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에 우거진 대나무 숲
SNS에 우거진 대나무 숲
  • 주희라
  • 승인 2016.03.07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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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명으로 못하는 이야기, 우리가 들어줄게요

 

SNS에 우거진 대나무 숲
실명으로 못하는 이야기, 우리가 들어줄게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한 남자의 목소리가 대나무 숲에 울려 퍼진다. 임금님의 귀가 당나귀 귀라는 비밀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살던 남자가 죽을 때에 이르러 대나무 숲에서 비밀을 털어놓았다는 옛 설화는 어렸을 적 한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21세기, 현대에도 설화 속 대나무 숲처럼 사람들이 비밀과 고민을 털어놓는 숲이 있다. 바로 SNS 대나무 숲이다.

21세기 대나무숲

대나무 숲(대숲)은 트위터에서 첫 싹을 틔웠다. 2012년 9월, '출판사 X'라는 계정이 트위터에 등장했다. 익명의 출판사 직원이 이 계정을 통해 회사의 비리를 폭로했다. 하지만 얼마 후 이 계정은 '사장이 직원들을 소집했다'는 글을 끝으로 사라졌다. 이후 '출판사 X'의 영향을 받은 누군가가 최초의 대숲인 '출판사 옆 대나무 숲'을 생성했다. 많은 이용자가 생기면서 '출판사 옆 대나무 숲'은 동종업계에 있는 사람들끼리 불만이나 애환을 토로하며 공감하는 장으로 자리 잡았다.

'출판사 옆 대나무 숲'이 인기를 끌자 유사한 대숲 계정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디자인회사, 백수, 시월드 등 여러 대숲 트위터 계정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최근에는 많은 대숲 계정이 없어지거나 트윗을 올리지 않고 있다. 다양한 고민과 사연을 가진 사람들의 소통 창구였던 대숲은 점점 사라져가는 듯 보였다. 하지만 페이스북이라는 새로운 가상공간에서 대숲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2013년 12월, '서울대학교 대나무 숲'을 시작으로 페이스북에서 대숲이 다시 나타났다. 페이스북 대숲은 대학을 중심으로 우거지기 시작했다. 막막한 현실에 지친 대학생들이 익명의 힘을 빌려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기 시작하면서 대학교 대숲은 소통의 장으로 발전했다. 사랑이나 연애 고민, 집안 문제, 인간관계 등의 개인적인 고민뿐만 아니라 사회 이슈에 관한 자신의 생각까지 다양한 소재의 사연이 올라왔다.

 

대학가 중심으로 대나무 숲 퍼져나가

 2014년 4월, '동아대학교 대나무 숲'이 페이스북에 우거지기 시작했다. 우리 대학교 대숲은 현재 약 2,500명의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으며 300개 이상의 제보가 올라와있다. 하지만 타 대학의 울창한 대숲과 비교하면 황량하기 그지없다. SNS상에서 게시물에 '좋아요'나 댓글이 달린 수는 공감의 정도를 증명한다. 우리 대학 대숲 제보는 대부분 10개 이하의 '좋아요'를 받았다. 그나마 가장 인기 있었던 '땅콩회항 사건' 박창진 동문에 대한 제보는 105개의 '좋아요'를 받는 것에 그쳤다. 이처럼 우리 대학 대숲은 아직 학생들에게 관심과 공감을 이끌어내지는 못하고 있다.

 우리 대학 대숲이 학생들에게 주목받지 못하는 이유가 연애, 사랑 이야기 위주의 개인적인 제보만 게시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다. 실제로 2월 3일 우리 대학 대숲에는 "사랑 이야기가 지나치게 많이 올라오는 것 같다"며 "타 대학 대숲에 비해 너무 개인적인 이야기만 올라와 공감을 얻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는 제보가 게시됐다. 이에 대해 대숲을 이용하는 우리 대학 박소영(글로벌비즈니스학 2) 학생은 "연애와 사랑에 대한 제보가 많이 게시되는 것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대숲은 자신이 하고 싶었던 말을 털어놓는 공간이기 때문이다"고 전했다. 말할 수 없었던 고백이나 고민을 익명의 힘을 빌려 털어놓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대숲의 기능을 충분히 하고 있다는 것이다.

 연애나 사랑 제보가 지나치게 많이 올라오는 현상은 학생들의 관심과 참여로 대숲이 활성화되면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서울대 대숲의 운영 초기 게시물들은 우리 대학 대숲과 같이 '좋아요'나 댓글이 많지 않다. 그러나 학생들이 대숲을 알게 되면서 점점 활성화되었고, 현재는 '좋아요'가 50개를 넘는 게시물이 대부분이다. 도연희(경영학 4) 학생은 "대숲이 활성화되면 좋은 글이 많이 게시될 것 같다"며 "학생들이 제보에 대한 의견을 적극적으로 제시해 제보자가 글 쓰는 보람이 있도록 하는 것이 대숲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대숲은 학교 커뮤니티 기능을 넘어 사회적 이슈를 만들기도 한다. 지난해 10월, 서울대 대숲에 올라온 한 사연은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었다.

