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20대! 우리들의 그때 그 시절
응답하라 20대! 우리들의 그때 그 시절
  • 박현재 기자
  • 승인 2015.12.07 10: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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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6일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 첫 회가 전파를 탔다. '응답하라' 시리즈는 이전 작품부터 큰 인기를 끌었다. 이번 시리즈 역시 케이블 채널임에도 10%가 넘는 시청률을 보이고 있다.

<응답하라 1988>에는 시청자들의 추억을 자극하기 위해 여러 가지 소품들, 예를 들면 곤로, 다이얼 전화기, 당시 텔레비전 광고 등이 끊임없이 등장한다.

하지만 시대적 배경이 1988년인 만큼, 현재 대학생인 20대 초중반이 공감하기는 조금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렇다면 우리 세대가 익숙한 것들은 무엇일까. 그리고 어떻게 사라졌을까.

바깥에서 안으로
함께에서 혼자로

지금 대학생들의 어린 시절에도 게임은 있었지만, 오늘날처럼 대중적이진 않았다. 대신 방과 후나 주말이면 놀이터에서 뛰노는 게 제일이었다. 돈이나 특별한 도구가 없어도 여럿이 놀 수 있는 널찍한 공간만 있으면 됐다.

그때는 끊임없이 새로운 놀이를 만들어 놀았다. 그중에는 '얼음땡',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탈출', '땅따먹기' 등 전국구 놀이도 있었다. 얼음땡 놀이를 할 때면 '얼음' 상태인 친구를 '땡' 쳐주지 않고 골려댔던 추억이 떠오른다.

당시 놀이터는 친구들과의 암묵적인 약속장소였다. 지금처럼 휴대전화가 대중화되지 않은 터라 친구들에게 실시간으로 연락할 방법도 없었지만, 신기하게 놀이터에만 나가면 친구들이 있었다. 또 놀이터는 새로운 인연을 맺을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모르는 아이가 와도 금세 함께 어울려 놀았다.

우리 대학교 이승민(전자공학 4) 학생은 "언제 어디서 만나자는 약속 없이도 놀이터에 가면 항상 친구들이 있었다"며 "그때는 모르는 아이라도 놀이터에서 만나면 금방 친구가 됐다"고 말했다.

교실도 또 다른 놀이터였다. 서로 가져온 학종이를 쌓아두고 넘긴 만큼 가져가는 놀이를 아는가. 지금은 '왜 이런 놀이를 했지'란 생각이 들지만, 그때는 학종이를 따려 기를 썼다. 이외에도 딱지치기, 구슬치기, 공기(살구)놀이, 실뜨기 등 쉬는 시간만 되면 옹기종기 모여 여러 놀이를 했다.

▲ 다마고치와 비슷한 듯 다른 '디지몽' <사진출처=MBC>

90년대 후반이 되며 '신식' 놀이도구가 하나둘씩 교실에 나타났다. 특히 '다마고치'나 '디지몽'과 같은 사이버 애완동물 키우기가 교실을 휩쓸었다.

누가 애완동물을 잘 키웠는지 서로 비교하는 게 일종의 놀이였다. 애완동물이 이상하게 크기라도 하면 서슴없이 리셋버튼을 누르는 잔인함이 당연시되기도 했다.

또 선풍적인 인기몰이를 했던 만화와 연관된 놀이도구도 있었다. 한 제빵업체가 만화 속 캐릭터를 스티커로 만든 '띠부띠부씰'이 들어간 빵을 출시했는데, 만화 <포켓몬스터>(1997)의 유행으로 스티커 수집 열풍이 불었다.

서로 없는 스티커를 친구와 교환하기도 하고, 희귀한 스티커를 가진 친구를 부러워하기도 했다. 스티커만 갖고 빵을 버리는 학생도 많아 문제가 되기도 했다.

▲ 만화 <탑 블레이드>와 똑같은 팽이

또 만화 <탑 블레이드>(2001)가 흥행할 때는 팽이놀이가 인기를 끌었다. 만화와 똑같은 팽이로 대결하는데, 시작할 때 "고~슛!"이란 말을 꼭 외쳐야 했다.

만화 속 팽이에 깃든 성수를 빗대 자신의 팽이가 더 강하다고 다투기도 했다.

컴퓨터와 인터넷이 가정에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친구들과 밖에서 뛰노는 재미를 뛰어넘는 콘텐츠가 새로운 놀이로 등장했다. 바로 온라인 게임이다.

친구들과 부대끼며 놀았던 놀이터는 발길이 뜸해졌고 게임 속 세상이 새로운 놀이터로 자리 잡았다.

▲ 바람의 나라 게임 속 장면

특히 '바람의 나라'(1996)는 남녀를 가리지 않고 큰 인기를 끌었다. 누구나 한 번쯤은 푸줏간에서 '도토리 다 판다'고 쳐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게임 좀 한다는 친구는 어른들만 한다는 '리니지'(1988)를 하기도 했다.

'스타크래프트'(1998)가 한국에 상륙하면서, 게임이 학생들의 놀이로 자리 잡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학생들은 수업이 끝나면 PC방에 모여 서로 실력을 겨루거나, 편을 나눠 PC방 요금을 걸고 내기를 하기도 했다.

인기에 힘입어 임요환, 홍진호 등 프로게이머가 등장했고, 게임 전문채널도 생겼다.

온라인 아케이드 게임인 '크레이지 아케이드'(2001)나 '카트라이더'(2004)도 인기를 얻었는데, 조작이 비교적 쉬워 남학생의 전유물이었던 게임을 여학생들도 접하게 하는 데 일조했다. 특히 크레이지 아케이드는 컴퓨터 한 대로 두 명이 할 수 있어 매일 컴퓨터를 두고 싸우던 형제자매 간의 화해도구이기도 했다.

