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과 개성으로 깨운 아날로그 감성
추억과 개성으로 깨운 아날로그 감성
  • 박도원
  • 승인 2017.11.13 13: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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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모님의 앨범 속 사진에서나 볼 수 있었던 통 넓은 청바지와 어깨에 패드가 잔뜩 들어간 재킷, 베레모 등 80~90년대를 풍미했던 패션 아이템을 최근 다시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게 됐다. 패션뿐만 아니라 다른 부분에서도 '복고 열풍'이 한창인데, 과거의 모습으로 돌아간다는 의미의 '복고'와 달리 2017년의 아날로그는 과거의 모습에 개성을 반영했다. 사람들은 자신의 취향과 개성을 드러내는 상징으로 다양한 방식의 아날로그를 택하고 있다.

 아날로그는 디지털이 출현하기 전 조금은 불편한 방식으로나마 삶에 다양한 변화를 가져다줬다. '치직'하는 잡음을 내며 플레이되는 레코드판, 찍고 3일 뒤에나 받아볼 수 있었던 약간은 빛바랜 필름사진, 잔 고장이 잦지만 한 대 때려주면 쉽게 고칠 수 있었던 아날로그 TV 등은 디지털 기기에 비해 느리고 불편하지만 사람들이 보다 가까이서 추억과 문화를 향유하는데 일조했다.

 현대는 빠른 속도와 풍요로움으로 기다림과 인내의 가치를 배제해버렸다. 불편함을 모르고 살아온 20대들은 이 속에서 오히려 풍요 속의 빈곤, 공허함을 느낄 때가 많다. 너무도 빠르게 스쳐 가는 하루, 모든 것이 디지털화돼버린 세상. 덕분에 아무리 노력해도 손에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런 현대인의 공허함을 메워줄 수 있는 것이 조금은 더디지만 인내의 열매는 달게 느껴지는 아날로그 정신이 아닐까.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사회 속에서 잠시 우뚝 멈춰 기다림의 시간을 갖게 하는 아날로그의 매력에 빠져보자.

흑백사진

 이제 디지털카메라와 스마트폰으로 촬영 직후 바로 사진을 확인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 됐다. 또 간단한 사진 후보정은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포토샵 프로그램이나 스마트폰 어플을 이용해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디지털 기기의 발달로 인해 동네 사진관 대부분은 폐업 위기에 처했다. 그나마 남아 있는 사진관도 증명사진이나 가족사진 촬영 등으로 연명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많은 사진관이 줄줄이 문을 닫고 있는 반면, 아날로그 감성의 영향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사진관이 있다. 바로 흑백사진관이다.

 드라마틱한 조명과 앵글의 도움으로 특별한 모습을 담고자 하는 것이 일반 사진관들의 추세라면 흑백사진관은 모든 것을 객관화시킨다는 특색이 있다. 특별한 장치의 도움 없이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로 대상을 담는 것이다. 후보정 작업도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인화된 사진을 본 사람들은 "와, 예쁘다"는 반응은 아니지만 가장 자신다운 모습을 만날 수 있다는 것에 기쁨을 얻는다. 흑백사진관을 여러 번 이용한 경험이 있는 우리 대학교 안현솔(교육학 2) 학생은 "흑백사진관에는 보정 작업이 없기 때문에 걱정을 많이 했다. 하지만 인화된 사진에서 친구와 내가 옷을 맞춰 입고 웃고 있는 모습이 매우 자연스럽고 따뜻해 보였다"고 말했다.

