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의 그 책| 우연이라는 탈을 쓴 운명
|소문의 그 책| 우연이라는 탈을 쓴 운명
  • 안다현 기자
  • 승인 2018.04.02 13: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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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네이버 책>

 "나는 내 아버지의 사형집행인이었다." -6p

 소설 『7년의 밤』(정유정, 은행나무, 2011)의 첫 문장이다. 이 책은 세계문학상 수상 작가 정유정의 장편소설로 지난달 28일 스크린에 오른 영화 <7년의 밤>(감독 주창민, 2018)의 원작이다. 『7년의 밤』은 뛰어난 문장력과 묘사력으로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아 지난달 17일에 100쇄를 찍어냈다. 이 책은 한 남자의 실수가 불러온 화(禍)가 파국으로 치닫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책 속에서 화자인 서원은 살인자인 아버지를 뒀다. 서원이 12살이 되던 해에 그의 가족은 세령마을로 이사한다. 그곳에서 서원의 아버지인 현수는 돌이킬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르게 된다. 실수로 여자아이를 차로 들이받은 후, 아이의 목을 비틀어 숨지게 하고 그 시체를 세령호에 버린 것이다. 그로도 모자라 그는 서원의 어머니이자 자신의 아내인 강은주도 살해한다. 세상은 이 사건을 '세령호의 비극'이라고 불렀고 현수를 '미치광이 살인마'로, 서원을 '그 아들'이라 칭했다.

 한순간에 가족을 잃은 서원은 친척 집을 전전하게 된다. 그러나 끝내는 친척들에게마저 외면당한다. 오갈 데가 없어진 서원은 결국 '아저씨'를 찾아간다. 7년 전 끔찍한 일이 벌어졌던 그때, 서원을 도와줬던 사람이 아저씨 안승환이었다. 승환은 자신을 찾아온 서원을 받아들이고 둘은 함께 떠돌이 생활을 시작한다. 서원에게 달린 '미치광이 살인마의 아들'이라는 꼬리표 때문에 둘은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한다. 서원은 계속 동네를 옮겨 다니며 휴학과 전학을 반복한다. 그러다 마침내 등대마을에 도착한 그들은 처음으로 약 일 년을 큰 문제 없이 보낸다. 서원은 그곳에서 마음의 안정을 찾는 듯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갑자기 승환이 사라진다. 이윽고 서원은 자신 앞으로 온 발신자불명의 소포를 받는다. 소포에는 7년 전 세령호에서 일어났던 사건이 자세히 묘사된 소설 원고가 들어있다. 소설은 아이를 죽여 호수 바닥에 버린 최현수, 죽은 아이의 아버지 오영제, 서원이 '아저씨'라고 부르는 인물이자 원고를 작성한 안승환, 최현수의 아내 강은주의 시점을 교차시키며 이야기를 완성해 나간다. 안승환이 작성한 소설을 통해 서원은 아버지가 저지른 살인사건과 이후에 일어난 모든 일의 경위를 알게 된다. 책의 첫 문장 역시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서원이 내뱉는 자조적 독백이다.

▲ 소설가 정유정 <출처=경향신문>

 작가는 우연을 가장한 등장인물들의 운명이 잔인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인물들의 얽히고설킨 관계와 복선을 세밀히 묘사했다. 작은 소품 하나마저도 허투루 등장하는 법이 없다. 모든 것이 사건의 복선이자 원인이다. 세령마을 내에서 일어나는 등장인물들의 경험과 그들의 과거 배경 역시 자세하고 치밀하게 묘사됐다. 그 때문일까. 독자는 책을 읽으면서 자신도 모르게 그들을 이해하게 된다. '인물들에게 일어난 모든 일은 우연이 아닌 운명에 의해 필연적으로 벌어진 일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미치광이 살인마라 불리는 현수의 사정도 그러했다. 한때 야구가 전부였던 현수는 저조한 경기 성적 때문에 프로야구에서 은퇴하게 된다. 슬픔을 이기기 위해 술에 의존하게 됐고 음주운전 사고를 일으킨다. 우연한 사고였다. 하지만 당시 현수는 면허취소 상태였고, 이 사실이 알려지면 더 큰 불명예를 안아야 했다. 이 때문에 그는 차로 친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는 것을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그에겐 가정이 있으니까. 결국, 그는 가정을 위해 해서는 안 될 선택을 한다. 하지만 독자는 현수의 암담한 과거와 현재를 접한 후에는 쉽사리 그에게 돌을 던질 수 없게 된다. '과연 우리가 현수에게 돌을 던질 권리가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가정폭력과 아내를 강간하는 짓을 서슴지 않고 일삼는 오영제도 마냥 '나쁜 사람'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영제는 아내와 딸을 사랑한다. 하지만 그는 제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으면 화가 치밀어 오르는 성격장애를 앓고 있다. 이 때문에 그는 항상 가족들에게 어긋난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한다. 그럼에도 진심으로 딸을 사랑했던 영제는 딸을 죽인 살해범을 찾기 위해 치밀하고 철저한 계획을 세운다. 영제의 시점에서 소설이 진행되는 동안 독자는 그에게 마냥 비난을 퍼붓지 못한다. '만약 내가 영제였다면, 내가 저 상황이었다면 저런 행동을 취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작가가 등장인물의 과거 배경까지 세세하게 써넣은 이유는 독자가 이런 물음들을 자문하도록 하기 위함일 것이다.

 "운명은 때로 우리에게 감미로운 산들바람을 보내고 때론 따뜻한 태양 빛을 선사하며, 때로는 삶의 계곡에 '불행'이라는 질풍을 불어넣고 일상을 뒤흔든다." - 521p, 작가의 말

 최현수의 삶에 갑자기 불어 닥친 불행은 그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놓는다. 그는 아내와 아들에게 좋은 가장은 아니었다. 술과 담배를 좋아했고, 음주운전을 밥 먹듯 하며 연락도 좀처럼 잘되지 않던 남편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누구보다도 가족을 사랑했다. 단지 어느 날 반갑지 않은 손님인 '불행'이 그의 삶에 불쑥 나타났고, 이후 모든 게 걷잡을 수 없이 꼬여버렸다. 당신이라면 이 반갑지 않은 손님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과연 당신은 휘몰아치는 불행 속에서 올바른 판단력을 유지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면 당신이 지금 미워하고 있는 그 사람은 정말 '나쁜 사람'일까? 책 『7년의 밤』을 읽고 자문해보길 바란다.

안다현 기자
1600353@dong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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