" 하며 키득댔다고 한다.

물론 학생들의 입장에서 그것이 무척이나 궁금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칼날같은 바닷바람을 견디며 수백일을 버텨내고 있는 그 사람의 절박한 상황을 생각한다면, 그런 질문은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다. 그 선생님은, 요즘 아이들에게 '공감' 능력이 부족한 것 같다며 말을 맺었다.

공감. 사전에서 찾아보면 '남의 감정, 의견, 주장 따위에 대하여 자기도 그렇다고 느낌. 또는 그렇게 느끼는 기분'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화법 이론에서는 이른바 '공감적 듣기'를 다루고 있는데, 이는 '일단 상대방의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듣기'를 말한다. 자신의 생각이나 의견을 전달하고 설득하기 위해서라도, 먼저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사람은 결코 혼자서 살 수 있는 존재가 아니고 결국 공동체를 구성하는 많은 사람들과 참된 소통을 하며 살아가야만 하는 존재라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공감하는 능력은 어쩌면 사람이 사람다운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자질일 수도 있을 것이다.

요즘 강조되고 있는 '비판적 사고력' 역시 공감 능력이 전제되어야 한다. 흔히 비판적 사고는 합리적, 직선적, 공격적, 대립적인 그 무엇이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꼭 그렇지만은 않다. 북미의 교육철학자인 베일린(Bailin)과 폴(Paul) 역시 비판적 사고가 반드시 대립적이고 공격적으로 실행되는 것이 아닌, 협조적·협력적으로 실행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 타인의 감정에 민감해지고 자신과 다른 시선들을 이해할 것을 강조했다. 사실 그렇다. 타인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어떻게 적절한 비판적인 언행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런데 공감과 관련해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공감은 '상처 받은, 그리고 상처받기 쉬운 사람들'의 상처와 아픔을 '공유'하는 데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구조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의 상처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어야 한다.

얼마 전, 한 지역에서 학교 급식 종사원들이 온당한 대우를 요구하며 파업을 한 일이 있었다. 당시 여러 언론에서는 이를 두고 '급식대란'이라 칭하며, 학부모와 교직원들의 반응을 전했다. 어떤 학부모들은 밥을 굶겨가며 애들을 볼모로 파업을 하지 말라 했다. 어떤 교직원은 파업은 하더라도 밥은 해 놓고 하라 했다. 자신들이 마땅히 해야 할 노동을 포기하면서까지 외치고자 했던 급식 종사자들의 마음에 대해서는 그리 알려 하지 않았다.

그들의 모든 주장을 받아들이는 것은 물론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최소한 그들이 가슴으로 외치는 목소리만큼은 진지하게 경청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공감하며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큰 힘이 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공감의 시작이며 실천이 될 것이다.

명절이 되어 온 가족이 한 자리에 모일 때,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본 적이 있다. 누구는 연봉 얼마 주는 어디에 취직했다, 누구는 누구와 결혼했다, 누구는 집을 몇 평짜리로 옮겼다, 누구는 어느 대학에 들어갔다... 수많은 이야기들이 오가지만, 여기에서 필자가 발견한 재미있는 사실은, 그 대화 속에서 어떤 사람의 이야기에 맞장구를 쳐주고, 진정으로 공감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워낙 오랜만에 만나 서로 하고 싶은 말들이 많아서인지, 타인의 말에 그저 고개만 끄덕이고는, 다들 자신의 분절된 이야기만을 하기에 바쁘다.

공감이 부재한 자리. 거기에는 소통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따뜻한 마음과 감성을 지닌 사람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존재하는 것은 자신들의 언행, 자신들의 모습, 자신들의 입장에 절대적인 가치를 부여하고 정당화하는 힘과 욕망만이 있을 뿐이다.

2015년 5월. 아름다운 꽃들이 만개한 지금. 우리 모두의 마음 한 자락에, 어느새 잊혀져가고 있는 공감의 부활을 기다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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