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取)중진담| 사람은 없고 족보만 있었다
|취(取)중진담| 사람은 없고 족보만 있었다
  • 박유진 기자
  • 승인 2019.06.03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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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진 기자
박유진 기자

취재 초반, 기자는 족보 거래 현장을 찾는 데 많은 노력을 들이지 않았다. 익명 커뮤니티와 전국 대학생 네트워크에서 '동아대학교 족보'를 검색한 게 전부다. 검색과 엔터키 한 번으로 수많은 족보 거래 현장을 포착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기자는 이번 취재는 수월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이는 오만한 생각이었다. 그렇게 표본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주변 그 어디에서도 "족보를 구매해 본 적 있느냐"라는 기자의 질문에 대답해주지 않았다.

  익명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서 족보 관련 게시물을 발견했다. 게시자에게 인터뷰를 해줄 수 있냐고 쪽지를 보내 겨우 인터뷰가 성사됐다. 인터뷰 이후 학과와 이름을 알려달라는 기자의 요청에 인터뷰이는 불이익이 생길까봐 두렵다며 알려 주기를 꺼려했다.

  지인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평소에 족보에 대해 사적으로 대화를 많이 나눴던 선배임에도 불구하고, 인터뷰를 요청하자 말끝을 흐렸다. 결국 기자는 '익명을 보장한다'라는 문구를 걸고 취재원을 구하기 시작했다. 족보가 학과 내에서 횡행하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인데 이렇게까지 감추려고 애쓰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최근 학생사회가 붕괴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이는 대학이 취업의 장이 되면서 개인주의가 주가 된 삶을 살아가야 하는 우리들의 팍팍한 이야기일 수 있다.

  필자가 맡은 기사의 주제는 '족보의 저작권 문제'였지만, 취재하는 과정에서 학생사회 붕괴를 새삼 실감했다. 동아리 방에서 아끼는 후배에게만 건네주던 족보가 이제는 인터넷에서 거래되고 있다. 얼굴을 대면할 필요도 없이 클릭 몇 번으로 거래가 가능하다. 족보가 과거에는 인싸, 즉 인맥 넓은 학생의 전유물이었지만 이제는 사고파는 물건이 돼버린 것이다.

  그때 그 시절 동아리 방에서 아끼던 후배에게 전해주던 족보엔 사랑이라도 있었다. 철저하게 익명으로 가려진 족보 매매 현장에서는, 사람은 없고 족보만 남는다. 사실 족보 문제는 매년 똑같이 내는 출제자에게도 책임이 있다. 하지만 족보 수혜 여부에 따른 불공정 문제를 떠나서 과거와 다르게 변해버린 현실이 왠지 취재하는 기자를 씁쓸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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