▲ 스타크래프트 최고의 라이벌 임요환(좌), 홍진호

전자기기 춘추전국시대
스마트폰이 통일하다

2000년대 초반 휴대전화는 문화의 중심이었다. 당시 유행했던 휴대전화는 화면을 손으로 여닫고, 누르면 또각또각 소리가 나는 버튼이 있는 폴더형 피처폰이었다.

휴대전화의 패드를 다 외워, 수업시간에 수업을 듣는 척하며 몰래 친구와 문자를 주고받기도 했다. 또 발신번호를 바꿔 문자를 보내거나, '*23#'을 누른 후 전화를 걸면 발신번호가 뜨지 않는 걸 이용해 장난전화를 하는 게 당시 유행이었다

그때도 지금처럼 매년 휴대전화가 출시됐고, 새로운 휴대전화를 사면 다음 날 학교 친구들에게 자랑할 걸 생각하며 잠 못 이루기도 했다. 특히 삼성에서 출시한 가로본능(2004) 휴대전화가 유명했다. 당시엔 휴대전화 화면을 가로세로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은 충격적인 일이었다.

▲ 가로본능 휴대폰 광고의 한 장면

한 친구가 휴대전화를 가로본능으로 바꿨다는 소식에 다른 반에서까지 그것을 구경하러 몰려오고, 곧 그 친구 주변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폴더형 피처폰의 인기는 슬라이드형 피처폰이 등장하면서 수그러들었다. 기능 면에선 폴더형과 큰 차이는 없었다. 하지만 그 당시 새로운 디자인이라는 것은 인기의 중요한 척도였다. 슬라이드형 피처폰의 대표격으로 LG의 초콜릿폰(2005), SKY의 붐붐폰(2006)과 레인폰(2007)을 들 수 있다.

이후 터치스크린을 도입한 휴대전화가 슬라이드형 피처폰을 대체하기 시작했다. 유명 아이돌을 모델로 앞세운 뉴초콜릿(2009)이나 듀퐁(2009), 연아의 햅틱(2009)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하지만 터치스크린형 피처폰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한국통신(KT)이 스마트폰인 아이폰3GS(2009)를 한국에 출시했기 때문이다. 당시 한국은 이후 '옴레기'라 불릴 옴니아2를 최신 휴대전화라 여기고 있을 때였다. 이후 휴대전화 시장은 스마트폰 체제로 재편됐다.

하지만 처음부터 스마트폰이 득세한 것은 아니다. 당시 청소년 피처폰 사용자들은 주로 정액요금제를 썼다. 정해진 요금을 다 쓰면 추가 요금을 내야만 했다. 그래서 요금을 다 쓰면 같은 통신사를 사용하는 친구들과 '알'이나 '별'을 주고받기도 했다. 스마트폰은 이런 요금제를 이용할 수 없었다.

이때문에 일찍 스마트폰을 산 친구들은 한동안 피처폰이 더 낫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김준철(경영정보학 3) 학생은 "다른 사람보다 스마트폰을 일찍 접했는데 처음에 피처폰을 쓰는 사람들과 연락하기가 불편했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스마트폰의 등장은 당시 유행했던 전자기기들의 퇴장이기도 했다. 어린 시절 노래를 듣기 위해서는 워크맨이나 CD플레이어를 이용해야 했다. 카세트테이프나 CD는 최대 20곡 정도 저장할 수 있었고, 자신이 원하는 노래를 듣기 위해서는 공CD에 굽거나, 따로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해야 했다. 이후 MP3라는 디지털 음원 기술이 발달하면서 손바닥보다 작은 MP3 플레이어가 속속 등장했다.

▲ 2000년대 후반 MP3 플레이어

아이리버(IRiver)에서 출시한 MP3 시리즈와 유명 아이돌이 광고한 '삼성 YEPP' 기종 역시 큰 인기를 끌었다. 수학여행을 갈 때 MP3를 가진 친구들의 옆자리는 언제나 최고의 명당이었다.

MP3에 노래를 넣기 위해 '소리바다'를 비롯한 수많은 음원 P2P 프로그램 역시 호황기를 맞았다. 하지만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해 언제 어디서든 원하는 노래를 곧바로 들을 수 있게 됐고, 이제 MP3 플레이어는 보기가 힘들다.

PMP라고 불린 휴대용 멀티미디어 기기나 전자사전도 스마트폰이 흡수한 전자기기들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코원이나 아이리버에서 출시한 PMP는 인터넷 강의를 듣고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예능과 같은 동영상을 보기 위해 많은 학생이 찾았다. 전자사전 역시 마찬가지다. 단어를 찾는 척하며 즐긴 전자사전 속 게임은 지루한 야간자율학습시간의 동반자였다.

하지만 현재는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에서 바로 영상과 단어를 찾아볼 수 있어 굳이 무거운 PMP나 전자사전을 들고 다닐 필요가 없어졌다. 2000년대 춘추전국시대처럼 다양한 전자기기들이 각축전을 벌였던 모습은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사라져 갔다.

그 시절은 한편의 추억으로

기술의 발전으로 기존의 문화는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새로운 문화가 생겨나고 있다. 우리 대학교 임다솔(경영학 4) 학생은 "기술 발전 덕택에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편하게 살고 있다"며 "하지만 가끔은 밖에서 뛰놀던 어린 시절이 그립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때는 당연하게 여겨졌던 것들이 지금 생각해보면 하나의 추억으로 자리 잡고 있다. 먼 훗날 돌이켜 본다면 지금 역시 한편의 추억으로 남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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