 사연 제보자는 편의점 앞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그 때 한 아저씨가 다가와 "학생, 서울대 다녀요?"라며 말을 걸어왔다. 아저씨는 서울대 진학을 목표로 하고 있던 딸을 잃고 한참을 방황했다. 그러다 서울대 인근에서 딸을 닮은 학생을 본 후 서울대를 지나는 버스의 운전기사가 됐다고 한다. 버스에 타고 내리는 서울대생을 보며 딸을 떠올렸고 매년 수천 명씩 입학하는 아들, 딸의 모습에 행복하다며 자신의 이야기를 마쳤다. 아저씨는 제보자에게 "힘든데 무작정 힘내는 것보다 힘들면 가끔 맥주 먹고 쉬어"라며 다정한 위로의 말을 건네며 사라졌다고 한다.

 이 사연은 현재까지 약 9만 개의 '좋아요'를 받으면서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었다. 특히 학업과 취업 스트레스가 많은 대학생과 취업준비생의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

     
   
 

 

다양한 주제, 철저한 익명성

페이스북에는 'OO대 대신 전해드립니다'나 'OO대 대신 고백해줄게' 등과 같은 익명 커뮤니티 공간이 많다. 익명의 힘을 빌려 고민을 털어놓고 싶다면 대숲이 아닌 다른 커뮤니티를 이용할 수도 있다. 왜 학생들은 굳이 대숲을 이용하는 것일까.

 대숲은 다양한 주제의 제보가 게시된다는 특징이 있다. 대숲을 자주 본다는 강민지(경영학 2) 학생은 "대숲은 명언이나 좋은 글도 제보할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며 "대숲이 다른 익명 커뮤니티에 비해 제보의 폭이 좀 더 넓은 것 같다"고 말했다.

 분실물을 찾거나 사랑 고백이 대부분인 다른 익명 커뮤니티와 달리 대숲은 명언글, 개인적인 고민 등 다양한 주제의 제보가 올라오기 때문에 학생들이 즐겨 찾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부산외국어대학교 대나무 숲' 관리자는 "대숲은 학교, 사랑, 인간관계, 시사이슈 등 다양한 주제의 제보를 다루기 때문에 학우들이 즐겨 찾는 것 같다"고 전했다.

 대숲의 또 다른 특징은 바로 개인정보가 철저히 보장된다는 점이다. 주로 재학생이 운영하는 대숲은 관리자도 제보자의 개인정보를 알 수 없다. 이는 메시지로 제보를 받아 관리자가 제보자의 이름을 알 수 있는 다른 익명 커뮤니티와 차별화되는 대숲만의 특징이다. 철저하게 보장되는 익명성으로 안심하고 제보를 할 수 있기 때문에 개인적인 고민을 털어놓는 공간으로 대숲을 선택하는 것이다. '부경대학교 대나무 숲' 관리자는 "다른 익명 커뮤니티와 달리 관리자도 제보자가 누군지 알 수 없다는 점이 대숲의 큰 강점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소통과 위로의 공간 될 수도"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비밀을 익명으로 자유롭게 털어놓을 수 있다는 점은 대숲의 큰 이점이다. 하지만 대숲의 익명성을 앞세워 '마녀사냥'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 이에 대해 우리 대학 최이숙(사회학) 교수는 "대숲이 비방이나 갈등의 공간이 될 가능성도 있다"며 "하지만 이용자들이 어떻게 대나무 숲을 가꿔가느냐에 따라 소통과 위로의 공간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지금 판단하기는 어려운 문제"라고 전했다.

 대숲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개인적인 경험을 토대로 한 제보는 유언비어를 생성할 수 있다. 정확히 확인되지 않은 정보가 게시되고 퍼져나가도 제보자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유언비어에 대한 처벌이 불가능하다. SNS의 특성상 게시된 제보가 단기간에 널리 퍼진다. 때문에 게시물을 삭제하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방법이 될 수 없다.

 각 대학의 대숲 관리자는 이러한 부작용을 막기 위해 제보를 필터링하는 과정을 거친다. 우리 대학 대숲의 경우 사생활 침해 게시물, 타 대학이나 타인을 비방하는 글, 지나친 욕설이 포함된 제보의 게시를 제한한다. 하지만 제보 선별 기준이 모호해 필터링이 어렵다. 또 대숲 페이지에 제보 선별 기준이 게시되어 있지만 이용자들이 읽지 않고 기준에 맞지 않는 제보를 하는 경우가 많다. 부산외대 대숲 관리자는 "제보 기준에 맞지 않는 제보가 너무 많아 선별하기가 어렵다"며 "대숲을 이용하기 전에 관리정책을 숙지해주셨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건강하게 우거진 대숲을 만들기 위해서는 제보자와 관리자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부경대 대숲 관리자는 "양질의 글이 게시될 수 있도록 제보 필터링을 강화할 예정"이라고 밝히며 동시에 제보자에게 "제보하기 전에 자신의 글을 한번 읽고, 자신이 읽어봐도 부끄럽지 않은 글을 제보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현대사회에는 다양한 사람이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의견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이 많지 않다. 때문에 이름, 나이, 학력 등의 제한 없이 익명으로 사연을 제보하고 의견을 나누는 대숲은 대학생들에게 가장 편하고 대중적인 소통 공간이다. 최이숙 교수는 "대숲이 건강한 소통 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제보에 대해서 깊게 생각하고 반응하는 이용자들의 성숙한 문화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글 = 주희라 기자>
<일러스트레이션 = 전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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