 사진관뿐만 아니라 즉석사진도 흑백이 유행하고 있다. '인생 네 컷'은 일반적인 즉석 스티커사진과 달리 흑백으로 인화되고, 얼굴 보정 기능도 없다. 스티커 사진의 상징인 화려한 스티커, 텍스트 삽입도 없다. 하지만 인생 네 컷은 아날로그 감성의 빈티지함을 무기로 10대와 20대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필름카메라

   
   
▲ 구닥 어플로 찍은 대저생태공원과 광안대교

 요즘 필름카메라는 그야말로 대세다. 지난달 11일을 기준으로 인스타그램에서 해시태그로 '필름'을 사용한 게시물의 수는 659,547개에 달한다. 스마트폰 앱스토어에서 'Gudak Cam'(이하 구닥)이 등장함과 동시에 증가한 게시물 수다. 구닥은 필름카메라의 특징을 그대로 담았다. 작은 뷰파인더와 한 필름 당 24장의 제한된 촬영 컷 수, 인화되는데 걸리는 3일의 시간 등이 그 특징에 해당한다. 빠르게 변화하는 트렌드 속에서 과거의 색을 추구하는 구닥은 20대 청년층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구닥 사용자인 신소정(글로벌비즈니스학 3) 학생은 "값싼 가격에 필름카메라와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게 신기해서 사게 됐다"며 "어떤 사진이 성공하고, 어떤 사진이 실패할지 알 수 없다는 불확실성이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 필름 카메라로 찍은 우리대학과 부산타워

 필름의 색감에 매력을 느낀 필름 어플 사용자들이 실제 필름카메라에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부산시 중구 남포동에 있는 중고 카메라 매장의 필름카메라 판매율은 작년에 비해 20% 이상 증가했다고 한다. 카메라 매장 직원은 필름카메라의 인기에 대해 "구닥 개발 이후에 생긴 현상"이라며 "사진을 통해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려는 젊은이들이 증가하고 있고, 시대의 흐름이 주된 원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시대가 바뀜에 따라 필름카메라의 존재감은 점점 잊히는 듯했다. 화질 좋은 디지털카메라, 최신형 스마트폰 등 디지털 기기에 익숙한 젊은 세대에게 필름카메라는 불편하고 제한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점이 오히려 필름카메라의 매력이 되면서 신선하게 다가오고 있다.

 아날로그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고, 느낄 수 있는 것은 단연 사진이다. SNS의 대중화와 함께 사람들은 사진을 통해 주체성을 표현한다. 역동적이고 개성을 중시하는 요즘의 젊은이들에게 흑백사진과 필름사진은 비교적 정적이고 차분하다. 디지털이 만들어낸 화려한 사진들 틈에서 이들은 분명한 차별성을 지닌다. 흑백사진과 필름사진, 그 자체가 느림의 미학과 본연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그 사람의 개성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아날로그 감성 카페

   
   
▲ 카페 '아날로그 감귤밭'

 최근 생겨나는 카페들은 SNS 홍보를 통해 입소문을 타고 유명해지는 경우가 많다. 신생 카페가 수많은 기존의 카페들 사이에서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힙한 컨셉'을 잡는 것이다. '힙하다'는 새로운 것을 지향하고 개성이 강한 것을 의미하는 신조어다. 이 추세에 따라 아날로그 트렌드를 반영한 카페 또한 대거 생겨났다. 이 카페들은 버려진 가구를 재사용해 만든 테이블이나 70~80년대에 출간되던 잡지 또는 타자기 등으로 인테리어를 꾸며 아날로그 느낌을 물씬 풍긴다.

 제주도 제주시에 위치한 카페 '아날로그 감귤밭'은 나무를 엮어 만든 대문을 통과하면 한쪽에 감귤밭이 위치해있고 나무판자를 재사용해 만든 테이블, 움막집 등 인공적이지 않은 자연적 느낌의 인테리어로 아날로그의 특색을 살렸다. 메뉴의 음료 또한 △풋귤티 △제주금귤에이드 △생 한라봉 등 제주도의 특산물을 사용해 자연 그대로의 아날로그적 느낌을 담고 있다. 아날로그 감성 특유의 따뜻하고 차분한 분위기 덕분에 마당에서 웨딩 촬영을 하는 방문객들도 늘고 있다고 한다.

