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取)중진담] 어떻게 쓸 것인가
[취(取)중진담] 어떻게 쓸 것인가
  • 여다정 기자
  • 승인 2013.04.02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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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다정 기자

언젠가 기자수첩이라는 코너를 통해 '깨어있는 누에가 되기를'이라는 제목의 글을 쓴 적이 있다. 그 글에서 기자는 "개인이 스스로의 삶을 풀어 보는 것. 껍질을 벗겨서 따져 보는 것.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개인의 삶이라는 껍질에 있어서도, 혹은 자신을 감싸고 있는 사회라는 껍질에 있어서도"라고 말했다. 그런데 기자는 '기자'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기에, 자신을 감싸고 있는 사회라는 껍질을 풀어내는 일에 더욱 집착하고는 한다. '깨어있어야 한다'는 선언은 어쩌면 기자가 스스로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었을지 모른다.

사람들은 보통 언론이라고 말하면 '중요하다'고만 말한다. 그것이 왜 중요한지, 왜 필요한지는 굳이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하지만 미래에 언론인이 되고자 하는 기자는 언론이 중요한 이유를 너무나 많이 들었기 때문에, 그것을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다. 그럼에도 만약 그 수많은 이유 중에 한 가지만 꼽으라고 한다면, 언론이 정의를 말하는 기관이기 때문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런데 정의를 말하기 위해 수반되는 것이 있다. 바로 '공정성'이다. 언론은 어느 누군가의 목소리만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다. 언론은 어떤 한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 사건에 관련된 모든 이들의 목소리를 담아야 한다. 언론이 누군가의 목소리를 담지 못한다면 그것은 공정성을 잃어버린 것이며, 공정성이 결여된 정의는 정의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대학언론 역시 그 이름에 담겨 있듯이 언론이기 때문에 정의를 말해야 하고, 공정성을 담보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대학언론에서 일하고 있는 본 기자 역시 그래야 할 것이다. 그런데 기자가 최근 고민하는 것이 있다. 바로 '기자가 쓴 기사가 공정했는가'에 대한 문제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자신의 저서『어떻게 살 것인가』에서 "어떤 사람이 공정하다는 것은 그가 용기 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냉정함도 구비하고 있다는 뜻이다. 결국 냉정함만이 공정성을 지켜줄 수 있다"고 말했다. 기자가 과연 공정성을 위해 냉정함과 용기를 지켜왔는가에 대해 생각해본다. 열정만 앞서 용기만 가진 채 불타오르진 않았던지, 혹은 용기 없는 냉정함만 지니진 않았는지 말이다. 기자가 공정성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독자들이 대학언론을 외면한 것은 아니었는지 자책도 여러 번 했다.

최근 대학언론이 위기라는 말이 자주 들린다. 대학언론은 기자가 속해있는 곳이기에, 그 위기를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해 수없이 고민하곤 한다. 그 답을 쉽게 찾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기자가 믿는 것은 답을 찾는 것과 동시에 독자가 터준 길을 꿋꿋하게, 그리고 묵묵히 걸어 나가야 한다는 사실이다. 언젠가는 니체가 말한 것처럼 "정의는 절룩거리며 당신을 따를 것이다."

 

동아대학보 제110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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