   
   
▲ 카페 '무궁화'

 부산에서도 아날로그 감성을 느낄 수 있는 카페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부산진구 전포동에 위치한 카페 '무궁화'는 추억의 음식으로 아날로그 감성을 되살리고 있다. '무궁화'의 메뉴에는 △미숫가루 △쑥라떼 △쌍화차 △앙버터 빵 △무화과 바질 토스트 등이 있다. 요즘엔 즐겨 먹지 않는 기성세대의 주 음료나 음식이 옛날 양은 쟁반 위에 올려져 나온다. 옛날 글씨체로 쓰여 있는 컵의 문구가 한층 복고의 느낌을 더해준다. 벽돌 벽과 빈티지한 느낌의 녹색 의자로 입구부터 남다른 인테리어를 자랑하며 번화가 한가운데서 행인들의 이목을 끈다. 아날로그 전화기와 70년대부터 80년대 포스터까지 곳곳에 배치된 센스있는 소품들은 자연스럽게 사진을 찍게 만든다. '무궁화'는 청년에겐 새롭고 신선한 감성을 선사하고, 중년층에겐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곳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부산의 금정구 장전동 또한 아날로그 느낌의 신생 카페들로 젊은이들의 발걸음을 끌어당기고 있다. 그중 하나인 카페 '미드센츄리'는 50년대 또는 옛날 물건을 다룬다는 뜻으로 내부의 가구 하나하나가 엔틱한 분위기를 뽐낸다. 이 카페의 주요 특징은 LP 음반을 들을 수 있는 레코드판이 있다는 것이다. 유재하를 비롯해 70년대 영국의 록 그룹 퀸(Queen)의 앨범까지 오래되고 희소가치가 있는 음반들을 만나볼 수 있다. 현대적인 인테리어 속 고풍스러운 카펫이나 20세기 서양에서나 볼 수 있었을 법한 소품들이 어우러져 조화를 이룬다. 카페 한 벽면에는 복고풍의 옷들이 자리 잡고 있는데 돌아온 유행으로 복고 패션을 즐겨 입는 젊은이들을 공략한 틈새 마케팅이다. 모든 옷은 구매 가능하다. 카페에서 맛있는 음료와 빵을 먹는 것뿐만 아니라 신선하고 개성 있는 소품들을 하나씩 찾아내는 재미까지 카페라는 공간의 의미가 예전과는 많이 달라진 것을 알 수 있다.

복고 드라마·음반

▲ 드라마 '란제리 소녀시대' 포스터

 아날로그 감성의 유행은 방송 프로그램에도 반영됐다. 아날로그 감성이 드라마에 적용된 대표적인 예로는 '응답하라' 시리즈가 있다. 응답하라 시리즈는 전 세대를 아날로그 감성으로 아울렀던 드라마였다. 케이블 채널임에도 불구하고 18%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대한민국에 복고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이어 지난달 종영한 KBS2 <란제리 소녀시대>(2017) 또한 1970년대 후반 대구를 배경으로 해 시청자들의 아날로그 감성을 자극했다. 드라마 곳곳에 장치된 추억의 노래와 장소, 의상, 소품 등은 7080 기성세대에게 아련한 그 시절을 돌아보게 했다. 그뿐만 아니라 젊은 층의 시청자들도 드라마 속 의상과 노래에 관심을 표했다. 드라마 속의 아날로그 감성은 따뜻한 정서와 향수로 인한 여운으로 시청자들에게 더욱 깊게 전달된다.

▲ 가수 아이유의 '어젯밤 이야기' 뮤직비디오 캡쳐 <출처=1theK(원더케이)>

 음반 또한 마찬가지다. 지난 9월 가수 아이유는 '책갈피 둘'이라는 리메이크 음반을 공개했다. 발매된 지 하루 만에 추억의 명곡들의 이름이 음원순위 상위권을 모두 채웠다. 가수 아이유의 리메이크 앨범은 이번이 두 번째로, 점점 잊혀가는 아날로그 세대의 감성과 낭만을 부흥시키며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이렇듯 리메이크 음반은 부모님들에겐 그들의 추억을 회상할 수 있는 기분 좋은 기회로, 우리에겐 또 한 번 아날로그 감성의 매력에 빠지게 하는 입구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박도원 기자
dowon@dong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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